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문학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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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역사교육부재 탄식
본론- 친일문학가에대한 재조명
결론- 종합적평가필요
본문내용
서정주 시인의 시는 한국문학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배웠고 또한 많은 시들이 교과서에 수록되어 아직도 많은 학생들이 서정주시인의 시를 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대표적인 친일문학가 였고 그는 죽는 순간에도 “나는 그때 일본이 200년은 갈 줄 알았다”라는 너무나도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또한 그는 친일작품을 써 일본장수는 칭송하기 까지 했습니다. 또한 노천명 시인역시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라는 너무도 유명하신 친일시를 써 학생들의 학도병 지원을 장려했습니다. 모두들 알고있는 대표적인 친일 문학가 이광수는 단순히 창씨개명을 한것뿐만 아니라 일제말기에 학생들에게 “공부는 나중에 하고 당장 전쟁에 참가해야 한다”는 등의 친일시를 썼습니다. 그의 민족적경륜은 민족과 역사에 대한 허무주의를 조장하여 독립운동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더욱이 여류 시인인 모윤숙은 1940년대부터 친일단체인 조선문인협회, 임전대책협의회, 조선교화단체연합회를 비롯해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국민의용대 총사령부 등에서 활동하면서 ‘대일본제국의 서양 정복전에 협력하자’ ‘일본군의 싱가포르 함락을 찬양함’ ‘조선 학도여 성전에 참여하라’는 친일적 글들을 연재하였고, 그 외 친일 작품으로 ‘신시대’ 특히 ‘동방의 여인들’에서는 정신대와 종군위안부 참여를 강요하는 시를 썼습니다. 친일문학의 선구자 이인직을 비롯하여 김동인, 채만식, 유진오 등 이름을 날린 문인들도 이들에 뒤지지 않는 친일활동을 하였습니다. 이렇듯 친일문학가들은 자신들의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가지고 동포들에게 강제 징용, 징병과 정신대에 나설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물론 문학을 바라보는 관점을 작품의 내부적인 측면에만 바라본다면 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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