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한국전쟁 당시 민중들의 삶과 나의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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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이란? (6.25전쟁)
- 한국전쟁 당시 국민들의 심정
- 철저하게 강요당한 민중들
- 불신감이 팽배한 사회
- 죄책감이 없는 사회
- 정리 및 결론
본문내용
<중략>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서 도둑질, 살인까지 할 수 있는 사회였으니 그것은 국가가 없는 사회도 아닌 것이다.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현장, 오직 자신만이 중요하였고 어떻게든 목숨을 유지하는 것만이 중요한 시절이었다.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항상 누군가를 경계해야했으며 한없이 비굴해지기도 하였고 졸렬해진 사람들은 자신 말고는 그 어떠한 사람도 믿을 수 없었다. 이 같은 서로에 대한 불신이 바로 당시 정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 민족이면서 한반도 함께 어우러져 살던 공간 우리의 대지를 두 개로 나누어 정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남침을 했고 뒤이어 북침을 한 셈이다. 애초부터 거짓말 투성이었던 정부였다. 두 정부는 주도 권력을 잡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었다. 국민들은 애초에 안중에도 없었다. 국민이 주인이 라는 민주주의란 말은 아무 의미없었고, 국민은 국가로부터 철저하게 분리되었다. 좀 더 적나라하게 얘기하면 국가는 국민을 버렸던 것이다.

철저하게 강요당한 민중들

한반도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38선을 경계로 해서 남과 북으로 갈라졌다. 남쪽과 북쪽에 이승만과 김일성이 남한과 북조선을 건국하면서 동시에 남북 간의 긴장은 더욱 강화되는 시점이었다. 그러니 한국전쟁은 시작 전부터 38도 선에서 남측과 북측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갈등과 혼란 속에서 사실상 국가가 부재한 상황인데 지도자들은 서로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기에만 급급하였던 것이다. 이상하게 돌아가고 급격하게 양분화되어가는 세상속에서 민중들은 자신들의 목소리조차 낼 수 없었으니 지도자들의 뜻대로 그들의 사상이 모두 국민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된

<중략>


고 이런 상황들이 악순환 되어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비양심적, 비인간적이 되어 버렸다. 당시의 사회가 전쟁이 사람들을 광란상태로 몰고 갔다. 일부 깨어있는 지식인들 착취하는 세력들은 그런 경우와는 거리가 멀었겠지만 당시에는 못 배우고 헐 벗은 민중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죄책감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는 시대였다.

정리 및 결론

한국 전쟁은 시대의 엄청난 비극이었다. 과연 지금 그 시대로 내가 돌아간다면 똑바른 정신으로 양심을 지켜가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게 되고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정상적인 삶을 살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살기위해서는 뭐든지 하게 됐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 애인, 친지, 이웃과 생이별을 해야 하는 아픔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는 순간순간들이 얼마나 괴롭고 힘들까?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자신의 치욕스런 날들을 용납하려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을 더 고통으로 내 몰았을 것이다. 그런 시대에도 좀 더 양심적으로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갔었을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은 정말 웃기는 소리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알아보며 가장 화가 났던 것은 최소한의 인간으로써의 양심. 자신이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닌 즉, 전쟁 상황에서 용서 받을 수준의 행동이 아닌 것도 분명 있었다는 것이다.

재미로 살상을 했다던지, 대규모로 학살을 했다던지 하는 정말 인간이기를 완전히 저버린 행동들 그리고 그런 선택을 했던 권력자들까지 모두 이제 돌이킬 수 없지만 그들의 행동과 선택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한국전

<중략>
참고문헌
한국전쟁(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 정병준 돌베개
해방전후사의 인식 4 - 민중항쟁ㆍ무장투쟁ㆍ문화예술운동ㆍ한국전쟁의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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