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 고구려고분벽화로 본 고구려인의 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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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7.13 / 201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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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한반도는 어느 나라보다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를 가진 나라로 그 계절적 요인은 한반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의식주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 중에 의복은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그 요인으로 변천해왔고 지금은 자연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기능 이외에 그것 자체로 예술의 의미(실예로 패션쇼 같은 것)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의복의 기능과 형태는 변했지만 그 바탕에는 옛 조상들이 남겨놓은 그것에 대한 기본적인 면은 아직도 살아서 현재에 존재한다.(앙드레 김의 패션쇼에서 보여지는 한복의 미를 바탕으로하는 표현)
그럼 장구한 시대 중에서 삼국시대 사람들의 그것은 어떠했을까? 특히 고구려인은 어떠했을까? 그것에 대한 자료는 『삼국사기』나 『삼국지』 위지 동이전 등의 사료에 나와 있지만 일단 여기서는 시각적 자료로 남아 있는 집안(集安)이나 평양(平壤)에 있는 고구려시대 고분벽화를 보면서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기로 하자.
2. 옷입기와 꾸임새
1) 여러 가지 옷
○ 남자의 옷 : 고구려뿐 아니라 신라․백제․부여․가야 사람의 기본 복식은 남녀에 관계없이 저고리와 바지였다. 이때의 저고리는 아랫단이 엉덩이에 이르는 긴 것으로 깃을 왼쪽으로 여민다. 저고리 깃을 왼편으로 여미는 것은 좌임(左임)이라 하여 활을 즐겨 쓰는 내륙 아시아 기마계 민족의 관습이다. 저고리 소매의 너비는 신분에 따라 달라, 귀족이 입은 저고리의 소매가 평민의 것보다 넓었다. 저고리의 깃과 도련, 소매 끝에는 의복바탕과는 다른 천을 대어 실용과 장식의 효과를 내었는데, 이것은 선(襈)이라고 한다. 바지는 오늘날의 한복바지와 형태상 거의 차이가 없다. 바지통의 너비 역시 신분에 따라 차이가 있어, 신분이 높은 사람은 대구고(大口袴)라 하여 통 넓은 바지를, 낮은 사람은 궁고(窮袴))라 불린 통 좁은 바지를 입었다. 다만 신분이 낮아도 귀족 집안의 시종이나 무용수처럼 여건상 필요할 경우, 통 넓은 바지를 입기도 하였다. 저고리와 바지 위에는 두루마기를 덧입기도 하였다. 두루마기는 기본 형태와 구조는 저고리와 같으나, 길이가 발목에 이를 정도로 길다. 본래는 추위를 막기 위해 개발된 옷이나, 후에 의례용으로 쓰임새가 변해 귀족층이 즐겨 입는 덧옷이 되었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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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전호태, 『고분벽화로 본 고구려 이야기』, 풀빛,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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