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레시아스의 역사에 대한 감상문] 테이레시아스의 역사에 대한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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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작고 행복한 나라의 역사
무한대의 자유, 그리고 무한 책임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소련처럼 대국이 아니기 때문에 외국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우리에게 먼가 도움이 되는 것을 배우고자 한다면 차라리 우리와 비슷한 소국 가운데 성공적으로 자신의 길을 찾은 사례들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이러 점에서 특히 주목하게 되는 나라가 네덜란드다. 네덜란드라는 나라를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한대의 자유로움’이다. 정치적인 문제든 남녀간의 일이든 당신이 감당할 수 있고 당신이 책임질 수 있다면, 그 무엇이 되었든 하고 싶은 데로 하라.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 있을 때 가장 놀란 것 중의 하나는 중독성이 강하지 않은 마약 정도는 담배 가게에서 판다는 것이다. 그 곳에서 만난 한 친구는 “마약을 할 때 마다 확실하게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에 마약을 한다. 물론 거기에는 위험이 따르지만 그 위험은 전적으로 내가 진다.”라고 했다. 성 문제 역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개방되어 있다. 알고 지내던 집의 중학생 딸이 남자친구를 데려 와 하룻밤을 같이 잤는데 부모와 그 아이들 사이에 서로 “Goede nacht(Good night)!"하고 인사하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네덜란드는 현재 동성애자들이 법적으로 정식 부부가 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국가들 중 하나이다. 거기에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법적으로 인정하기 까지 했다.
인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것은 일찍부터 이 나라의 전통이었다. 예컨대 종교 문제만 하더라도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근대 초에 종교적 관용의 전통을 확립했다. 다른 종파에 대해 시비 걸거나 분란을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당국도 묵인한다. 그러다 보니 당시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지식인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테카르트 역시 이곳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 나라의 자유가 그냥 주어지지는 않는다는 점 역시 분명하게 말해준다. 네덜란드 독립전쟁으로 인해 레이덴 대학이 설립되었다는 것과 레이덴 대학이 나치 점령기에 폐교당한 일화를 통해 그것을 알 수 있다.
자유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켜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전통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자유와 방종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자유와 방종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책임’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저자가 직접 본 상황에 대해 말하였기 때문에 현실감이 생겨, 더욱 와 닿았다. 자기 스스로 책임 질 수 있을 때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얻어진 자유는 잃지 않도록 잘 지켜내야 할 것이며, 그것을 자자손손 이어가 전통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보다 한심할 수는 없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그리고 한국 것도
역사를 왜 배우는가? 자잘한 역사 사실들을 얼마나 잘 꿰고 있느냐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역사 인식이 어떤가 하는 것이 문제다. 우리가 도대체 누구냐 하는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이 그 기본적인 역사 인식인 것이다.
일제 시대에는 우리 민족이 스스로에 대해 자괴감을 갖고 이민족의 지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길들이는 데에 역사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무리들이 지배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과거에 언제나 그래왔다는 식으로 사람들에게 역사를 인식시켰다.
그런 식으로 학생들에게 국가나 그에 준하는 기관이 역사 인식의 기본 골격을 심어주는 데에 사용되는 것이 ‘교과서’라는 책이다. 권력이 역사 인식을 왜곡시킬 위험성을 안고 있기도 한 책이다. 이러한 교과서가 일본에서 ‘자학사관의 극복’이라는 주장으로 인해 왜곡된 역사를 말하고 있다. 일본은 한참 자라나는 학생들이 자학적인 사관을 가질 필요 없이 일본의 역사를 자랑스럽고 영광에 찬 과거로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럽의 역사책 가운데에는 예전의 식민지 시대에 대해 말할 때, 현지인들이 원해서 점령한 것이라든지, 유대인이 잘못했기 때문에 학살했다든지 하는 내용을 가진 것은 없다. 유럽 국가들은 자학적인 성격을 가져서 그런 책을 만드는 것일까?
그리고 과연 한국은 제대로 된 교과서를 쓰는가? 연대를 쓰고 전보문 같은 글을 채워 넣은 우리나라의 교과서 또한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 문제가 대두되었던 시기에 이 글을 썼기 때문에 이런 내용을 실었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우리나라 사람들의 냄비 근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이 일이 각종 언론에서 떠들썩하게 떠들 때는 너도나도 일본 교과서 왜곡에 대해 이야기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최근의 일인 독도문제에 대해서도 조용해지는 듯 한 추세이다. 우리는 당시에만 급급해 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일본과의 역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연구해야 할 것이다.

국가와 종교, 그리고 소수 집단
1572년 8월 23일 밤, 파리. 칼뱅파 왕족인 앙리 드 나바르의 결혼식 때문에 수많은 칼뱅파 신도들이 운집해 있었다. 이날 밤부터 시작하여 며칠 동안 가톨릭의 주도로 학살사건이 지속되어 칼뱅파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다.
도대체 죽은 다음의 문제에 정답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여기에 권력과 폭력까지 끼어든다면 그 참혹한 결과는 뻔하다. 유럽인들은 이것을 깨닫기까지 수없는 박해를 가했고, 그러고 나서야 이제 종교적인 문제는 각자 자신의 신념에 따라 알아서 할 문제라는 각성을 한 것이다.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든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서로 존중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가 관대하고 아량이 있어야 한다. 그런 사회를 두고 우리는 가히 성숙한 사회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2001년 서울.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소수 종교인들의 군 복무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대체복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해 논의가 없었던 이유가 소수의 문제였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소수집단이 될 가능성이 있다. 소수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은 결국 우리가 이 나라의 주인공으로서 우리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 되는 것이다.

소수의 권리 침해. 학교생활을 하면서도 자주 느끼는 점이었는데, 옛날 유럽세계의 종교문제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각자가 항상 ‘나도 소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소수의 입장을 생각해보고 배려해 줄 수 있을 텐데. 서로 관대하고 아량을 가진 사회가 되고, 남의 생각을 존중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일 것이다. 특히 종교에 있어서는 더욱 깨끗하고 자유롭고 관대하여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독재 정치와 역사
역사라는 것이 여러 기능을 가지고 있겠지만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는 권력의 정당화였다. 역사를 자기 정당성의 근거로 사용한 권력에는 교회, 노동계, 소수 민족 등 많겠지만, 실제로 가장 크게 이용한 집단은 역시 정권, 특히 독재 정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대표적 예가 있다.
첫 번째는 일본 제국주의이다. 일본 역사에서 무력을 황위를 찬탈하였거나 그러려고 했던 사례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에서는 천황 중심의 군국주의를 강화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에 천황의 신성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왜곡하게 된다.
두 번째는 스탈린 시대 소련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 러시아의 발전 상태에 관한 두 가지 의견이 있었다. 1927년 이후, 즉 스탈린이 권력을 잡은 이후 당국의 역사 해석의 관점에서는 시도로프의 ‘러시아는 서구로부터 독립적이었다.’는 주장이 인정받았다. 하지만 바로 그 직후 정치적 여건이 바뀌면서, 바나크의 ‘러시아는 서구 제국주의 경제에 종속되어 있었다.’는 주장이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고 1956년에 탈스탈린화가 진행되자 이제는 ‘실증적인’ 연구자들이 등장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나치의 역사 인식을 살펴보면, 인종주의에 근거한 철저한 자민족 중심주의였다. 대표적 예로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한 해석을 들 수 있다. 종교개혁이 대단히 큰 사회정치적 의미를 포괄하는 일임은 분명하지만, 기본적으로 종교적인 문제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나치의 역사책에서는 ‘본질적으로 국민적 규모의 정치 봉기이며, 신앙의 변혁에 의해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인간, 즉 독일 국민을 만들어내려고 한 것이다.’라고 나와 있다.
일본 교과서 문제가 대두되는 것도, 일본 제국주의 침략 전쟁이 아시아의 해방을 위한 것이었다는 투의 역사 인식으로 인해 일본의 팽창주의, 군국주의, 극우 보수주의의 위험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 인식도 고쳐야 할 것이다. 일본이 우리에게 저지른 일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베트남 전쟁 등에서 입힌 피해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다.

역사 인식의 중요성을 새삼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특히 나치의 역사 인식에 대해 이야기 한 부분에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어떤 사실이 얼마나 다르게 인식될 수 있는지 알고 놀라웠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단순히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사실에 대해 알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보는 눈을 넓히고 사고의 폭을 넓혀 어떤 사건을 해석하는 방법에 대해 공부해야 할 것이다.

“주먹 센 놈이 이긴다!”
군사혁명과 서구의 흉기
유럽사에서 근대 초기(early modern period)라 부르는 16~18세기는 다른 무엇보다도 전쟁으로 얼룩진 시대라고 부를 만하다. 이 기간 전체를 볼 때 ‘전쟁 기간/전체 기간’의 비율은 95%를 넘었고, 새로운 전쟁이 3년에 한 번 꼴로 일어났다.
근대 초기의 잇따르는 전쟁으로 소위 ‘군사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다. 4가지 핵심적인 변화는 ‘창 대신 총이 사용되는 무기 혁명, 군대 규모가 엄청나게 커짐, 대규모적이고 복합적인 전술을 사용, 이러한 군대의 변화가 사회에 대해 막대한 영향을 미침’이 그것이다.
군사혁명의 주요 내용은 뾰족하게 별 모양을 한 기하학적 성체를 건설하여 전술을 사용하는 ‘공성전’이다. 그리고 군대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는데, 그로 인해 공공 지출 중 군사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그래서 돈이 많아야 승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단기적으로 볼 때 군사혁명을 거친 대규모 정규군이 반드시 승리를 거두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고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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