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세사] 조선통신사의 성격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04.06.30 / 2019.12.24
  • 9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9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목차
들어가며
1. 조선 전기(임진왜란 이전)의 통신사
2. 조선 후기(임진왜란 이후)의 통신사
-국교의 재개
-통신사의 파견
-통신사 파견절차
-통신사에 대한 영접
-통신사의 성격
3. 18세기 이후 통신사의 쇠퇴
나오며
본문내용
들어가며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란 국왕의 명의로 일본의 막부장군幕府將軍에게 보낸 공적인 외교사절을 가리킨다. 조선시대 통신사의 명칭이 처음 나타난 것은 1413년(태종 13)이었으나, 사행使行의 정사正使 박분朴賁이 중도에 병이나 중지되었다. 그 뒤 1428년(세종 10) 통신사란 명칭으로 정사正使 박서생朴瑞生 이하의 사절단이 파견되었다. 이후 통신사의 파견은 정례화되어 조朝·일日 양국간에 우호교린의 상징으로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총 20회(조선 전기 8회, 조선 후기 12회)가 이루어졌다.
조선 전기와 후기(임진왜란을 기점으로 하여)의 통신사 성격은 다르게 나타나는데, 여기에서는 조선후기에 파견된 통신사를 중점적으로 살핌으로써, 조선후기 조․일의 양국관계와 조선통신사의 성격을 이해하고자 한다.


1. 조선 전기(임진왜란 이전)의 통신사
조선 건국 후 1403년(태종 3) 조선이 명나라로부터 책봉 받고, 이듬해 일본의 아시카가정권(足利政權)도 ‘일본국왕日本國王’ 책봉을 받아 조선․중국․일본간에 사대교린事大交隣의 외교체제가 성립되었다. 이때 조선과 일본 두 나라는 대등한 국가로서, 조선 국왕과 일본 막부장군은 양국의 최고통치권자로서 상호간에 사절使節을 파견하였다. 이때 조선 국왕이 막부장군(일본국왕으로 칭함)에게 보내는 사절을 통신사, 막부장군이 조선 국왕에게 보내는 사절을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라고 하였다.
조선 전기에는 일본과의 사절 왕래가 많아 조선 사절의 일본 파견이 18회에 달하였고, 일국왕사의 조선 파견은 71회에 달한다. 그러나 조선 국왕이 파견한 사절이 모두 통신사의 호칭을 갖지는 않는다. 회례사回禮使·회례관回禮官·보빙사報聘使․경차관敬差官․통신사․통신관通信官 등 일정치 않았고, 목적과 편성도 다양했다. 이때, ‘통신’이라는 용어는 외교관계를 가지는 두 나라가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신의信義를 통通하여 교류한다는 뜻으로 쓰이기에 이것들을 일괄적으로 통신사라고 하기에는 다소 문제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조선이 파견한 통신사는 다음과 같은 조건과 목적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조선 국왕으로부터 일본국왕(막부장군)에게 파견된다. 둘째, 일본 국왕의 길흉조사, 도는 양국간의 긴급한 문제해결의 목적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공무원]한국사 기출 모음집(1990년~2006년)
  • 한국사 기출문제 목록처음으로 (ctrl + pageup)한국사 최근 기출문제2006년01.15 전북지방직9급 한국사2006년02.07 해양경찰 한국사2006년03.19 인천지방직9급 한국사2006년04.08 중앙인사위9급 한국사2006년04.22 경기지방직9급 한국사2006년05.07 경북지방직9급 한국사2006년08.11 중앙인사위7급 한국사2006년09.24 소방직9급 한국사2006년09.24 선관위․세무직9급 한국사 2006년10.01 서울지방직9급 한국사국가직7급 기출문제국가직9급 기출문제1990년07.29 국가직7급 한

  • 한국사 요약정리
  • 성격이 강함)- 지방관은 주요 거점만 지배, 나머지 자치 허용하여 간접적으로 주민 지배고대국가행정 외에 군사적 목적이 기준이 되어 편제고려시대지방호족의 신분적 서열이 지준이 되어 편제, 주현보다 속현이 많음조선시대인구, 토지의 대소에 따른 행정 편제, 모든 군현에 지방관 파견고구려* 평양천도(장수왕: 427) 이후 서울(5부), 지방(5부: 욕살)→성(처려근지, 도사) 도사: 삼국공통 지방장관, 노동력 동원, 조세수납, 군사지휘 임무통일 후:

  • 현대 한국사학의 발전과 과제
  • 현대 韓國史學의 발전과 과제현대 韓國史學의 발전과 과제趙 東 杰*Ⅰ. 머 리 말 1945년 8월 16일, 해방 이튿날에 중앙 아카데미로 朝鮮學術院을 창설하고 그날 저녁에는 한국(조선)학 연구학회로 震檀學會를 재건하였다. 그런데 조선학술원도 한국학 연구자가 주도하여 결성한 것으로 보면 해방과 동시에 한국학에 대한 연구 의욕이 왕성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한 의욕은 해방 후에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시기에 축적되어온 것이었고 그

  • [사학] 친일파 99인 자료
  • 조선을 전쟁터로 만드는 한편, 초전에서의유리한 국면을 배경으로 화폐정리사업 등을 감행하면서 조선을 식민지로만들기 위한 기초를 닦아 갔으며,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보내 한국의외교권을 빼앗고 통감 통치를 실현하기 위한 을사보호조약의 체결을강요했다. 양아버지(養父)의 초상을 치르고 이 해 9월에 학부대신이 된이완용은 이 과정을 통해 다시 친일파로 변신해 갔다.을사보호조약 체결 문제를 두고 열린 어전회의에서 참정대신

  • [교양] 친일파 문제 참고자료
  • 조선남감리교회삼십년기념보, 조선남감리교회전도국,1930., 독립협회의 활동, 東光 26호, 1931. 10.車相瓚, 내가 본 윤치호선생, 혜성 1권 2호, 1931. 4 및 한국근세사논저집2, 太學社, 1982., 조선최초영어학습회고담, 영어문학 창간호, 조선영문학회, 1932.金永羲, 佐翁尹致昊先生略傳, 경성, 기독교조선감리회총리원, 1934.李光洙, 規模의 人 윤치호씨, 이광수전집 17, 삼중당, 1962.국사편찬위원회 편, 윤치호일기, 1973∼76.宋炳基,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