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마더데레사를 읽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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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테레사! 비록 내가 무교인데다가 가톨릭종교 쪽으로는 무지하다고 하지만 익히 많이 들어봤었던 이름이고, 예전에 그분이 타계하셨을 때,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던 내가 뉴스에서 타계소식을 보도하고 방송하는걸 보고나서 어떤 분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무슨 일을 하셨길래 뉴스에도 나오고 그러는 거지? 하고 생각은 했었지 정작 그분이 누구인지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나 그런건 전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도 못했고 알 필요도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 가톨릭사상이란 수업의 북리뷰로 인해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마더데레사’ 이 책을 짧게 읽고 나서 그분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 같다. 정말이지 테레사수녀님, 그분은 성녀, 아니 그이상의 신적인 존재와 같은 분이신 것 같다.
약 90페이지 가량의 짧은 분량이었지만 어쩜 같은 사람인데 세상엔 저런 분도 있는데 난 지금까지 뭘 하며 살아왔나하며 내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생각의 시간을 잠시나마 갖게 만들었다. 분명 세상엔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도 희생할 수 있는 사람도 많지만, 테레사수녀님 만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는 테레사수녀님의 일생을 다룬 듯 보였는데 드문드문 중요한 이야기나, 감동적인 사연을 발췌하여 발간되어 있었다. 우선 마더테레사수녀님은 지금은 지진으로 파괴된 스코프예의 알바니아계 가정에서 태어나 열심히 청소년 단체에 참가하면서 당시 인도 캘커타에서 선교하던 스코프예 출신의 예수회 사제들의 편지들을 소속 동아리에서 읽으면서 수녀가 될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1928년 열여덟 살이 되셨을 때 선교사에 대한 마음을 굳혀 부모님의 허락을 구한 다음 인도에서 활발한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로 레토 수녀원’에 들어가 수녀가 된 후 인도의 다즐링이란 곳으로 파견되어 선교활동을 하셨다고 한다. 그 후 인도 캘커타의 빈민가에 살면서 성 마리아 고등학교와 센트 메리고등학교의 교사·교장 등을 역임하셨다고 한다. 후에 인도 시민권을 취득한 그녀는 1946년 수녀원에서 나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서 간호학을 배워 캘커타의 빈민가에서 봉사하며 사셨다고 한다. 그리고 1948년 수녀님은 '사랑의 선교회'를 창설했으며, 2년 뒤 교황 비오 12세로부터 교회법에 따른 인가를 얻고 1965년에는 오직 바티칸만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교황청 직속의 수도회로 지위가 격상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도에서 테레사수녀님을 외국인으로 간주한 인도 관리들의 반발과 수녀는 수녀원 안에서 지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보수적인 로마 가톨릭 인사들의 반감 등 숱한 난관에 부딪혔지만 테레사수녀님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 끈질기게 선교회 활동을 넓혀 나가면서 나병 환자, 버려진 아이들, 노인들, 걸인들에게 애정 어린 도움을 베풀었다고 한다. 비록 지역이나 국가에 따라 성공의 정도는 달랐지만 오랜 기간에 걸쳐서 테레사수녀님은 동남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라틴아메리카, 중동 등지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선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1971년에는 미국 뉴욕 시티에도 최초의 수녀원을 세웠다고 한다. 제1회 교황 요한네스 23세 평화상과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이후로 테레사수녀님은 가난한 사람들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적극적인 지원활동을 펼칠 수 있는 국제적 기반을 한층 확보해 나갔다고 한다.
처음 인도 정부에서는 테레사수녀님께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냈지만 1963년엔 국가에서 상을 주고 1997년 테레사수녀님이 타계 하실 때는 국상까지 치러 주었다고 한다. 이 책의 수많은 목차 중에 ‘깨끗한 물이 담긴 대야’ 에서는 죽음과 병마를 업고 살아가던 사람이 정성스럽게 치료해주시는 마더테레사수녀님께 감사의 말을 전하자 테레사수녀님은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바로 접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통을 겪으셨거든요.”라고 말을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통을 겪었다는 말이 이해가 전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보았더니 그리스도는 예수, 즉 예수 그리스도를 일컫는 말이었다. 뭐 그만큼 힘들었다는 뜻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과 교황’에서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죽음을 앞둔 이가 마지막으로 말한 ‘난 정말 짐승처럼 살았지만 이젠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군요.’라는 구절에 대해서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의 삶이 라는 건 남들과 과정만 다를 뿐 시작과 끝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보면서 내가 죽을 땐 어떤 생각을 할까? 라는 생각이 또한 들었다. 아마도 지난날 잘못들을 후회하면서 되새겨보지 않을까? 그리고 ‘붉은 좌석 위의 갓난아기들’에서는 앞의 이야기에서 이어지는 내용으로, 교황이 인도를 떠나면서 마더테레사수녀님께 기증했던 자동차를 팔고 그 돈으로 샨티 나가르(평화의 도시)라는 나병 환자들의 마을을 세웠다는 글을 보고나서 그래도 교황이 선물한 차인데 나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위해 팔고 그 사람들을 위해 썼다는 자체가 놀라웠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만약 교황에게 자동차가 아닌 작은 어떤 것이라도 받으면 가보로까지 남겨서 자신들을 위해 쓰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도 그런 유명하고 높은 사람이 자동차를 줬다면 맘껏 뽐내며 타고 다니던지 박아놓고 전시라도 했을 것 같다.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캘커타의 거리를 걷고 있을 때 어느 한 젊은이가 다가오더니 몸을 굽혀 수녀님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오늘이 내 결혼식 날 입니다. 지난날 걸식을 하다가 굶어 죽게 되었을 때 나를 데려다가 간호해주고 치료해주셨지요. 그래서 몸이 낫고 새 생명을 얻었어요. 그 후에 구두닦이가 되어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어요. 마침내 오늘 결혼까지 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었어요.”라고 말을 하고 갔다고 한다. 이 이야기만 봐도 테레사수녀님이 인도에서 정말 최고로 힘든 사람들을 누구 하나 가리지 않고 다 돌봐주고 챙겨주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또 이런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종교적인 오해로 적의를 품게 된 힌두교 학생들이 떼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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