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폭군] 연산군과 광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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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목 차 -
1. 서두
2. 연산군과 광해군에 대한 기존의 평가
(1) 야사 속 연산군
(2) 계축일기 속 광해군
3. 재조명하는 연산군과 광해군
<황제적 권위를 추구한 연산군>
(1) 세자시절 연산의 경험
(2) 즉위초의 연산군
(3) 무오사화 갑자사화
-무오사화의 주연과 진정한 승자
-갑자사화의 비밀
(4) 무너지는 절대군주
<광해군에 대한 두 가지 시선>
(1) 세자시절 광해군
(2) 종전 후 흔들리던 입지
(3) 수많은 옥사들
(4) 중립외교의 한계
시선 1. 광해군은 유능한 군주다
시선 2. 광해군은 폭군일수밖에 없다
(1) 윤리적 측면
(2) 정치적 측면
(3) 외교적 측면

4. 연산군과 광해군의 차이점, 공통점

5. 반정 후 정부는 어떠했는가?
- 반정의 정의
(1) 중종반정 그 후
(2) 인조반정 그 후
- 현실과 명분 사이
- 누가 과연 패륜인가

6. 반정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1) 연산군
(2) 광해군

7. 폭군으로 불리지 않고 목표를 이룩하려면
8. 결론

본문내용
2. 연산군과 광해군에 대한 기존의 평가
연산군과 광해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엄연히 ‘일기’(폐위된 왕의 실록은 ‘일기’라 칭한다.)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흔히 야사에 나오는 내용들이 사실이라 믿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한국역사(전25권) 13권 연산군 편에는 아예 야사의 내용들로 연산군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이는 자칫 잘못된 역사상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재조명을 하기에 앞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연산군, 광해군에 대하여 언급할 필요가 있으며,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우리는 야사 속 연산군과 계축일기 속 광해군의 모습을 살펴보려한다.

(1) 야사 속 연산군
- 성종이 궐 안에서 몸소 기르던 사슴이 연산군의 옷과 손등을 핥았다. 연산군은 사슴을 걷어찼다. “짐승이 사람을 따르거늘 네 어찌 그리도 잔인하단 말이냐.” 성종은 장차 연산이 등극하는 날 벌어지게 될 참극이 연상되었다. 성종이 승하하고 연산이 왕위에 오르자 그는 부왕의 사슴을 직접 활로 쏘아 죽여 버렸다.

-희대의 폭군 연산이 등장하면서 조정에는 간흉한 무리들만이 들끓게 되어 충신은 쫓겨나고 백성들은 도탄 속에서 허덕였다. 조정에는 훈구파라 하여 선비들을 미워하고 꺼리는 사람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바른말을 잘 하고 혁신적인 기풍이 있는 젊은 사림파와 관료적이고 탐욕적인 훈구파 사이에는 갈등이 심하였다. 때마침 <성종실록>의 편찬이 시작되었는데 김종직의 <조의제문>이란 글이 발견되었다. 조의제문은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빼앗고 그를 죽인 것을 비판하는 글이라 하여 이것을 문제 삼아 훈구파는 연산에게 고해 일이 크게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선비들을 귀찮게 여기고 밉게 보던 연산은 김종직과 그의 문인 김일손 이하 당대의 명유 육십여 명을(사림파) 같은 죄로 몰아 죽였다. 이 학살 사건은 연산군 4년 무오7월에 일어났던 일로써 그 원인이 사초에서 발달된 것이라 하여 이를 무오사화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무오사화 이후 길에 선비차림을 한 행인이 끊기고 각 처 서당에서 글 읽는 소리가 끊어졌다.

참고문헌
1. 박시백,『조선왕조실록-연산군일기』(휴머니스트,2008)
2. 박시백,『조선왕조실록-광해군일기』(휴머니스트,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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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동준, 『연산군을 위한 변명』(지식산업사,2003)
5. 신명호, 『왕을 위한 변명』(김영사,2009)
6. 어혜순, 「광해군과 대북세력의 정치운영 연구,」(연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9)
7. 이은숙, 「광해군의 실리외교 :광해군의 자강과 기미책을 바탕으로」(육사논문집 제57집 제2호 , 2001)
8. 한명기, 「광해군대의 대북세력과 정국의 동향」,(한국사론 제20호, 1988)
9. 홍석주, 「조선조 광해군대의 궁궐건축에 관한 연구 :인경궁과 경덕궁을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1)
10. 한명기,『광해군』(역사비평사, 2000)
11. 한국사상사학회,『한국사상사입문』(서문문화사, 2006)
12. TV역사스폐셜 그날,조선의 역사가 바뀌었다-인조반정
13. 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실계보』(웅진 지식하우스,2008)
14. 김기협 역사학자, 「광해군의 정치적 실패」(프레시안 칼럼)
15. 박종관,『계축일기』(능인출판사,1995)
16. 박찬희, 『조선왕조 오백년 야사』(꿈과희망,2009)
17. 최범서, 『야사로 보는 조선의 역사1』(가람기획,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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