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陜川) 지명과 철기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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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글

2. 합천지명의 변천과 철기문화

3. 쇠와 지명의 유연성과 언어지리

4. 마무리

본문내용
마을의 이름은 그 마을의 역사나 사회적 특징, 또는 신앙이나 정치 경제와 더불어 지형을 상징적으로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마을의 이름도 언어의 자료인 만큼 이를 일러 언어의 문화론적인 접근이란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합천은 역사적으로 본디 대가야 지역이었다. 가야산을 정점으로 하는 불교 신앙이 두드러지는 고장이다. 아울러 야로(冶爐)를 중심으로 하는 철기문화의 모꼬지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지형적으로는 가야산에서 발원하는 가야천과 초계천이 황강(黃江)에서 만나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그러니까 가야천과 황강 사이에 이루어진 고을이라고 하겠다. 철기문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은 쌍책(雙柵)의 옥전고분군에서 출토된 용봉 무늬의 환두대검(丸頭大劍)은 말할 것 없고, 2000여 점에 달하는 철제 출토품이 이를 반증해 주고 있다.
출토품 가운데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황금칼인데 용과 봉의 무늬를 한 둥그런 칼자루를 하였다. 출토품을 이르자면 백제의 무령왕릉과 신라의 천마총에서 나온 것과 다르지 않다. 고대의 왕국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밖에 구슬이 출토됨으로 하여 옥전(玉田)이란 지명도 생겼으며, 말의 투구와 말굽쇠가 나온 것으로 보아 상당한 국방력과 생산력을 갖춘 왕국이 아니었던가 한다. 이 왕국이 다라(多羅)국이었을 것으로 상정할 수 있는바, 이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있다.
철기문화와 함께 합천은 가야산 해인사를 중심으로 한 불교문화의 성지였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가야시대부터 고려에 이르는 일천 수백 년의 불교문화가 합천의 지명에는 어떻게 투영되었는가를 알아보는 작업도 문화기호론적인 관점에서는 하나의 논의 초점에 값하는 사안이라 할 수 있다.
합천의 이러한 철기문화와 불교문화의 특징이 실제로 지명에는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가를 언어지리적인 방법에 따라서 살펴보도록 한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대동지지.
신증동국여지승람.
김도윤, 가야문화논총, 경미문화사, 2001.
이병선, 다라의 지명 고찰, 지명학 4집, 한국지명학회, 2001.
합천 지명사, 합천문화원,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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