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황진이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08.10.17 / 2019.12.24
  • 6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1,2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목차
1.황진이의 출생 및 실존 근거
2.소설을 통해본 황진이의 생애
3.시대적 배경
4.황진이의 시조
(1)서경덕과 황진이의 시조
(2)서경덕을 추모하는 시
본문내용
1.황진이의 출생 및 실존 근거

황진이는 실존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황진이의 출생에 대한 기록은 『송도기이(松都記異)』『중경지(中京誌)』『소호당집(韶濩堂潗)』『성옹식소록(惺翁識小錄)』『연려실기술(練藜實記述)』등에 전하여 내려온다. 박영신, 「황진이의 문학 연구」,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3, p.4.
위의 기록들에는 황진이에 대한 일화들이 미화되거나 과장된 점이 있어서 실제의 이야기를 파악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지만, 황진이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위에 기록들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황진이의 어머니는 현금으로 자색이 매우 고왔다. 나이 18세에 병부교 아래에서 빨래를 하고 있을 때, 단정하고 옷을 화려하게 차려입은 한 남자가 현금을 주시하면서 때론 웃기도 하고 때론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도 하여 현금의 마음이 몹시 떨렸는데 갑자기 보이지 않더니 해가 지고 빨래터의 아낙네들이 거의 사라지자 다시 나타나서는 노래를 부른 뒤에 물을 요구하였다. 현금이 표주박에 물을 떠서 주니 반쯤 마시고는 되돌려주며 현금더러 마셔 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술이었기 때문에 현금은 이것이 매우 놀랍고 이상하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강권하여 드디어 진이를 낳게 되었다.
『송도기이(松都記異)』

황진이는 중종시 사람으로 황진사의 서녀다. 어머니 진현금이 병부교 아래에서 음수한 인연으로 마음이 통하여 진이를 낳았는데 해산 때 방안에 이상한 향내음이 3일간 가시지 않았다.
『소호당집(韶濩堂潗)』

황진이는 개성에 사는 한 맹녀의 딸로 성격은 남자처럼 활달하였고 거문고를 잘 탔으며 노래도 잘 불렀다.
『성옹식소록(惺翁識小錄)』

위의 기록들을 보면 황진이의 아버지는 개성에 사는 황진사이고, 양반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진현금으로 병부교 아래에서 빨래를 했다는 점과 거문고를 잘 타고 노래를 잘 불렀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기생의 신분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즉, 양반인 아버지에게서 문학적인 소질을 이어받았고, 기생인 어머니로부터 거문고를 타고 노래를 잘 부르는 음악적 소질을 이어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여성인데다가 천한 기생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황진이의 정확한 출생과 사망시기를 알 수 는 없으나 그녀와 관련이 있는 남자들에 관한 기록 중 참고할 만한 것들을 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김용숙, 『조선조 여류문학 연구』, 혜진서관, 1990. pp.411-417.


1. 가정초(嘉靖初) - 어우야담(於于野談), 공현왕조(恭憲王朝) - 식소록(識小錄)
2. 송공대부인 수연석상에 진이가 참여했다는 야설 - 송도기이(松都記異)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국문학]황진이 시조
  • 황진이는 뛰어난 재능과 발랄한 개성을 자랑하며 여러 명사들과 어울리고, 서경덕만은 유혹하지 못했다는 일화를 남겼다. 기녀가 갖추어야 할 기예에 두루 능해 한시도 잘 지었지만 시조는 더욱 뛰어났다. (중략) 사랑의 노래가 곧 이별의 노래인 고려 속악가사의 전례를 한층 빛나는 전통으로 만들었다. 사대부는 생각할 수 없던 표현을 개척해 관습화되어가던 시조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조동일, 『한국문학통사2』 위에서 조동일이 평가한 것처

  • 자유분방함 속의 내재된 슬픔, 황진이의 시조-
  • 한국문화사, pp.68~71 : 임금복(2004), 「새로 쓴 황진이 연구」, 『돈암어문학』제17집, 돈암어문학회 p.269에서 재인용)는 내용이 문헌에 전한다. 살펴본 바와 같이 황진이의 연보나 문집이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생몰연대조차 알 수 없다. 출생신분에 관해서도 양반의 서녀라는 견해와 맹인의 딸이라는 견해 등 다양한데 서민층, 그것도 천한 가문의 사생아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을 향해 품게 되는 연정을 읊었다고 알려진 그녀의

  • 허영자론 - 허영자 시인의 작품 경향 & 허영자 시에 나타난 주제의식
  • 문학』에 「도정연가(道程戀歌)」와 「연가 3수」가 추천되었으며, 1962년 「사모곡(思母曲)」으로 추천 완료되어 등단했다. 1963년 김후란 등과 함께 한국문학사상 최초로 여성시인들의 순수시 동인 ‘청미회(靑眉會)’를 조직하고 활발한 동인활동을 펼쳤다. 이후 「공무도하가」의 여옥과 허난설헌ㆍ황진이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 여류문학의 맥을 잇는 고유의 정한을 바탕으로 사랑과 기다림, 한(恨)과 고독의 본질을 노래하는 동양적 연가풍의 아름

  • 허영자론 - 생애와 활동 & 허영자 시인의 작품 경향
  • 문학』에 「도정연가(道程戀歌)」와 「연가 3수」가 추천되었으며, 1962년 「사모곡(思母曲)」으로 추천 완료되어 등단했다. 1963년 김후란 등과 함께 한국문학사상 최초로 여성시인들의 순수시 동인 ‘청미회(靑眉會)’를 조직하고 활발한 동인활동을 펼쳤다. 이후 「공무도하가」의 여옥과 허난설헌ㆍ황진이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 여류문학의 맥을 잇는 고유의 정한을 바탕으로 사랑과 기다림, 한(恨)과 고독의 본질을 노래하는 동양적 연가풍의 아름

  • 허영자론 - 작품경향 & 에로스적 사랑과 소유욕
  • 문학》에 《도정연가(道程戀歌)》와 《연가 3수》가 추천되었으며, 1962년 《사모곡(思母曲)》으로 추천 완료되어 등단했다. 1963년 김후란(金后蘭) 등과 함께 한국문학사상 최초로 여성시인들의 순수시 동인 ‘청미회(靑眉會)’를 조직하고 활발한 동인활동을 펼쳤다. 이후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의 여옥(麗玉)과 허난설헌(許蘭雪軒) 황진이(黃眞伊)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 여류문학의 맥을 잇는 고유의 정한을 바탕으로 사랑과 기다림, 한(恨)과 고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