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 위서론에 대하여(『규원사화』에서『화랑세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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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가며

Ⅱ. 『규원사화』와 『환단고기』
Ⅱ-1 『揆園史話』
Ⅱ-2 『桓檀古記』
Ⅱ-3 『환단고기』와 『규원사화』의 결론

Ⅲ. 『화랑세기』
Ⅲ-1 왜 『화랑세기』가 논쟁의 초점인가?
Ⅲ-2 그럼 무엇 때문에 논쟁거리에 싸여 있는가?
Ⅲ-3. 화랑세기에 대한 필자의 견해

Ⅳ. 나오며
본문내용
Ⅰ. 들어가며
최근 역사학의 대중화 움직임에 부응하며 쉽고 재미있게 쓰여진 각종의 歷史書들이 부쩍 늘어났다. 이는 무미건조하고 딱딱하게만 여겨졌던 역사학을 일반 대중과 더욱 친숙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우리 국민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하지만 그 결과 일반인들은 전문 역사가에 대하여 요구와 불만이 많아져 갔고, 그가운데 항상 비판의 대상이 되고 관심의 초점이 되는 분야는 한국고대사 영역이었다. 이에 시발점은 1980년대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규원사화』와 『환단고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 후 10여년이 지난 뒤에는 『화랑세기』가 사회의 이슈가 되어서 고대사학계가 다시한번 크게 진통을 겪기도 하였다.
이번 발표에서는 1980년과 1989년 세간에 등장한 『규원사화』,『환단고기』,『화랑세기』를 살펴볼 것이다. 그 중 學界에서 이미 僞書로 판명된 『규원사화』와 『환단고기』를 살피고 , 아직까지도 학계를 떠들석하게 하는 『화랑세기』를 살펴보겠다.

Ⅱ. 『규원사화』와 『환단고기』
『규원사화』와 『환단고기』에 따르면 우리민족은 桓雄이 다스렸다는 神市시대에 이미 국력과 문화면에서 중국을 능가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檀君王儉 때부터 중국의 동북지방과 하반도에 걸치는 방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되어있다. 조인성, 「규원사화와 환단고기」, 『한국사시민강좌』2, 일조각, 1983. p71.

이런 내용은 지금까지 축적되어온 고대사 연구성과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학계의 연구성과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송찬식, 「위서변」, 『원간중앙』, 1977년 9월호.
이도학, 「재야사서 해제『환단고기』」, 『민족지성』1986년 11월호.
이순근, 「고조선은 과연 만주에 있었는가」, 『역사비평』3, 1988 겨울호.
조인성, 「『규원사화』와 『환단고기』」, 『한국사시민강좌』2, 1988.
등 많은 연구성과가 있다.
학계에서는 이를 무시하여 왔지만, 이로 인해서 국사교과서 파동을 야기하기도 하였다. 이에 기존의 고대사학계에서는 일반 시민들과의 연대를
참고문헌
조인성, 「『규원사화』와 『환단고기』」,『한국사시민강좌』2, 일조각, 1988.
조인성, 「재야사서 위서론」, 『단군과 고조선사』, 사계절, 2000.
박광용, 「『규원사화』와『환단고기』의 성격에 대한검토」, 『역사비평』, 1990.
이도학, 「재야사서 해제 -『환단고기』」,『민족지성』, 1986.
이종욱, 「『화랑세기』 연구 서설」, 『역사학보』146, 1995.
이종욱, 「『화랑세기』의 신빙성과 그 저술에 대한 고찰」,『한국사연구』97, 1997.
노태돈, 「필사본 『화랑세기』의 사료적 가치」, 『역사학보』,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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