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와 한국사] 왜관의 역사와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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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본론 Ⅰ
(1) 왜관의 정의
(2) 왜관의 역사
(3) 왜관에 관한 조약들
3. 본론 Ⅱ
(1) 1697년 왜인 집단난출사건
(2) 삼은(蔘銀)교역과 인삼대왕고은의 발행
(3) 왜인과 조선 여인의 풍기문제
4. 마침
5.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서론

모든 고지도가 그러하듯 지금에 남아있는 자료들은 우리나라 전체에 대한 것이고 그나마도 조선 중후기에 밀집되어 있다. 또한 이 주제의 장점이자 단점은 그 관련 대상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전국 8도 어디를 고르더라도 무방한 지역의 다양성과 얼마 남아있지 않은 사료의 한정성을 고려했을 때 우리조가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그 지역에 대해 분석으로 진행해나가는 것이었고 많은 논의 끝에 부산 지역을 선정하였다.
선정된 부산지역의 지도를 찾아보고 토의하던 중 ‘倭館’이라는 다른 지역에선 볼 수 없는 지명을 발견하였다. 우리 조는 왜관은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에 대해 자세히 조사해보기로 하였다.
우선 도입부분에서는 왜관의 정의와 역사, 그리고 주요조약들을 확인해 볼 것이다. 다음으로 전개부분에서는 왜관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알아봄으로써 왜관을 통해 당시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문제를 조명할 것이다.

2. 본론 Ⅰ
(1) 왜관의 정의
우선 왜관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위해 백과사전을 찾아보았다.
왜관 [倭館]
조선시대 일본인의 입국 및 교역을 위하여 설치하였던 장소로, 사관(使館) 및 상관(商館)의 기능을 담당하던 곳.
조선은 건국 직후부터 왜구를 평화적인 통교자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여러 가지 회유책을 추진하였다. 왜구에 대한 회유책으로는 그들의 침략원인이 경제적인 데에 있었으므로, 왜에게 교역을 허가하여 줌으로써 경제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평화적으로 통교를 원하는 경우 남해안의 어느 포구에서든지 자유로운 무역을 허가하였는데, 이들을 성격에 따라서 사송왜인(使送倭人) ·흥리왜인(興利倭人) ·투화왜인(投化倭人)으로 분류한다.
왜인들은 처음에 경상도의 연해안을 주로 이용하였지만, 점차 그 지역을 확대하여 무질서하게 내왕하게 되자, 조선에서는 그 폐단을 줄이기 위하여 1407년(태종 7)부터 경상도 병마절도사 강사덕(姜思德)의 건의에 따라 부산포(釜山浦)와 내이포(乃而浦)를 왜인의 도박처로 한정시켜 출입과 교역품을 통제하기 시작하였으며, 상경왜인에게는 한양에 동평관(東平館)을 설치하여 숙소로 이용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제약은 잘 지켜지지 않았고, 또 도항왜인이 급증함에 따라 1418년에는 염포(鹽浦)와 가배량(加背梁) 두 곳을 더 늘려 4곳으로 하였다가, 1419년 쓰시마정벌로 일시 폐쇄하였다. 그 후 쓰시마도주의 간청으로 1423년 다시 부산포와 내이포 두 곳을 허락하였고, 1426년에는 염포를 추가함에 따라 삼포제도(三浦制度)를 확립, 제포 30호, 부산포 20호, 염포 10호의 왜관을 설치하여 항거(恒居)왜인을 거주하게 하면서 도항왜인의 접대와 교역을 허가하였다. 이와 같이 왜관은 왜인들의 행동의 제한, 국가기밀의 누설방지, 국방상의 이유로 접대처와 교역처를 한정시키기 위하여 비용을 부담하면서 특별히 설치한 것이다.
1544년 다른 곳의 왜관은 모두 폐쇄하고 부산포에만 단일 왜관제도를 설치한 후, 임진왜란 때 일시 폐쇄되었다가 임란 후 몇 차례 장소를 옮긴 후 1678년 초량왜관이 신축되었으며, 1872년 메이지[明治]정부에 의해 점령될 당시까지 양국의 외교 ·무역의 중심지로 존속되었다. 그리고 양국에서는 왜관에 관리를 파견하여 외교 및 무역 업무를 총괄하도록 하였다. 인터넷 자료 : 네이버 백과사전 - http://100.naver.com/100.nhn?docid=117555


이러한 정의로부터 왜관이 크게 대일 무역과 외교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고 그 지명과 위치가 꾸준히 바뀌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우선 이런 변화에 초점을 맞춰 진행해보기로 하였다.

(2) 왜관의 역사

참고문헌
강대민, 문영백. 『부산의 역사』, 경성대학교 출판부, 1994
김용욱. 『부산의 역사와 정신 1』, 전망, 2001
한일관계사학회, 『한일 양국의 상호인식』, 국학자료원, 1998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 2천년 보이는 역사, 보이지 않는 역사 (근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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