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키의 어머니, 어머니]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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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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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막심 고리키와 《어머니》
2. 막심 고리키의 작품세계
3. 어머니의 상징적 의미 소고
4.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의 효시, 어머니
5. 위대한 혁명사상, 그 이상의 위대한 모성애
-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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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막심 고리키와 《어머니》
《어머니》의 작가 막심 고리키는 볼가 강 연안에서 하층계급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4세 때 부친을 여의고 조부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다. 12세에 구두 수선공을 시작으로 접시닦이. 심부름꾼. 수위. 부두노동자로 일하면서 학생. 지식인. 혁명가 등과 접촉을 시작했다. 특히 그는 인민 민주주의(일종의 사회주의)와 톨스토이를 맛보았고 톨스토이적 사회공동체를 꿈꾸었다. 훗날 사회주의 혁명가로서의 면모가 조금씩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경찰의 밀정노릇을 하라는 유혹을 받기도 하고, 연애를 시도해보지만 여지없이 실패하였다. 이로 인해 염세증에 걸려 자살을 기도하는 등 보통 젊은이처럼 청춘을 앓았다. 1892년 처음으로 '막심 고리키'라는 필명으로 [마카르 추드라]를 발표하였고, 이어 [첼카쉬]를 발표하여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고리키'라는 말은 '고통받는 자'라는 뜻으로 고난 속의 러시아 민중의 고통을 짊어지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1899년에는 그때까지 써모은 단편 등을 [기록과 소설]이라는 제목으로 출판, 일약 유명작가가 되었다. 1901년에 발표하여 선풍을 일으킨 산문시 [바다제비의 노래]는 혁명의 횃불이 되었으며, 같은 해에 희곡 [소시민]을 발표해 극작가로서도 높은 평판을 얻었다. 체호프의 격려 편지를 받은 것도 이때쯤이고, 멀리서만 바라보던 톨스토이도 만날 수 있었다. 구두닦이 인생에서 유명작가로 엄청난 신분상승을 했던 것이다.
그 뒤 혁명운동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체포되나, 톨스토이의 항의로 석방되었다. 이때부터 지병인 폐결핵이 악화, 요양지를 찾아 전전하였다. 1902년 과학아카데미의 명예회원으로 선출되었으나, 혁명운동과 관계가 있다는 이유로 황제에 의해 취소되었다. 이 해에 하층계급의 고통을 그린 [밑바닥]을 발표, 국내외에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1905년 처음으로 레닌을 만나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피의 일요일' 에 가폰 신부가 이끄는 시위대에 적극 참가하여 체포되었으나, 국내외의 격렬한 항의로 곧 석방되었다. 1906년에는 당의 자금 모금을 위해 미국에 갔다가 귀국거부를 당해, 할 수 없이 이탈리아의 카프리 섬에 정착하여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모델이라 불리는 《어머니》(1907)를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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