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전산문] 구양수 추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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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구양수의 문학사상 및 작품 배경
2. 구양수의 삶과 문학세계
3. <추성부> 해석 - 첫 번째 부분
두 번째 부분
세 번째 부분
본문내용
1. 창작배경
1) 도의 수양
훌륭한 문학을 창작하기 위하여 작가는 사전에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 구양수는 작가의 내면적 도덕수양을 강조하고 있다. 즉 작가의 도덕수양과 문학작품의 관계에서 작가의 도, 다시 말하면 작가의 도덕수양이 지배적인 위치에 있다고 여겼다. 이것은 유가 사상가들이 역대로 人品과 文品의 관계를 중시하여, 요컨대 문장 짓는 것을 배우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사람됨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구양수는 훌륭한 작품을 창작하기 위한 작가의 준비단계, 즉 창작배경으로써 도의 수양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구양수는 먼저 無爲道士 李暻仙에게 준 시 <贈無爲軍李道士>에서 “오직 그 뿌리를 기르면 자연히 그 꽃은 빛이 난다네(<구양수전집 居士集> 券4 참조)라고 하여 성숙한 도의 수양을 피력한 적이 있다. 이 말은 韓愈가 도덕수양을 강조하면서 나무와 등잔을 비유로 표현하여 ”그 뿌리를 길러 그 열매를 기다리고, 등잔에 기름을 부어 그 밝음을 기다리십시오. 뿌리가 무성하면 그 열매가 가득 열릴 것이고, 기름이 충분하면 그 빛이 밝을 것입니다“ 라고 한 말과 일맥상통한다. 또 姚編禮에게 준 편지 <與姚編禮>에서도 도의 수양을 강조한 일면을 찾아볼 수 있다 :
군자의 말은 반드시 진실되어야 하는데, 진실됨이 오래되면 반드시 드러나게 된다. 대저 마음 속에 있는 것은 드러나지 않음이 없었던 것이다.(<구양수전집 書簡> 券7 참조)

<<中庸>> 에서도 “진실되게 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 ” 라고 하였는데, 구양수도 誠하려고 하는 것을 도록 파악하여 도덕을 갖춘 군자의 말은 진실되어야 하며, 이러한 진실을 오랫동안 가슴속에 쌓아두면 모두가 밖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하였다. 이 말을 좀더 깊이 생각해보면 정치적 업적이건 문학창작이건 간에 밖으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먼저 가슴 속에 도를 오랫동안 쌓아야 한다는 말이므로 결국 이 말도 도의 수양을 강조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는 祖擇之에게 답한 편지인 <答祖擇之書>에서 먼저 당시의 尊師重道하지 않은 풍토에 대해서 이렇게 비판을 하고 있다 :
제가 듣기로 옛날부터 배우는 자는 반드시 스승을 존경하였고 스승이 존경을 받은 뒤에야 都가 존귀해졌으며, 도가 존귀해진 뒤에야 그것을 돈독히 신봉하게 되었고, 돈독히 신봉된
뒤에야 스스로 굳게 지키게 되었으며, 굳게 지킨 뒤에야 과감하게 응용하게 되었고, 과감하게 응용할수 있어야만 두려워 하는 바가 없게 되어 믿음을 바꾸지 않게 되었다 합니다. 三代가 쇠망한 후 , 학교가 폐지되었지만, 兩漢에 이르기 까지만 해도 스승을 따라 道를 배우는 풍속이 여전히 남아 있었으므로 배우는 사람들은 각자 그들의 경전을 굳게 지키며 스스로 응용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후대에 와서는 澣代의 정치․문장과 당시에 한 일들을 왕왕 따라가지를 못하는데, 그것은 그 근원이 깊기 때문입니다. 후대에 師法이점차 파괴되어 오다가 지금의 세상에는 스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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