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물굿, 풍물놀이] 풍물놀이(풍물굿)의 정의와 명칭, 풍물놀이(풍물굿)의 특징, 풍물놀이(풍물굿)의 지역적 분포, 풍물놀이(풍물굿)의 판도, 풍물놀이(풍물굿)의 수난, 풍물놀이(풍물굿)의 극복 과제 분석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09.05.02 / 2019.12.24
  • 10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5,0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목차
Ⅰ. 서론

Ⅱ. 풍물놀이(풍물굿)의 정의

Ⅲ. 풍물놀이(풍물굿)의 명칭
1. 농악
2. 사물놀이
3. 풍장
4. 두레
5. 굿
6. 매구·매굿·매귀(埋鬼)
7. 풍물·풍물굿

Ⅳ. 풍물놀이(풍물굿)의 특징
1. 생산계급의 공동체적인 문화예술
2. 풍물은 총체적인 특징이 존재
3. 풍물은 민중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것
4. 풍물은 계속 변화 발전한다는 것

Ⅴ. 풍물놀이(풍물굿)의 지역적 분포
1. 경기농악
2. 영동농악
3. 호남우도농악
4. 호남좌도농악
5. 경남농악
6. 경북농악

Ⅵ. 풍물놀이(풍물굿)의 판도

Ⅶ. 풍물놀이(풍물굿)의 수난
1. 일제시대 풍물의 단절
2. 해방후에서 현재까지

Ⅹ. 풍물놀이(풍물굿)의 극복 과제

Ⅺ.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풍물의 기원을 찾으려면 저 멀리 원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짐승을 잡거나 농사를 지은 후 하늘에 감사를 지내고 더욱 많은 생산을 기원하는 제천의식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때 행해지던 것을 풍물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물론 원시적인 악기나 장단은 이때부터 만들어졌을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풍물은 장단이나 악기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마한상이오월 하종흘 제귀신 군취가무음주 주야무휴 기무수십인 구기상수답지저앙 수족상응 절주사탁무 십월농공필 역부여지 ]] - 삼국지 위지 동이전(위지 동이전)
((마한(마한)에서는 5월에 파종이 끝나면 항상 귀신에게 제(제)를 올렸다. 마을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주야로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술과 음식을 먹었다. 그 춤은 여러명이 한 줄을 이루어 몸을 구부리기도 하고 허리를 펴기도 하며 손과 발을 서로 맞추는 것이었다. 절주(절주)는 마치 중국의 탁무(탁무)와 비슷하였다. 10월에 농사가 끝나도 그와 같이 하였다.))
ꡐ제귀신(제귀신)ꡑ이라 함은 무당들이 사제(사제)한 동제굿과 마당밟기(지신밟기)를 연상케 하고, ꡐ군취가무(군취가무)ꡑ라 함은 신성한 놀이장에서의 신명난 춤을 말한다. ꡐ탁무(탁무)ꡑ라 함은 지금의 풍물형태를 가리킨 것이 아닌가 보아지는데, 그 형식 즉 제천의식(제천의식)은 어떠한 내용이었으며, 예능적 형식은 어떠한 모양을 하였을까 하는 점이 풍물의 유래를 규정지어 주리라 보여진다.
원시시대의 제천의식 또는 집단적 바람을 비는 제의형태는 종교적 의식을 주재하고 대행해 줄 무당(샤만)이 나타나기 이전이므로 집단적 신명을 통해 신과 만나고 기원하는 형태였으며, 풍물굿의 원시적 형태로서의 집단춤과 쉽게 소리를 낼 수 있었던 타악기를 썼을 것이다. 이것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오늘날의 틀을 갖춘 것은 조선시대 이후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풍물굿에서의 악기와 연희형태 가운데 불교에서 들어온 것이 많은데, 이런 악기와 연희 형태가 기층민중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불교가 탄압을 받았던 조선시대이며, 풍물굿이 농촌의 두레공동체와 함께 커 온 것으로 볼 때 두레의 생산과정과 궤를 같이 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함께 일하는 것이 필요하게 된 것은 이앙법(모내기)이 들어온 조선시대 이후로 추측할 수 있다.
참고문헌
◈ 김익두(1994), 풍물굿의 공연원리와 연행적 성격 호남지방의 풍물굿을 중심으로
◈ 김헌선(1991), 풍물굿에서 사물놀이까지, 귀인사
◈ 권희덕(1995), 농악연구, 서울: 세일사
◈ 김헌선(1988), 사물놀이란 무엇인가, 도서출판귀인사
◈ 김현숙(1999), 사물놀이의 기초적 지도 방안에 대한 연구, 한양대학교 교육대학원
◈ 송광춘(1994), 한국의 농악, 서울 진서원
◈ 이성천 외(1994), 국악개론, 풍남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국문학개론] 가면극을 중심으로 바라 본 민속극
  • 굿,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동의 풍물패굿, 경북 안동군 풍천면 하회동의 하회별신굿 등의 에를 보면, 모두 가면을 쓰고 풍물패와 함게 마을 수호신에게 굿을 하면서 가면극을 했다는 사실ㅇ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풍물패, 가면을 쓴 사람들, 구경꾼이 마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모의적인 싸움이나 성행위 등을 하는데, 가면의 이름은 이매, 초랭이, 양반, 각시 등 인간의 명칭이지만, 이것은 본래 굿에서의 신의 가면이 연극으로 전이되면서 인간

  • [한국고전시가론] 잡가
  • 분석표12잡가의 형식 구조 정리표② 휘모리잡가휘모리잡가는 서울과 경기도 지방에서 품팔이로 생계를 이어가던 소리꾼들이 한자리에 모여 흥겹게 놀 때 부르던 잡가로 긴사설을 휘몰아치듯 빠른 장단으로 늘어놓는 것이다. 빠른 율동에 따라서 서로 관련된 말을 계속 열거하는 것을 특징으로 삼고 십이잡가를 부르는 소리 창에서 끝 순서를 휘몰이 잡가로 장식해 흥을 고조하고 익살스러운 느낌을 듬뿍 퍼뜨리는데 그 수법이 사설시조와 유사하

  • [방송대,] 구비문학개론 요약
  • 놀이, 불놀이 등의 곡예)에서, 대사는 소학지희에서 비롯한계: 가면을 쓰지 않은 광대가 혼자서 즉흥적으로 엮어가는 시사적인 화극이었다. ②기악설백제인 미마지가 중국에서 배워 일본에 전한 기악이 우리 가면극의 기원 한계: 기악은 黙劇이었으며, 불교의 선전극이었다. ③농경의식설(제의기원설)농사의 풍년을 빌던 여러 형태의 부락제의에서 비롯 ㉠농경의식설: 풍년을 비는 농경제의 의식에서 비롯. 연극발생의 일반론. ㉡농악굿기원설: 농촌

  • [지역축제]축제의 기본개념과 사회적 연관성
  • 놀이마당 등을 갖추고 있으며 매주 토요일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진도가 보유하고 있는 씻김굿을 비롯하여 강강술래, 남도들노래, 다시래기, 진도북놀이, 진도아리랑, 사물놀이 등 토속민속공연이 정기적으로 공연된다.○ 운림산방(기념물 제51호)조선말기 남화의 대가인 소치 허유 선생이 말년에 기거하던 화실의 당호이며 14평의 초가, 3간의 사랑채, 24평의 화실, 480평의 연못이 있고 연못 가운데의 작은 섬안에 소치가 심은 배롱나무가 있다. 소치 선

  • [사범교육] 풍물의 이해
  • 굿으로 줄당기기, 차전놀이 등 대동놀이를 이끌어 대동판을 형성케 하는 역할들을 수행하였다. 이처럼 풍물은 우리의 생활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 왔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서구적 예술 구분 방식에 따라 풍물을 몇 가지 타악기로 구성된 음악의 한 장르로 구분해 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풍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오는 오류이다. ③ 그 외의 명칭다른 명칭으로는, ‘매구’ ‘풍장’ ‘두레’ ‘걸립’ 등으로 부르고 세분화해서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