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계급과 비계급의 계급투쟁(코뮨주의 정치학을 위하여)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09.08.11 / 2019.12.24
  • 9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1,5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목차
계급과 비-계급의 계급투쟁: 코뮨주의 정치학을 위하여


1.계급에 관한 질문

󰡔안티-오이디푸스󰡕에서 들뢰즈와 가타리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해, 혹은 계급의 개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저으기 당혹스런 명제를 제출한 바 있다: 자본의 공리계라는 관점에서 자본주의 사회에는 부르주아지라는 오직 하나의 계급만이 존재한다; 프롤레티리아트는 부르주아지와 대립하는 하나의 계급이 아니라 비-계급이다. 이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두 계급의 대립 내지 모순에 의해 자본주의의 작동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기존의 맑스주의적 통념에 전적으로 반하는 명제다. 적대 내지 대립을 통해 규정되는 계급이란 개념의 개념 자체에도 반하는 듯이 보이는 주장이다. 우리는 일단 이 명제를 맑스주의자들에 의해 제출된 명제로 간주하며, 따라서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할 것이다. 그 경우 이 명제는 생각보다 황당한 주장은 아니란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문제가 남는 것 역시 사실이다. 즉 프롤레타리아트가 비-계급이라고 말한다고 해도, 실제로 하나의 계급으로서 조직되고 실존하고 있는 것을 과연 부정할 수 있는가? 또 자본주의에는 하나의 계급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사회에는 계급투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즉 그것은 계급투쟁이라는, 맑스주의의 결정적인 개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가? 나아가 프롤레타리아트가 비-계급임을 강조하는 것은 노동자 대중을 하나의 계급으로 묶어세우는 계급적 정치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학은 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맑스주의에서 정치학 자체를 부정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제시된 앞서의 명제들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충분히 개진되어 있지 않으며, 이 명제들은 이후의 어떤 저작에서도 다시 다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여기서 우리가 던지려는 질문은 그들에 의해 진지하게 다루어진 바 없다. 사실 그들이 어떻게 말했는가, 혹은 말할 것인가를 확인하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맑스주의의 관점에서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그들의 명제를 재검토하고 이로써 계급과 정치에 대한 맑스적 사유를 좀더 밀고나가고자 한다.

본문내용
2. 신분에서 계급으로

알다시피 근대 이전의 사회는 신분사회였다. 신분사회에서 “개개인은 생득적인 재능이나 기능, 혹은 자의나 우연에 따라서 신분에 배속된다.” 이는 통상 사회 전체를 하나의 유기적 전체로 지층화화면서, 각 개인에게 유기체 안에서 필요한 어떤 역할이나 기능을 할당하는 방법이다. 근대사회는 이러한 신분적 코드의 체계에서 벗어나는 흐름과 더불어 탄생했다. 예를 들어 시장과 화폐는 신분적 코드의 외부에서 탈코드화된 부의 흐름을 형성하고, 신분적 코드에서 벗어난 교환의 형식을 만들어낸다. 탈코드화된 부의 흐름, 기존의 신분체계에서 벗어난 교환의 형식은 태생적인 차이에 의해 규정되어 있는 차별을 넘어서 인간의 욕망을 등가화한다(홉스, 헤겔). 귀족과 평민이 ‘인간’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묶일 수 있는 것은 시장에서 가장 먼저 성립한 이러한 등가화를 통해 가능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사회는 등가적인 욕망을 갖는 개인들로 분할된다. 이러한 개인들의 집합체를 19세기인들은 ‘시민사회’라고 명명했다. 헤겔은 이러한 시민사회를 ‘원자론의 체계’라고 이해한다. 왜냐하면 사회는 유기적인 통일성을 상실하고 개개인의 특수한(보편성을 상실한) 자기존립적 의식들의 집합이 되기 때문이다(‘인륜성의 상실’). 이를 맑스는 정치적 신분이 사적 신분으로 전환되었다고 표현한다. 이런 의미에서 시민사회의 “사적 신분은 정치적 의미와 활동에 대한 대립물, 정치적 성격의 박탈을 표현한다.” 이러한 사적 신분을 맑스는 ‘정치적 신분’과 대비하여 '사회적 신분‘이라는 말로도 표현한다. 어느 경우든 정치적 권력에 의해 유지되던 신분적 코드에서 탈코드화된 새로운 종류의 ’신분‘, 결국은 신분이기를 그친 신분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다.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지 못한 채, 혹은 참여여부와 무관하게 근대의 사회적 신분 내지 사적 신분은 스미스가 말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다시 말해 시장으로 표상되는 경제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이는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는가와 무관하게 가치법칙이 작동하는 영역에서 그에 따라 움직이는 모든 사람들에 적용된다. 이제 정치적 권력이 아니라 가치법칙이, 경제적 권력이 그들의 행동을 규정하는 요인이 된다. 경제학적 공리, 혹은 자본주의의 공리들이 그들의 행동과 사고를 규정하는 직접적 요인이 된다. 이러한 공리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의 집단을, 이전의 ‘신분’과 구별하여 ‘계급’이라고 명명한다.
결국 중세에서 근대로의 변화는 정치적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라고도 말할 수 있고 정치적 신분에서 사적 신분으로의 변화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신분’이란 말의 의미변화를 고려하여 그것을 다른 말로 대체하면 ‘신분’에서 ‘계급’으로의 변화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서 사람들의 삶과 활동, 그리고 의식을 규정하는 직접적인 요인은 정치적 권력에서 경제적 공리, 자본주의적 공리들로 대체된다. 자본주의는 신분이라는 코드의 체계를 탈코드화하지만, 그것을 다른 종류의 신분적 코드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신분 없이 경제학적 공리들에 의해 움직이는 공리계로 변환시킨다.

3.자본주의 공리계와 계급

자본주의 공리계에는 그 공리들을 따르는 오직 하나의 계급만이 존재한다. 즉 가치법칙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장악되어 있는 계급, 시장의 법칙을 유일한 행동원리로 삼는 계급, 그러한 가치법칙을 자신의 행동의 법칙으로 삼고, 그것이 함축하는 경제적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삼는 하나의 계급. 이를 우리는 부르주아지라고 부른다. 이런 의미에서 자본주의 공리계 안에서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피지배계급, 오직 하나의 노예계급만이 존재할 뿐이다.
맑스가 ‘자본가란 자본의 담지자’라고 불렀던 것과 정확하게 대응하는 이러한 양상은 부르주아지가 부를 지배하는 계급이 아니라 증식을 목표로 하는 자본의 논리에 지배되는 계급, 자본의 공리에 복종하는 노예계급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공리계의 공리에 복종하는 계급, 자본주의 공리계는 오직 이런 하나의 계급만을 요구하며 그런 하나의 계급만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부르주아지는 ‘보편적 계급’이며 그들의 법이 잘 보여주듯이 보편주의를 추구한다. 그들의 사고와 행동을 정의하는 것이 자본주의적 공리라는 보편적 ‘원리’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는 이해의 개별성, 그 특수성에 의해 원자론적으로 분열되어 있지만, 각각의 개별적 의지, 개별적 욕망을 규제하고 통제하는 법칙은 정확하게 하나의 공리적 보편성을 갖는 단일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그 개별적 의지의 머리 위에서 줄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신분은 정의상 상이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는, 유기체의 상이한 부분들의 공존을 전제한다.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성직자와 전사(기사)만이 아니라 생산자와 노비 등과 같은 상이한 신분이 공존해야 한다. 그러나 계급은 그런 상이한 ‘신분’들을 갖지 않는다. 오직 하나의 보편적이고 공리적인 규칙에 따르는 오직 하나의 계급이 있을 뿐이다. 계급 안에서 기능의 차이나 역할의 차이, 지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계급 안에 존재하는 차이지 상이한 계급을 구성하는 그런 차이가 아니다. 이런 점에서 계급은 오직 하나 존재하며, 그 계급의 보편성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정의의 보편성이다. 예를 들어 흔히 말하듯이 자본가에게 고용된 관리자는 피고용자지만 기능상 자본의 기능을 수행하는 존재란 점에서 ‘기능적 자본가’고 부르주아지의 일부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좀더 밀고 나아가야 한다. 자본가가 자본의 담지자, 대리자고, 관리자가 자본가의 대리자란 점에서 자본가계급의 일부라면, 자본가에 고용되어 자본의 의지대로 노동하는 노동자 역시 자본에 포섭되어 그의 의지에 따라 노동하는 한 자본가의 대리자 아닌가? 그런 조건에서 노동자는 ‘가변자본’이고 따라서 자본의 일부다. 자본에 포섭된 노동자, 그들은 자본가계급에 포섭된 존재고, 부르주아 계급에 포섭되어 가치법칙에 따르게 된 존재다. 반드시 자본에 고용된 것은 아니라고 해도, 부르주아지와 마찬가지로 가치법칙이나 가치증식의 공리를 삶의 척도로 삼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자본의 저 보편적인(!) 공리에 복속된 단일한 계급에 속해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 여기서도 소득수준이나 직업 등은 어떤 근본적 차이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즉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그러한 공리에 복속되어 행동한다면, 그런 한에서 그는 부르주아지라는 단일한 보편적 계급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보편적 계급’이라는 말의 또 다른 함축이다.

4.부르주아지: 보편적 계급

부르주아지는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부의 증식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이용하여 생산 내지 경영에 참여하는 아주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만들어진다. 먼저 상업을 통해 형성한 자본을 갖고 전대제적 방식으로 상품을 생산하던 도시의 상인들, 무역 내지 상업으로 번 돈으로 토지를 매입하고 임노동을 고용하여 자본주의적 농장으로 경영하던 도시상인들, 자신의 소유지에 덧붙여 토지를 임대하여 경작지를 늘려가면서 점차 부를 늘려간 고전적인 독립적 소농들, 매뉴팩처 경영에서 시작하여 임노동을 고용하면서 점차 그 규모를 확장해간 고전적 제조업자들이 있다. 이른바 ‘본원적 축적’과정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구시대의 지배층들 역시 발빠르게 대응하면서 급속히 부를 증식해간 사람들은 부르주아가 되었다. 이처럼 부르주아지가 된다는 것은 그 출신이나 규모와 무관하게 영지나 토지, 혹은 다른 재산을 이용해서 재산을 증식하고 화폐를 이용하여 화폐를 증식시키는 활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공리적 보편성을 갖게 된 그 규정성을 획득하는 것에 의해, 그 규정성에 부합하는 순간 누구든 부르주아지가 되고, 그의 과거는 눈부신 화폐의 빛 아래 지워지고 사라지며 하나의 동일한 계급으로, 보편적인 계급으로 동질화된다.
그런데 이렇게 부르주아지가 되기 위해서는, 혹은 부르주아지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제공하는 이권이나 특권에 접근할 수 있어야 했고, 그런 점에서 또 다른 의미의 ‘정치적 신분’이 되거나 거기에 줄을 대야 했다. 상인이나 무역업자들처럼 국가적 독점권을 할당받거나 국가의 허가와 원조를 필요로 했던 층은 말할 것도 없고, 제조업자들 또한, 이미 본 것처럼 영토국가 자체의 성격과 밀접히 결부된 국가적 독점에 접근해야 했다. 이를 위해 자신들의 조합에 젠틀맨을 끌어들이고 그들의 힘을 빌고자 했지만, 이는 그들에게 조합 자체의 중요한 이권을 내주는 결과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조건에서 제조업자나 상인이나, 자본가들은 어떤 식으로든 귀족의 일부가 되거나 국가권력 안에 들어가려 했고, 이를 위해 자신들이 번 돈을 사용해서 매수하고 매직(賣職)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는 ‘전국적 사업’과 전쟁 등으로 인해 많은 돈을 필요로 했던 절대주의 국가의 중요한 재원 가운데 하나였고, ‘부르주아’들에게 관직을 파는 것은 절대주의 국가의 일상사가 되었다.
이런 점에서 부르주아지의 보편성은 누구에게나 적용가능한 규정이란 의미를 넘어서, 자신의 개별적 내지 특수적 이해를 국가를 통해 ‘보편적 이익’으로 변환시키는 능력을 요구했던 셈이다. 그렇게 될 경우 이제는, 19세기 영국 의회의 수많은 엔클로저법들이 보여주듯이, 공유지를 사적인 토지로 무단점취하는 것조차 충분히 가능해지고 보편적 이익의 표상 아래 정당화되게 된다.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자본주의국가의 기본적 형태성과 상대적 자율성에 대하여
  • 계급적 지배로의 전화 등 - 의 관계 속에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 점에서 사회적 지배-피지배관계들의 중층결정 및 중층결정 속의 과잉결정은 물론 비계급적 지배-피지배관계의 계급적 지배-피지배관계로의 전화 역시 정치현상을 파악하는 데에 커다란 중요성을 지닌다.사회적 지배-피지배관계는 그러한 지배-피지배관계를 둘러싼 인간집단들 간의 (권력) 투쟁의 산물인 동시에 조건이 된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이미 성립되어 있는 사회적 지배-피

  • [북한사회학] 남북한교육제도
  • 위하여 성인직업교육에 점점 더 많이 참여한다. 연방군은 군인들을 연방군 전문학교에서 직업적으로 성인교육을 시킨다. ♥정치교육성인정치교육은 주로 정당과 밀접히 관련된 재단들의 활동에 의해 실시된다. 프리드리히-에버하르트 재단, 프리이드리히-나우만 재단, 콘라트-아데나우어 재단, 한스-자이델 재단, 하인리히-뵐 재단 등이 있다. 교회들도 성인교육분야에 적극적이다. 기독교 교회는 15개의 교육시설을 통해 청소년 문제나 시사문제들에

  • [북한사회론] 남북한교육제도비교
  • 위하여 성인직업교육에 점점 더 많이 참여한다. 연방군은 군인들을 연방군 전문학교에서 직업적으로 성인교육을 시킨다. ♥정치교육성인정치교육은 주로 정당과 밀접히 관련된 재단들의 활동에 의해 실시된다. 프리드리히-에버하르트 재단, 프리이드리히-나우만 재단, 콘라트-아데나우어 재단, 한스-자이델 재단, 하인리히-뵐 재단 등이 있다. 교회들도 성인교육분야에 적극적이다. 기독교 교회는 15개의 교육시설을 통해 청소년 문제나 시사문제들에

  • [시민사회][집단이기주의]시민사회의 개념, 시민사회의 종류, 시민사회의 특징, 시민사회의 형성, 시민사회의 발달, 시민사회의 내부구성, 시민사회의 연구, 시민사회의 집단이기주의, 시민사회의 대의민주주의 분석
  • 계급적 갈등과 적대를 순화시키게 된다. 그럼으로 헤게모니 투쟁의 장으로서 시민사회가 존재하는 것이다.Ⅳ. 시민사회의 특징시민사회의 성숙함을 이해하고 이에 따른다면 시민사회의 폐쇄적 경계선은 무의미해지는 측면도 있는 것이다. 시민에게 있어서 시민과 시민 상호간의 약속과 계약이 중요한 것은 모든 개인에게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성이 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상호간의 협동관계(協

  • [시민사회] 한국 정치의 변동과정과 시민사회의 형성과정
  • 정치 변동과의 관련해서 , 국가 개념과는 다른 영역의 문제들을 제기한다. 정치권력을 둘러싼 각 정치 세력 간의 투쟁, 권력구조의 특성과 특정 정권의 생존력 등의 문제는 국가의 개념으로는 해명되기 어렵다.③ 정치사회현대정치에서는 많은 경우 공식적인 정치사회의 일원이 아닌 정치 행위자들 역시 정치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 되거나 정치 사회의 자체의 성격과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정치 변동에서 차지하는 정치 사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