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고려사회성격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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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 차

1. 들어가며

2. 고려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천사

1) 사적유물론의 고려사회론

2) 토지소유론의 고려사회론

3) 지배세력론의 고려사회론

4) 지배세력론의 새로운 대안 - 문벌사회론

3. 고려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 다원사회론

1) 고려의 사회구조적 다양성

2) 다양성과 통일성

3) 평행의 원리

4. 다원사회로서 고려사가 가지는 의미

5. 참고문헌

본문내용

2) 토지소유론의 고려사회론 박종기, 「고려사회 성격론」, 『한국 전근대사의 주요 쟁점』,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2002, 126-128면


1960년대 토지소유론의 관점에서는 토지사유의 시작 시기에 따라 고려사회의 성격 이해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토지소유론은 지주와 전호를 그 사회의 기본적인 생산관계로 파악한다. 일본인 연구자들은 우리나라 중세를 무인정권기 이후에 성립했다고 보았다. 이들은 무인정권기 이전의 고려사회를 공동체적 토지소유를 기반으로 하는 혈연적 고대 사회라고 주장하였다. 우리 학자들은 이에 반박하기 위해 통일신라기 금석문자료와 고려 영업전에서 사적 토지소유의 존재를 들어 토지국유론을 부정하였다. 또한 우리 학자들은 고려의 왕토 사상이 실질적인 토지국유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관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국내의 토지소유론자들은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우리나라의 중세를 통일신라기까지 끌어올렸다.
토지소유론은 우리나라의 중세시기를 끌어올려 식민사관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하지만 사회 성격 일반을 논함에 있어서 토지소유의 여부를 따지는 것이 큰 중요성을 갖지 않기 때문에 토지소유론의 논의는 식민사학을 부정하는 정도에서 그치게 되었다.

3) 지배세력론의 고려사회론 박종기, 「고려사회 성격론」, 『한국 전근대사의 주요 쟁점』,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2002, 129-132면
박용운, 『고려사회와 문벌귀족가문』, 경인문화사, 2003
유승원, 「고려사회를 귀족사회로 보아야 할 것인가」, 『역사비평』 1997년 봄, 1997
박용운, 「고려 가산관료제설과 귀족제설에 대한 검토」, 『사총』, 역사학연구회, 1977, 233-240면, 244면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이르러 고려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제시되었는데 지배세력론이 그것이다. 1970년대 고려는 귀족사회라는 것을 주장하는 귀족제사회설이 등장한다. 귀족제사회설은 음서의 수혜범위와 공음전, 과거제, 폐쇄적 통혼 등을 근거로 댄다. 음서는 그 수혜범위가 아들뿐만 아니라 손에게도 이르렀고 심지어는 사위에게까지 이르렀다. 또한 원칙상 공신 1명에 자손 1명만이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으나 실제로는 관리 1명에 여러 자손이 관직에 진출하였다는 점도 귀족제설을 뒷받침한다. 김용선, 『고려음서제도연구』, 일조각, 1991,
공음전은 고려 귀족계층이 그 신분을 세습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귀족제사회설에서는 과거제 역시 고려가 귀족사회임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하는데, 과거 응시자의 자격이 엄격히 제한되어있었던 것을 그 예로 든다. 고려시대의 과거에는 제술과, 명경과, 잡과, 승과가 있었는데 이 중에서 고관으로의 진출이 가능한 과거는 제술과였다. 귀족제설 연구자들은 제술과 응시 가능 신분이 양인까지가 아니라 문벌귀족으로 불리는 계층과 일부 중류층 (잡류직에 종사하는 신분을 제외한 서리층, 부호장 이상의 손과 부호정 이상의 자에 한정된 지방 향리층)에 한정되었다고 보았다. 박용운, 『고려시대 과거제와 음서제 연구』, 일지사, 1990
또한 이들은 폐쇄적 통혼을 통해 왕실과 친인척 관계를 맺거나 자신들 간의 유대적 사이를 더욱 강화시켜나갔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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