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사]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통한 조선 백성의 생활모습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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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목 차
1. 머 리 말

2. 본 문

1) 임진왜란 이전 조선 백성의 생활

2)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사이의 조선 백성의 생활

3) 병자호란 이후의 조선 백성의 생활

3. 맺 음 말

※ 참고 문헌

본문내용
2. 본문

1) 임진왜란 이전 조선 백성의 생활

피지배신분이었던 양인
전문적인 생산활동에 종사하는 많은 인민들 중에 대다수가 농민이며 수공업, 상업 종사자들도 조선 초기에 이르러서는 양인 범주에 포함되었다.
조선의 유교이념이 구상하는 국가의 재정적 기초를 담당하는 대다수 농민들의 경제적 활동과 그들에게 부여된 이른바 양인(良人)이라는 의미는 고려시기에 이른바 향(鄕),소(所),부곡(部曲)들의 특수업에 종사하는 인민들을 천하고 국가에 예속되게 여기면서 행정적으로 인민과 구별하고 있던 것에 반해 조선시기에 와서는 조선의 관료층에 참여한 신분집단과 함께 동일한 정치적 기회를 갖도록 한다는 논리가 잠재되어 있었고, 앞선 이들을 모두 양인의 주거지로 개편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양인과 천인의 엄격한 구분보다는 모든 산업경제에서 생산 활동을 하는 인민을 양인으로 인정한다는 조선의 성리학적 정치구상의 모습을 나타냈다.

양인신분의 농민
조선 전기에 양인신분의 농민은 전 농민인구의 지배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16세기 이래 양인농민의 몰락과 그에 따른 노비농민의 증대가 있었지만 양인농민의 비중은 기본적으로 높았다. 양인농민은 국가로부터 강요된 여러 국역부담의 주체였다. 국가는 경작되는 토지에 대해서는 전세를, 농민경영의 호에 대해서는 공물을, 그리고 남정에 대해서는 신역으로서 군역을 수취하였다. 이러한 여러 형태의 국역부담은 양인농민에 의해 이행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양인농민은 조선의 국가구성을 밑바닥에서 받치고 있던 생산적 지주였다.
조선의 국역수취는 농민들의 사적 토지소유를 매우 불완전하게 만들었고 조선 전기의 양인농민들은 기본적으로 국가에 대해 예속된 농노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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