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유산]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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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2. 실록의 편찬과정
3. 실록의 사실의 유지와 객관성
4. 실록의 보관과 재간
5. 각 실록의 편찬경위와 내용
6.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유산으로서의 의의
7. 실록의 사료적 가치 및 한계점
본문내용
1. 개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조선 태조(太祖)에서 철종(哲宗)에 이르는 25대 472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각 왕별로, 연월일 순서에 따라 편년체로 기록한 총 1천893권, 888책에 이르는 방대한 필사본 및 인쇄본으로 그 전체를 일괄해서 국보 제151호로 지정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기록 형식은 일찍이 중국의 양(梁)나라에서 비롯되었고 이후 중국의 역대 왕조는 대대로 이 선례를 따라 실록을 편찬했다. 우리나라도 고려시대부터 실록을 편찬하여 사고(史庫)에 보관해왔으나 〈고려왕조실록〉은 오늘날 전해지지 않고 있다. 외침과 병란이 잦았던 지난날 전적을 보존하기 가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알 수 있다. 1994년 4월에 국역 작업이 마무리 되었으며, 1997년 10월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권/책 : 조선왕조실록은 총 ‘1천893권, 888책’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 때의 ‘권’은 내용적 단위를 말하며, ‘책’은 물리적인 단위를 말한다


2. 실록의 편찬과정

실록은 일정한 시기에 일괄적으로 편찬한 것이 아니고 전왕(前王)이 죽은 뒤 다음 왕이 즉위하면서 실록청을 개설하여 전 왕대의 여러 기록을 수집해 편찬한 것이다. 최초의 조선왕조실록은 1409년(태종 9) 태조가 죽은 지 1년 후에 태종이 하륜(河崙)에게 〈태조실록〉의 편찬을 명함으로써 편찬이 시작되었다. 실록을 편찬할 때에는 춘추관 내에 임시로 실록청 혹은 찬수청(纂修廳)을 설치하고 영의정이나 좌의정․우의정을 총재관(摠裁官)으로 삼고 대제학과 문필로 이름 있는 사람을 선발하여 도청(都廳) 및 각 방(房)의 당상(堂上)으로 임명했다. 방의 구성은 해당 왕의 재위기간이 길 경우는 6방이지만, 대체로 3방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실록을 편찬하는데 가장 근간이 자료는 시정기(時政記)와 사관(史官)의 사초(史草)이다. '시정기'는 정부 각 기관의 공문서를 종합 정리한 것으로 세종 16년(1434년)에 창시한 것이다. 그때까지 정부의 여러 기관에서 시행한 안건 중 후세의 귀감이 될만한 것을 기록하여 춘추관에 보관하던 것을 이때부터 사관으로 하여금 연월일 순으로 종합 정리하여 '시정기'라 했던 것이다. 기타 해당 왕의 재위기간 동안 각 관청의 기록인 〈각사등록 各司謄錄〉․〈승정원일기〉 등 각 개인의 일기․문집도 편찬 자료로 이용되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비변사등록〉․〈일성록〉도 자료로 사용되었다.
각 방의 당상과 낭청(郞廳)은 이들 자료를 수집하여 연․월․일순으로 분류한 다음 편년체 형식의 실록 초초(初草)를 작성하여 도청에 넘긴다. 도청에서는 낭청에서 작성한 초초 가운데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거나 보충하여 2차 원고인 중초(中草)를 작성한다. 중초를 바탕으로 총재관과 도청당상이 교열하여 문장과 체제를 통일하고, 최종적으로 수정․필삭(筆削)하여 정초(正草)를 만들게 된다. 이 정초본으로 실록을 인쇄하여 사고에 봉안하게 된다. 실록의 기본 자료로 이용한 사초나 초초․중초․정초는 모두 물에 씻어 없애는데 이것을 세초(洗草)라고
자료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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