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체능] 단원 김홍도의 그림 작품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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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
단원 김홍도의 생애와 작품경향, 그림을 수록하였고 설명을 덧붙여 보기좋게 정리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Ⅰ. 단원 김홍도의 생애
Ⅱ. 작품 경향
Ⅲ. 김홍도의 영향
Ⅳ. 작품 감상
1). 씨름
2).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3). 송하취생도[松下吹笙圖]
4). 묵죽도(墨竹圖)
5). 기려원유도[騎驢遠游圖]
6).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
7). 고기잡이(漁場)
8). 서당그림
9). 빨래터(漂母)
10). 무동(舞童)
11). 벼 타작
12). 논갈이
13). 기와이기
14). 사녀도
15). 황묘농접도
16). 평양감사 향연도
본문내용
Ⅰ. 단원 김홍도의 생애
1745년(영조21년) 한양에서 아버지 김석무(錫武)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외가는 대대로 도화서 화원을 배출한 집안이었기에 외조부와 외숙에게 그림을 배웠다. 어려서는 경기도 안산에 칩거 중이던 당대 최고의 문인화가이며 이론가인 표암 강세황(姜世晃)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다. 강세황은 인물, 화조, 사군자 모두 능숙한 김홍도를 추천하여 20대에 도화서 화원이 되게 하였다. 28세에는 어용화사로 영조어진과 왕세자의 초상을 그리고, 이듬해 감목관(監牧官)의 직책을 받아 사포서(司圃署)에서 근무했다. 1777년 별제(別提)로 있으면서 강희언(姜熙彦)·김응환(金應換)·신한평(申漢枰)·이인문(李寅文) 등과 함께 그림제작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했다. 1781년(정조 5년)에는 한종유(韓宗裕)·신한평 등과 함께 정조어진 익선관본(翼善冠本) 도사(圖寫)의 동참화사로 활약하고 그 공으로 경상도 안동 부근 안기(安奇)역의 찰방(察訪)을 제수 받았다. 이 무렵부터 명(明)의 문인화가 이유방(李流芳)의 호를 따라 '단원'이라 자호했다. 1788년에는 김응환과 함께 왕명으로 금강산 등 영동 일대를 기행하고 그곳의 명승지를 수십 장(丈)이나 되는 긴 두루마리에 그려 바쳤다. 1789년에는 그의 스승 김응환과 그에게 몰래 일본지도를 그리라는 왕명을 받았다. 김응환이 부산에서 병으로 죽자 김홍도는 대마도로 가서 일본의 지도를 모사해서 돌아왔다. 1790년에는 정조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해서 지은 사찰인 용주사 대웅전에 훈염기법(暈染技法)으로 입체감을 살린 삼세여래후불탱화를 그렸다. 1791년에 다시 어용화사로 선발되어 정조어진 원유관본(遠遊冠本) 제작에 참여한 공으로, 그해 겨울 충청도 연풍 현감에 임명되어 1795년 정월까지 봉직했다. 현감으로 일한 경험은 김홍도가 민중들의 삶을 자신만의 개성으로 그려내는 중요한 기회가 되었다. 현감 퇴임 후의 만년에는 지방의 권농(勸農)을 지내기도 했는데 1796년에는 용주사 부모은중경의 삽화, 1797년에는 오륜행실도의 삽화를 그렸다. 이러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소금장사로 부를 축적한 김한태에게 그림을 그려주는 대가로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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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무리가 되지않는다
  • rla200***
    (2014.06.12 20: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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