[한국근현대사] 한국전쟁의 의미(메타비평 방식을 통한 한국 전쟁 3세대의 이념적 발원지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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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0.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네 가지 관점
1. 들어가며
2. < 2", 3"> 검토
3. 한국전쟁과 교육문제
4. 우리조의 바뀐 의견 - 한국 자체의 전망과 주체적 역량의 부재를 통한 내인설
5. 한국전쟁의 영향
6. 나가며- 우리에게 남겨진 문제
본문내용
2". 6.25 전쟁의 시작과 종결

6.25전쟁의 발발시점을 언제로 볼 것이냐에 대해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1949년 당시 38선 부근에서 지속적인 국지전이 일어났기 때문에 이 시기를 전쟁의 시작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다음을 참고하여 우리는 전쟁의 시작을 6월 25일 새벽으로 판단했다.

작전개시는 6월 25일 이른 새벽에 시작됨. 1단계 작전은 옹진반도에서 국지전 형태로 시작한 뒤 주공격선은 서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해감. 2단계 작전은 서울과 한강을 장악함. 동시에 동부전선에서 인민군은 춘천과 강릉을 해방. 이에 따라 남조선군 주력은 서울 일원에서 포위당해 궤멸됨. 마지막 3단계 작전에서는 여타 지역 해방, 적의 잔여 세력을 소멸하고 주요 인구 밀집지역과 항구를 점령함.

<북한의 작전계획에 대한 보고(1950. 6. 15)> 김인걸 외 편저, 『한국현대사 강의』, 돌베개, 1998, 130쪽.


전쟁 개시후 미리 소련의 지원을 받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던 북한군은 순조롭게 남하했다. 사단급 작전은 소련고문관들의 참가하에 수행되었으며 작전은 25일 4시 40분에 시작되었다. 공격 첫 세 시간동안 부대들은 3~5Km를 전진하였다. 남한군이 좀 더 조직적인 저항을 시작한 것은 첫날 12시가 넘어서였다. 약 5시 25분 경 동해안에서의 상륙작전 또한 성공적으로 감행되었다. 박명림,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나남신서, 2002, 80쪽.
직진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38선을 넘는 데 대해서는 거의 저항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중대규모의 한 인민군 부대는 단지 23발의 사격만으로 38선 첫 전투를 간단히 끝냈다. NA, RG242, SA2009, Item 6/116.2, 『극비-사격(전투)일지』;Item 6/116. 3, 「중대전투경과」
개전 초반은 북한측의 일방적 승리였다. 소련군 보고에 따르면 남한군은 준비된 방어체계를 갖추지 못했고, 장교와 부대에 대한 교육훈련 수준 역시 매우 낮았다. 그 결과 38선 상의 방어선은 “전투 직후에 전 전선에 걸쳐 와해되었다.” 『소련군사고문단장 라주와예프의 6.25전쟁 보고서 1권』, 군사편찬연구소, 2001, 178-182쪽.
따라서 28일 01시. 전쟁시작 사흘만에 북한군의 전차부대가 서울시내에 진입하였고 그날 오후 5시 북한군은 서울을 완전점령하는 데 성공하였다. 『한국전쟁사』 1권, 개정판, 국방부, 1977, 541쪽.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그날 바로 전권대표들을 파견하여 인민정권을 수립하고 전시행정을 수립하도록 지시하였다. 김일성, 『김일성전집』 12권, 조선로동당 출판사, 1995, 57-58쪽.
서울이 3일만에 함락된것과 서울점령후 곧바로 정권수립을 위한 조치를 취한 것은 북한이 치밀한 계획하에 6.25전쟁을 도발하였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사료라 생각된다.
하지만 북한군은 서울을 점령한 뒤 지체 없이 남하하지 않고 3일을 서울에서 머물게 된다. 후에 북한 지도부가 영남지역의 방어선을 2개월 동안 뚫지 못한 원인의 하나로 서울 점령 후 바로 남하하지 못했던 것을 들었을 정도로 서울 점령 후 3일은 중요한 시간이었다. 이는 북한군의 작전실패를 원인으로 들 수 있겠다.
북한군의 초기 작전계획은 서부전선 부대와 함께 중부전선으로 남하한 북한군 제 2사단
참고문헌

김학준, 『한국전쟁』, 전영사, 1989
하영선 외 6명,『한국전쟁의 새로운 접근』,나남 출판사, 1990
김인걸 외 편저, 『한국현대사 강의』, 돌베개, 1998
유영익, 『수정주의와 한국현대사』,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8
김대환, 『한국전쟁과 자본주의』,한울아카데미,2000
김계동 외 11인, 『탈냉전시대 한국전쟁의 재조명』, 2000
전현수, 『한국전쟁사의 새로운 연구』, 군사편찬연구소, 2001
브루스 커밍스,이교선,『한국 현대사』,창비,2001
박명림,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나남신서, 2002
박태균, 『한국전쟁』, 책과함께,2005
김명섭,「전쟁명명의 정치학: “아시아․태평양전쟁”과 “6.25전쟁”」, 『韓國政治外交史論叢』,30.2,한국정치외교사학회,2009
데이비드 헬버스탬, 『THE COLDEST WINTER』,2009, 살림출판사

2008년 4월 3일자, 연합신문, <주변국 교과서 6.25전쟁 내용 '천차만별'>, 김귀근 기자.
2009년 6월 24일자, 연합신문, <교과서, “6.25서술”은 우향우 아니다>, 안홍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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