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 도서 반환에 대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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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외규장각은 무엇이며 무엇을 보관하고 있었는가?

2. 외규장각 도서의 피탈 경위 - 병인양요

3. 파리 국립도서관 소재 외규장각 도서의 현황

4. 의궤도서의 중요성

5.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 대한 문제

6. 외규장각 도서 반환의 국제법적 고찰과 국제법적 해결 가능성

7. 문화재 반환 사례

8. 결 어

9. 참고문헌 및 웹사이트
본문내용
1. 외규장각은 무엇이며 무엇을 보관하고 있었는가?

(!) 외규장각
규장각의 부속기관으로서 내각(內閣)이라고도 한다. 정조(正祖)가 즉위한 1776년 궐내(闕內)에 설치, 역대 국왕의 시문, 친필(親筆)의 서화(書畵)·고명(顧命)·유교(遺敎)·선보(璿譜:王世譜)·보감(寶鑑) 등을 보관 관리하던 곳이다. 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한 목적은 단순히 역대 국왕의 어제·어필을 보관하는 일뿐만 아니라 당시왕권을 위태롭게 하던 척리(戚里)·환관(宦官) 들의 음모와 횡포를 누르고 건국 이래의 정치·경제·사회 등의 현실문제의 해결은 곧 학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 국가적 규모로 도서를 수집하고 보존 간행하는 데 있었다
규장각의 도서들 가운데 항구보존의 가치가 있는 책들을 별도로 보고나하는 외곽서고로서, 1781년(정조 5) 3월에 강화도의 행궁지에 설치되었다. 왕실이나 국가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儀軌)를 비롯해 총 1000여권의 서적을 보관하였다. 프랑스의 도서 침탈이 있던 당시 외규장각의 도서 현황은 다음과 같다.
종 류
수 량
비 고
왕족신분표지물
19 점

조선조 역대 왕이 직접 쓴 임금이 몸소 짓거나 만듦, 또는 그런 글이나 물건
어제(御製)나 어필물(御筆物)
61 점

기타 족자류
4 점

의궤도서
213종 379책

의궤 외 도서
594종 4338책



(2) 강화도에 설치된 이유와 요새로서의 한계
강화도는 서울에서 약 60 K,m 거리에 위치한 섬으로, 사방이 갯벌로 둘러싸이고 육지를 격한 일대에는 물살이 빨라 한 두 곳을 제외하고는 접근이 어려워 국방상 천연의 요새였다. 왕조의 실록을 보관하던 다섯 곳 중의 하나가 강화도일 만큼 당시 국방상 안전지대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19세기 서양 증기선이 왔을 때에는 개펄의 상태가 많이 달라져 접안이 용이해진 곳들이 많아졌을 뿐 아니라 서양 신식 무기의 화력을 감당할 수 있는 이점은 없었다.

(3) 의궤도서
조선왕조시대에 왕실 및 국가의 각종 행사에 대해 발의 및 준비 과정, 의식 절차, 진행, 행사 유공자들에 대한 포상 등의 사실을 정리한 기록이다. 파리 소재의 의궤들은 제작시기가 1630년(인조8년)에서 1849년(현종15년)에 걸친 것들로 조사되었다. 현재 알려진 가장 오랜 의궤는 1600년(선조33년)에 만들어진 것이며, 18〜19세기를 거치면서 종류도 많아지고 제작의 수준도 뛰어난 것들이 많아졌다
의궤는 국왕, 왕비, 세자 등의 책봉, 왕실의 결혼, 역대 인물들의 지위를 높이는 절차인 추숭기안 존호 부여, 장례 절차, 능원의 조성 및 이장 때 만들어 졌고, 의궤는 담당기구에서 사용한 등록을 기본 자료로 하여 작성되는데 행사를 거행하게 된 경위를 보여주는 각종 공문서의 내용을 비롯하여 업무의 분장, 오고간 공문서, 동원된 인원, 물자의 조달과 배정, 경비의 수입과 지출, 건물 및 기물의 설계 및 공작, 담당 관리의 명단, 행사에 대한 기록화, 행사 유공자에 대한 포상 등이 자세하게 기록 되었다


2. 도서의 피탈 경위 - 병인양요

병인양요는 간단히 요약하면 1866년(고종3년)에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 사건에 대한 프랑스 군의 침입 사건을 일컫는 말이다.
1866년초에 대원군은 천주교 천주교를 금지하고 압박하는 명령
금압령(禁壓令)을 내리고 프랑스 신부와 조선인 천주교도 수천명을 학살하였다. 이를 병인박해 또는 병인사옥(丙寅邪獄)이라 한다. 이 박해로 인해 프랑스 선교사는 12명중 9명이 잡혀 처형되었으며, 3명은 화를 면하였는데 그중 리델(Ridel)은 중국으로 탈출하여 주중 프랑스 함대 사령 관 로즈(Roze)에게 박해 소식을 전하면서 보복 원정을 프랑스는 조선과 수교가 없다는 점과 조선은 정치적 독립국가라는 점 등을 들어 프랑스 정부의 직접 개입 없이 현지 사령관인 로즈의 주재 하에 군사적 응징 원정을 단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1) 로즈의 제1차 원정
hhhhhhh
강화해협을 중심으로 한 수도 서울까지의 수로를 탐사하기 위한 예비적 탐사 원정이었다.
→ 9월 18 ~ 10월 3일 : 군함 3척을 가지고 서울 양화진, 서강까지 올라옴
세밀한 지세 정찰과 수로 탐사 후, 지도 3장 만들어 돌아감

참고문헌
파리 국립도서관 소장 외규장각 의궤 조사연구(김문식 외 4명, 외교통상부, 2003)
왕조의 유산 - 외규장각 도서를 찾아서(이태진, 지식산업사, 1994)
외규장각 도서, 무엇이 문제인가? (이태진, 백충현, 서울대학교 규장각, 1999)
규장각 소장 의궤 종합목록 (서울대학교 규장각, 서울대학교 규장각, 2002)
조선조의 의궤 (박병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5)
http://koreandb.empas.com/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디지털 한국학
http://100.naver.com// : 네이버 백과사전
http://news.naver.com/tv/read.php?mode=LSS2D§ion_id=115§ion_id2=290&office_id=056&article_id=0000048088&menu_id=115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73567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69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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