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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향가(신라) 모죽지랑가의 배경설화

Ⅱ. 향가(신라) 모죽지랑가의 원문

Ⅲ. 향가(신라) 모죽지랑가의 해독
1. 양주동 해독
2. 양주동 현대역
3. 김완진 해독
4. 김완진 현대역

Ⅳ. 향가(신라) 모죽지랑가의 작품이해

Ⅴ. 향가(신라) 모죽지랑가의 시어와 시구 해석

Ⅵ. 향가(신라) 모죽지랑가의 어학적 해석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향가(신라) 모죽지랑가의 배경설화
술종공이 朔州都督使가 되어서 임소에 가는 길에 그 때는 삼한이 병란이 있는 때라, 기병 삼천으로 호송하였는데, 죽지령에 다다르니 웬 한 거사가 그 산 길을 평평하게 다스리고 있었다. 술종공은 탄복하였는데, 거사도 공의 위풍을 보고 감심하여 서로 의기가 상통하는 바가 있었다. 공이 삭주에 도임 하여 다스리기를 한달 뒤에 꿈에 거사가 방에 들어온 것을 보았고, 공의 부인도 같은 꿈을 꾸었다. 놀랍고 괴이해서 이튿날 사람을 시켜 알아보니까 거사는 일전에 죽었다 한다. 더욱이 그 죽었다는 날짜와 꿈의 날짜가 꼭 맞는다. “거사가 우리 집안에 인제 태어나리라” 공은 이렇게 말하고, 사람을 시켜서 거사의 주검을 고개 위 북쪽 봉우리에 후히 장사하고, 돌로서 미륵을 만들어 무덤 앞에 세워 주었다. 부인은 꿈 꾼 날부터 태기가 있어서 아이를 낳은 뒤에 죽지랑이라 이름 지었다. 자라서 벼슬에 나아가 김유신과 함께 부수(副帥)가 되어 삼한을 통일하고 진덕, 태종, 문무, 신문 네 임금의 재상이 되고, 나라를 안정 하였다.

孝昭王代 竹旨朗(亦作竹曼.亦名智官.)
第三十二,孝昭王代,竹曼郞之徒,有得鳥(一云谷.)級千.隸名於風流黃券.追日仕進.隔旬日不見.郞喚其母,問爾子何在,母曰,幢典牟梁益宣阿干,以我子差富山城倉直,馳去,竹急未暇告辭於郞.郞曰.汝子若私事適彼.則不須尋訪.今以公事進去.須歸享矣.乃以舌餠一合,酒一缸,卒(率)左人(鄕云皆叱知言奴僕也.)而行.郞徒百三十七人,亦具儀侍從.到富山城.問閽人.得烏失奚在.人曰.今在益宣田.隨例赴役.郞歸田,以所將酒餠饗之.請暇於益宣.將欲偕還.益宣固禁不許.時有使吏侃珍,管收推火郡 能節租三十右.輸送城中.美郞之重士風味.鄙宣暗塞不通.乃以所領三十石,贈益宣助請.猶不許.又以珍節舍知騎馬鞍具胎之.乃許.朝廷花主聞之.遺使取益宣,將洗浴其垢醜.宣逃隱.掠其長子而去.時仲冬極
참고문헌
․ 김진욱(2005), 향가문학론, 역락
․ 김완진(1979), 향가 해독의 고구, 진단학보 48권
․ 류렬(2003), 향가연구, 박이정
․ 신재홍(2005), 향가의 해석, 집문당
․ 엄국현(1989), 모죽지랑가 연구
․ 이웅재(1988), 죽지랑설화의 연구, 정산 유목상 박사 화갑기념논총
․ 홍기문(1956), 향가해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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