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행정] 비교정부론 - 소련붕괴와 고르바쵸프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09.03.23 / 2019.12.24
  • 6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97)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1,2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목차
Ⅰ. 序論
레즈네프 시기에 사회주의의 믿음에 대한 잠재적인 위기가 충족되었고, 그러한 위기가 현실화되는 시기는 고르바쵸프의 개혁 정책의 초기에 나타났다. 그리고 현실적 페레스토이카가 소연방 ‘붕괴의 스위치’를 누름으로써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는 현실화 되었다. 물론, 고르바쵸프는 소련 사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개혁정책을 시도하였으나, 오히려 위기를 강화시키고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이데올리고상의 위기는 소연방 붕괴의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로 작용한다. 국가 지도자들이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대한 불신과 이를 대체할 국가발전 이데올로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고르바쵸프의 ‘현실적’ 페레스토이카는 1989-1991년에 경제 약하는 물론, 행정부를 마비시키고, 분리주의적 경향을 유발시켰으며, 소련의 국제적인 위치를 약화시켰다
그 결과 국가발전에 간한 정책 및 발전 이데올로기의 부재현상은 서구에 대한 의존의 정도를 증가시켰다. 서구화의 물결은 서구식 정치체제의 차용으로 나타났다. 서구 자본주의 국가의 정치체제에 있어서의 중심 요소인 다당제, 의회, 자유선거, 대통령 중심제, 삼권분립 등은 무분별으로 수용되었다. 그러나 소련의 정치 풍도에 익숙하지 못한 서구의 정치체제 이식은 소련을 민주주의적 형태로 변화시키지 못하고 고르바쵸프에 의한 ‘페레스토이카 독재’로 결과되어 나타났다.
본문내용
Ⅱ. 蘇聯邦의 해체와 소멸
1.. 고르바초프 현상 : 새로운 思考
소연방의 해체와 소멸은 한 세기에 한번 나타날 수 있는 국제정치사적인 현상이었다. 전후 국제질서의 기본의 하나였던 냉전체제를 종식시킨 사상적 심층동인인 소련 공산당의 해체로부터 시작하였다. 이는 고르바초프현상의 여러 가지 요인 중 특히 페레스트로이카에서의 새로운 사고(New Thinking)와 관련되어 있었다. 소련이 대외정책을 새롭게 전개하게 되는 기초로서 '새로운 思考'라는 개념은 주로 대외정책 분야에서부터 기인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이미 고르바초프 이전에 등장되고 있었다. 개혁파에 속하는 야코브레프, 나자그라진, 샤프나자로프, 보빈 등 학자와 중견 저널리스트들에 의해서 국제정치의 본질적인 변화가 야기되고 있다는 것이 제기되고 있었다. 야코브레프는 소련의 전통적인 세계질서는 미소간의 양극체제를 기초로 하여 형성되고 있다는 그로미코의 이론에 대하여, 세계는 미국, 유럽 그리고 일본의 세 중심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제국주의의 세 中心論을 내세우고 세계질서의 다극화 현상을 주의깊게 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보빈은 세계가 다섯 개의 힘의 중심, 즉 미국, 유럽, 일본, 중국 그리고 소련지역으로 갈라져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논의과정에서 나온 '새로운 사고'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의 요소를 담고 있다. 첫째, 상호의존(Interdependence)이라는 새로운 세계관의 채택이다. 세계질서가 단순하게 동서간에 대립과 투쟁이라는 공식처럼 이분화된 것이 아니라, 동서대립과 남북문제를 포함하여 대립과 협력을 하는 것으로 파악된 것이다. 세계질서의 상호의존이라는 국제관계의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둘째, 국제관계의 범지구화(Globalization)라는 개념의 도입이다. 이는 세계질서가 단순한 체계적인 차이나 이념적인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입장에서 출발하였다. 핵전쟁이나 범세계적인 생태와 환경문제 또는 제3세계의 빈곤문제들은 체제적인 문제에서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며, 체제나 이념을 넘어서 협력해야하는 문제라는 생각인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위와 같은 개념의 도입에 따라 기존의 계급투쟁사관을 기초로 하는 국제정치사관이 후퇴하였다는 점이다. 새로운 사고의 대두로 인해 국제정치는 종래 도그마틱(dogmatic)한 계급투쟁을 강조하고 동서간의 대립을 강조하였던 시각으로부터 보다 유연하게 상호의존과 협조체제를 중시하는 국제적인 시각으로 변화한 것이다.
2. 고르바초프의 딜레마
1985년에 고르바초프가 등장한 후 미소간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냉전에서 야기된 양국간 핵억지력의 대립 문제였다. 미소간의 핵경쟁은 소련이 먼저 스푸트니크 미사일을 발사시킨 이래 케네디가 지적한 미사일 갭(Missile Gap) 문제를 거쳐 우주개발 경쟁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어 왔다. 이러한 양국간의 핵경쟁은 1983년 레이건 행정부가 우주방위계획(Strategic Defense Initiatives)을 발표함으로써 그 절정에 이르렀으며, 이후의 핵정책 전개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었다.
실제로 우주방위계획(SDI)의 목적은 브레즈네프 시대에 구축된 소련의 미사일 체계를 무력화시키는데 두고 있었다. 고르바초프로는 이를 상쇄시킬 수 있는 군사체계를 전개시켜야만 했다. 그러나 소련이 우주방위계획(SDI)을 상쇄시킬 수 있기 위해서는 재정상으로 5~6천억 불이 필요했으며, 시간적으로도 4~5년이 소요되어야 했다. 그러나 소련은 계속적인 경제침체로 인해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재력과 시간이 부족하였다. 이 점이 당시 소련과 고르바초프가 안고 있었던 딜레마였다.
3. 소련공산당의 해체
1991년 8월 24일 고르바초프는 공산당 서기장직을 사임하고 당중앙위원회에 당의 해산을 권고함으로써 사실상 공산당의 해체를 선언하였다. 이는 1991년 8월 19일에 야기되었던 쿠데타의 배후에 소련 공산당의 세력이 잠재하고 있었다는 보리스 옐친 등 반쿠데타파의 주장에 고르바초프가 저항할 수 없게 되어 취한 조치였다.
소련 공산당은 일당독재체제하에서 유일한 정당이었으며 당의 지도라는 관점에서 당, 국가 행정기구, 군부, 국가보안위원회(KGB), 기타 사회의 모든 단체를 장악하는 권력중심기구였다. 이러한 소련 공산당의 해체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첫째, 개개의 소련 공산당 최고지도자들의 거취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레닌 이래 소련의 모든 공산당 지도자들을 선출한 모체인 黨, 그 자체가 해체되었다는 점이다. 둘째,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주의 정권을 창출하였던 소련 공산당이 해체됨에 따라 소련을 모범으로 하여 아직도 공산당을 중심으로 하여 권력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 북한, 베트남 그리고 쿠바에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는 점이다.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러시아문화] 구소련의 몰락과 그 이후
  • 소련 공산주의는 공산주의를 유지하려는 보수세력의 쿠테타에 의해서 붕괴되었다. 지난 70여 년간 소련 공산당은 좌파 이념의 본거지로써 최초의 마르크스 이념의 의한 국가로써 역할을 누려왔다. 그래서 구소련의 붕괴는 한 공산국가의 붕괴가 아닌 공산진영의 몰락으로 이어진 것이다. 소연방의 붕괴는 과거 역사에 걸쳐 있어 왔던 한 국가(또는 왕조)의 생성 및 소멸 과정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소연방은 외세의 침략에 의해 멸망된 것도 아니고, 내

  • [러시아문화] 구소련의 몰락과 그 이후
  • 소련 공산주의는 공산주의를 유지하려는 보수세력의 쿠테타에 의해서 붕괴되었다. 지난 70여 년간 소련 공산당은 좌파 이념의 본거지로써 최초의 마르크스 이념의 의한 국가로써 역할을 누려왔다. 그래서 구소련의 붕괴는 한 공산국가의 붕괴가 아닌 공산진영의 몰락으로 이어진 것이다. 소연방의 붕괴는 과거 역사에 걸쳐 있어 왔던 한 국가(또는 왕조)의 생성 및 소멸 과정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소연방은 외세의 침략에 의해 멸망된 것도 아니고, 내

  • 구소련의 몰락과 그 이후.....
  • 소련 공산주의는 공산주의를 유지하려는 보수세력의 쿠테타에 의해서 붕괴되었다. 지난 70여 년간 소련 공산당은 좌파 이념의 본거지로써 최초의 마르크스 이념의 의한 국가로써 역할을 누려왔다. 그래서 구소련의 붕괴는 한 공산국가의 붕괴가 아닌 공산진영의 몰락으로 이어진 것이다. 소연방의 붕괴는 과거 역사에 걸쳐 있어 왔던 한 국가(또는 왕조)의 생성 및 소멸 과정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소연방은 외세의 침략에 의해 멸망된 것도 아니고, 내

  • [정치학] 구소련의 붕괴후 우즈베키스탄과 에스토니아의 상이한 발전양상
  • 소련의 공화국으로서의 과거 청산을 의미하기 때문에 한 국가에 종속되지 않고 완전히 독립하여 민주화를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3. 우즈베키스탄과 에스토니아의 사회․문화적 환경 비교․분석31. 지리적 영향과 기후우즈베키스탄은 광업개발이 여전히 국가가 독점적으로 소유, 개발을 하고 있음에도 내륙국가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한 운송비의 과중과 수출대금회수의 비 확실성 등의 제약요건이 있다. 또한 전형적인 사막기후로

  • [페레스트로이카]고르바초프 페레스트로이카의 개념, 고르바초프 페레스트로이카의 배경, 고르바초프 페레스트로이카의 경제위기, 고르바초프 페레스트로이카의 정치개혁, 고르바초프 페레스트로이카의 정책실패
  • 붕괴의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다. 국가 지도자들이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불신과 이를 대체 할 국가발전의 이데올로기를 제시하지 못했다. 결국 고르바쵸프의 ‘현실적’ 뻬리스트로이카는 경제악화는 물론, 행정부를 마비시키고, 분리주의적 경향을 유발시켜으며, 소련의 국제적인 위치를 약화시켰다.고르바쵸프정부의 ‘현실적’ 뻬레스트로이카는 사회주의의 절대적인 가치를 부정하였다. 뻬레시트로이카의 중요한 목적이 사회주의 사회에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