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회화적 사진과 모던사진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0.03.31 / 2019.12.24
  • 4페이지 / fileicon doc (MS워드 2003이하)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8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목차
1) 회화적 사진의 시대
*영국 : 예술사진의 황금기
*프랑스 : 법으로 인정받은 예술, 사진
2) 회화주의의 선구자
*힐과 아담슨
*오스카 레일란더(Oscar G.rejlander, 1813~1875)
*헨리 피치 로빈슨(Henry Peach Robinson, 1830~1901)
*줄리아 마가렛 카메론 (Juila M. Cameron, 1815~1875)
3) 모던 사진의 시대
* P.H.에머슨(1856∼1936)
2) 모던사진의 선구자
* A.스티글리츠(1864∼1940)
* L. 모호이노디 (1895-1946)


본문내용

*힐과 아담슨
힐과 아담슨은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스튜디오 동업자이자 공동 작업자였다.
힐은 화가로서 소품, 연출, 컬러링, 리터칭 등은 담당했고
아담슨은 조명, 촬영, 현상, 인화 등을 담당했다.
두 사람은 아주 조화로운 동업자로서 칼로 타입과 다게레오 타입을 능숙하게 구사하면서
렘브란트 조명, 자연스런 포즈, 야외촬영까지 무리 없이 구현했던 당대 대표적인 초상사진가이자
아주 훌륭한 예술사진의 초기 선각자들이었다. 하지만 아담슨은 일찍 세상을 떠나고 스코틀랜드 사진협회 회원으로 예술사진을 지속했던 힐도 건강의 악화도 일찍 사진을 접어야했다.

*오스카 레일란더(Oscar G.rejlander, 1813~1875)
예술사진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는 원래 스웨덴 출신이며 로마에서 회화를 공부했다.
하지만 1851년 개최된 <사진대제전>에서 사진의 매력에 빠지게 되고 이내 사진 계에 뛰어들었다.
그는 사진을 예술로 끌어올리고자 하는 염원을 가지고 있었고
사진이 예술이라면 예술로서 주제, 내용, 형식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했다.
사진적 작업으로 미술 아카데미즘의 위계질서 속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점하는 역사화와 종교화의 면모를 갖추고자 그는 꼼꼼한 정성과 치밀한 계산을 동원하는 트릭을 발명했다.
레일란더는 아카데미 회화의 형식 즉, 균형과 조화 통일의 화면 구성을 위해서 레오나르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1495 ~ 1498 >과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1509~1511>의 대칭적 구도와 황금분할 구도를 모방 했다. 1857년 당시 사진술로 이러한 아카데미 회화풍의 종교화와 역사화를 사진으로 제작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다. 우선 30여장의 네거티브로 한 장의 인화지위에 인화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노출 계산법과 주변 경계를 이어 붙이는 몽타주의 정교함이 숙련되어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의상과 로마시대의 건축양식의 배경과 소도구들에 대한 라이팅 효과도 40여명의 인물들에게 주었을 라이팅의 방향과 노출의 일치를 계산해야만 했다.
레일란더는 사진의 기계에 의해서 단순히 현실을 복제하는 방식을 거부하고 회화처럼 제작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사진도 회화 형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제작할 수 있으며, 그 주제 또한 당시 예술로 인정받고 있는 아카데미회화와 조금도 다름없는 예술성을 획득할 수 있음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기계적 복제 생산물인 사진의 재현성을 극복하고 수공예적인 장인적 솜씨로 예술가의 영혼을 작품에 투영해서 하나 뿐인 예술작품이 가지는 아우라(Aura)을 발휘하고 싶었던 것이다.
<인생의 두 갈래 길>은 1857년에 맨체스터 미술전람회(Art Treasures Exhibition)에 출품되고 빅토리아 여왕은 그의 부군, 알버트 공을 위해 이 사진을 구매함으로써 이 사진적 작업을 ‘예술작품’으로 승인했다. 알버트 공이라는 당대의 문예 애호가가 이 사진을 좋아했던 것은 이것을 사진으로서 바라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통적 회화의 사진적 재현으로 바라보았다. 그 주제가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정신 순화적인 측면에서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래일란더의 이 작품은 사회로부터 예술로서 대접받고자 사진적 재현이 시도한 거의 최초의 노력인 동시에 거의 최초로 예술계, 상류사회로부터 얻어낸 사진의 예술적 가능성에 대한 승인이었다.

레일란더의 주요작품 - <인생의 두 갈래 길><세례요한의 머리><스위트 홈>등

*헨리 피치 로빈슨(Henry Peach Robinson, 1830~1901)
헨리 피치 로빈슨 역시 원래는 화가였으니 사진대제전에서 사진에 빠져들고 결정적으로 1857년 맨체스터에서 전시된 레일란더의 <인생의 두 갈래 길>을 보고 완전히 사진에 매료되었다. 그는 기술적으로는 레일란더의 것을 그대로 따랐지만 내용을 달리했는데 문학적 주제, 고딕로망 중에서도 아주 비극적인 결말의 이야기를 주제로 삼고자 했다. 로빈슨의 작품은 네덜란드 풍속화의 양식에 따라, 레일란더와는 달리 극히 자연스러운 느낌을 내려고 애썼다. 특히 빛에 대해서는 세심한 계획을 세워, 창밖의 구름이나 실내의 명암등에서 느끼는 미묘한 관계는 뛰어난 것이었다. 또한 모델의 의상이며 연출이 매우 뛰어났다. 1858년에 제작된 <임종>은 그의 최고의 걸작이자 최고의 회화주의 사진으로 손꼽힌다. 로빈슨은 이 여세를 몰아 당대 최고의 예술사진가로서 입지와 회화주의 예술사진의 교본을 창조하는데, 1869년에 나온 <사진에 있어서 회화적 효과>가 그것이다. 또한 1884년에는 <사진의 작화법>을 출판한다. 이 책이 끼친 영향은 지대하여 스튜디오안의 배경이며 소도구 이용의 유행이 1870년경에 전성기를 이루고 1880년대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하나의 부산물이 생기기도 했는데 그것은 대체적으로 일상생활과는 별 관련이 없는 무대 장치와 배경 앞에 선 사람들은 매우 굳어버리거나 하고 인물을 소도구로 꾸미고자하는 사진가의 나쁜 습관이 오랫동안 화를 남기게 되었던 것이다.
“사진가에게는 어떤 요령이나 속임수 또는 마술 같은 것도 허용된다. 사진가에게는 일상적이고 원초적이며 보기 흉한 것들을 피해야할 의무가 있고, 그런 것들 대신에 촬영 대상을 강조하고, 어색한 형태를 제거하고, 회화적이지 않은 것들은 수정해야만 한다”고 말한 로빈슨이었으니 아마도 이런 결과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로빈슨의 주요작품 - <임종><새벽과 황혼>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방통대 전학과 4학년 현대의 서양문화 C형] 서양 현대미술 중에서 팝아트가 반영하는 사회와 경제상에 대해서 논하시오
  • 사진술, 영화 등과 같은 대중예술 매개체의 유행성에 대한 새로운 태도에 대하여 언급된 명칭이며, 특히 도시문화의 단면으로 통속적인 문화나 상업적인 문화를 가리키는 통칭이다. 순수미술의 반전과 대중적 통속이미지를 통합시키면서 1960년대 서구 일반사회의 환경을 미술로 수용한 예술사조이기도 하다. 1950년대 초 영국에서 그 전조를 보였으나 50년대 중후반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의 주관적 엄숙성에 반대하고 매스 미디어와 광고 등 대중 문화

  • [디자인사] 새로운 재료와 기술이 디자인에 미친 영향
  • 사진술의 예에서도 사진기의 등장 자체가 예술에 미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기술과 예술과의 관계에서 이러한 측면밖에 볼 수 없는 것일까? 백남준의 경우를 살펴보면, 그에게 기술은 물신적 숭배의 대상도, 도구적이기만한 대상도 아니었다. 그는 기술에서 소통과 예술의 가능성을 보았고, 기술은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어떤 대상이었다. 또, 앞서 살펴보았던 예들을 과연 기술이 전적으로 디자인에 영향을 불러일으킨 것으로해

  • [색채학]색이 만드는 미래
  • 사진1)빛의 이해우리는 항상 다른 빛으로 사물을 보고 있지만 우리의 뇌는 기억에 의해 자동적으로 한가지 빛에 의한 것으로 수정해 버린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카메라와 필름은 그렇지가 못하다. 그러므로 사진가는 카메라와 필름이 보는 것처럼 객관적으로 빛을 보아야 한다. 빛이 어떻게 사물을 다르게 만드는지 뇌와 기억에 의해서가 아니라 카메라와 필름이 보는 것처럼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컬러사진 뿐 아니라 흑백사진에서도 해당

  • [현대의 서양문화 C형] 현대서양미술에서 팝아트는 자본주의와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미술이다
  • 사진술, 영화 등과 같은 대중예술 매개체의 유행성에 대한 새로운 태도에 대하여 언급된 명칭이며, 특히 도시문화의 단면으로 통속적인 문화나 상업적인 문화를 가리키는 통칭이다. 순수미술의 반전과 대중적 통속이미지를 통합시키면서 1960년대 서구 일반사회의 환경을 미술로 수용한 예술사조이기도 하다. 1950년대 초 영국에서 그 전조를 보였으나 50년대 중후반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의 주관적 엄숙성에 반대하고 매스 미디어와 광고 등 대중 문화

  • 사진의이해1공통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등가Equivalent에 관해 조사하고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집 미국인들The Americans에 관해 조사하고 그 내용을 쓰시오0K
  • 사진 위주의 편집을 했으나, 점차 모던 아트을 확산시켜 로댕, 마티스, 로트렉, 고갱 등의 작품을 소개하며 1917년 50권을 발간할 때까지 최고의 인쇄술로 Quality Magazine의 권위를 지켜 나갔다.2) 등가 Equivalent 스티글리츠의 작품 철학은 흔히 ‘등가성 미학 Equivalent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눈앞에 어떤 상황이 펼쳐져 있을 때 사진은 그 상황 전체를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 만큼만 찌게 된다는 것이지요. 등가성 미학이란 이렇게 사진에 찍힌 대상과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