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김동리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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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
김동리의 생애에 대해 다룬 리포트입니다.

내용충실!
목차
◈ 목 차 ◈
1. 이 름
2. 출 생
3. 용모와 성격
4. 가족관계
5. 배우자 및 연인관계, 그리고 자녀
6. 학 력
7. 교우관계
8. 직 업
9. 문단경력 및 활동
10. 김동리의 만년
♠ 참 고 문 헌 ♠
본문내용
1. 이 름
조선 초기의 문인 김종직(金宗直)의 17대 손으로, 본관은 선산(善山;일선一善), 본명은 김창귀(昌貴), “돌림자 ‘창’이 별로 좋지 않으니 다른 이름으로 지어야한다”는 맏형 (범부선생〈한학자 김기봉金基鳳〉)의 당부대로 출생 후 한참을 이름도 없이 지내게 하다가 어느 날 호구 조사를 나온 호적계원이 “귀한 아들이니 창귀라고 올리면 될 것 아니냐”고 독촉을 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창귀로 지었다고 한다. 호는 동리(東里)로 맏형(범부선생)이 지어주었다. 아명(兒名)은 창봉(昌鳳)이라 불렸으며 문단에 등단할 즈음엔 시종(始鍾)이란 字를 썼는데, 字 또한 맏형(범부선생)이 지어준 것이다. 족보명은 태창(太昌)이다.

2. 출 생
김동리는 1913년(계축년) 11월 24일생 소띠로 음력 또한 11월 24일로 같다. 수필집에 의하면 생일은 음력으로 지켰다고 한다.
경북 경주시 성건동 186번지에서 5남매(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김동리는, 1928년 열여섯 살의 나이로 서울로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그곳에서 죽 자랐다. 김동리의 생가는 조그만 초가였다고 하나 예전에 이미 사라졌고 한복집 등 세 채의 집이 들어서 있었다.

3. 용모와 성격
김동리는 키가 작은 편이었다. 김동리는 수필집에 자신이 키가 작은 것은 어머니 때문이었다고 적었다.

어머니는 몸이 작았다. 키도 작고 덩치도 작았다. 이에 대해서 나만 유독 불만을 풀고 있었는데 그 까닭은 형님 둘과 누님 둘은 아버지의 체격을 닮아서인지 모두가 거의 중간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누님 둘은 좀 작은 편들이었으나 여자 키는 좀 작은 편이 좋다 해서 별로 문제되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나만이 키 작은 것에 불만을 풀고, 그것이 어머니 때문이라고 화를 내곤 했다. 어머니는 웃으며 왜 훤칠하고 잘난 어미 찾아 태어나지 않고 이 쫌뱅이(키 작은 사람) 못난 에미한테 태어났느냐고 나를 도로 나무라기만 했지만, 정작 해명은 언제나 곁의 사람들이 대신했다. 그 해명의 내용은 대개 두 가지로 요약되었다. 하나는 우리 15대조(나에게는 16대조)인 문충공이 몸집은 작았지만 천하의 명유(名儒)라 그 뒤부터 우리 가문에서는 키 작은 며느리를 봐야 한다는 것이 전통같이 되어 있어서 어머니같이 키 작은 색시를 맞아들인 것이니 이것은 한 가문의 방침이라 감히 왈가왈부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어머니의 몸집이 비록 작다 하지만 그것은 뒤에서 보는 경우요, 정면으로 대하면 아무도 작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정면을 보지 않고 뒤에 대고 손가락질하거나 입질하는 것은 못나고 비열한 사람들의 것이니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수필집에서 김동리는 몸집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어머니를 닮은 것 같다고 적었다. 그러나 동리는 아버지도 닮아 술도 좋아했고 여자도 좋아했다.
어릴 때 그는 아버지가 먹고 난 술그릇에 남은 약간의 술껑치와 술 조금을 먹고 취해 얼굴이 ‘홍동지’가 되어 곧잘 툇마루에서 섬돌 위로, 섬돌에서 뜰 위로 굴러 떨어지곤 했다. 그리하여 뜰에까지 내려가면, 어린 김동리는 비틀거리며 뜰 가운데를 돌아다니곤 하여. 그로 인해 동네 아이들의 구경꺼리가 되곤 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의 술사랑은 계속되어 누군가와 만나 술을 나누지 않더라도, 집에서 반주로 얼굴이 얼근해질 정도가 돼서야 밥술을 들곤 했다고 한다.
여자와의 사랑도 열렬하여 김월계 여사와 손소희 여사, 서영은 여사와 각각 혼인을 하여 부부의 연을 맺었다. 외모가 달리면 때로는 연애하는 데 있어 자신감을 잃을 수도 있게 마련이나 김동리는 젊은 시절의 사진을 보니 키는 모르겠지만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외모를 가지고 있어 연애하는 데 있어 거리낄 것이 없을 것도 같았다.

참고문헌
♠ 참 고 문 헌 ♠

홍기돈. “김동리 연구” 중앙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4.

김택중. “김동리 소설의 문학지형학 연구”. 대전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0.

김동리. 《밥과 사랑과 그리고 永遠 ; 金東里. 人生隨想》. 思社硏. 1985.

신효정. 《문학산책》. 답게. 2000.

이상진. 《한국 근대 작가 12인의 초상》. 옛오늘. 2004.

정혜영. “김동리 연구 (1) - 삶의 근거, 문학의 근거 -”. 《문학과 언어 제17집》. 문학과 언어학회. 1996.

편집부. “[작가특집] 김동리”. 《작가세계》. 세계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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