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김소월에 생애와 작품조사 및 해석] 시인김소월에 생애와 작품조사 및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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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의 삶 - 고향
소월의 고향인 평북 정주는 일찍 개화에 눈을 떠서 기독교가 전파되고 신학문이 수용되는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곳이었다.
자연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곳이 소월의 고향마을이었다. 민족시인으로서 주옥같은 민요조 서정시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자연환경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부친의 정신질활 때문에 나이를 먹을수록 우울하고 고독해하는 내향적 성격으로 변모하였다.
고모부 김시참은 열렬한 애국자였는데 소월과 남산학교를 같이 다니며 한 집안에서 성장하였던 관계로 소월에게 많은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김소월의 삶 - 고향
특히 숙모 계희영이 누구보다도 문학적 감수성에 영향을 주었다. 그녀의 도움으로 많은 고대소설을 접할 수 있었다. 또한 소월이 4살 때부터 숙모를 만나고 소월이 오산중학에 진학하여 숙모 곁을 떠날 때까지 근 10여 년 동안 두 사람 관계가 지속되었는데 기간도 기간이지만 그 시기가 성격형성기였다는 점에 그 영향은 클 수밖에 없었다.
김소월의 삶 - 유년기
소월의 유년기는 비교적 유복하였다. 그래서 명랑하고 총명했으며 호기심이 많아 차근차근 따지는 성격이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일본인 목도꾼에게 두 번의 폭행을 당하면서 정신질환을 앓게 되면서 집안에 어두운 그림자를 남겼고 끝내 소월에게도 암울한 영향을 미쳤다.
김소월의 삶 – 운명의 만남
오산중학으로의 진학은 고향의 좁은 공간에서 민족이라고 하는 폭넓은 역사의식으로 전환케 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특히 오산에서의 안서와의 만남은 그의 인생을 가름하는 운명의 만남이었다.
안서에의해서 문학세계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소월이 안서 선생을 감동시킨 작품은 「가는 길」, 「못잊어」,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진달래꽃」,「접동새」, 「엄마야 누나야」 등이었다.
김소월의 삶 – 운명의 만남
1916년 소월이 14세가 되던 해 조부에 의해 가제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 부인과의 결혼생활은 비교적 원만한 것이었지만 소월은 마음속에 둔 연인이 있었기에 그에 못지않은 내적 갈등도 겪어야 했다.
소월은 오순을 잊을 수가 없었다. 결혼하기 전까지 오산학교 시절은 오순의 생각으로 보냈다. 오순에 대한 소월의 애틋한 정은 「못잊어」, 「그리움」, 「꿈자리」 같은 시편들을 낳았고 결혼 후에도 번민의 골은 더욱 깊게 패여 갔다.
1919년에 소월은 첫딸 구생을 얻었고 그 해 터진 민족적 거사인 3․1운동에 소월은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김소월의 삶 – 삶의 방향
오산학교가 폐교되어 소월은 1922년 다시 배재고보에 편입하고 1923년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동경유학길에 오른다.
소월은 그가 뜻한 바대로 동경상대 예과에 입학하였으나 동경에서의 생활은 그렇게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우등생이던 소월이 학업을 외면하고 다소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다.
관동 대지진으로 인해 조선인 학살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아 귀국길에 오르게 된다.
김소월의 삶 – 고향에 묻힘
1924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실의와 좌절이 컸던 탓인지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유일한 대화의 창구였던 숙모가 평양으로 이사를 떠남으로써 소월은 더욱 침울해졌다.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여 처가인 구성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이는 조부의 간섭과 아버지의 광증, 그리고 종손의 무거운 책임감에서 해방되는 탈출구이기도 했다.
1925년 동아일보 지국을 개설하여 시작하였으나 여러 암초에 걸려 계속적으로 사업은 어려워만 갔다. 그리고 귀향해서 얼마간은 창작활동을 했으나 1925년 『진달래꽃』 시집발간을 고비로 차츰 창작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다.
김소월의 삶 – 고향에 묻힘
1926년 이후에는 시에서 손을 떼고 술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리고 마음속의 연인이었던 오순의 죽음은 소월을 더욱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고 갔다.
더욱이 1927년 나도향이 요절하자 소월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절망에 휩싸였다.
소월은 생애에서 가장 가까웠던 두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삶의 의욕을 잃고 술로 지새우는 날이 늘어갔다. 죽음에 대한 충동을 처음으로 강하게 느낀 것도 이 두 사람의 죽음이었다. 마음속의 연인과 사랑하던 친구의 죽음 앞에서 소월은 생의 허무감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김소월의 삶 – 고향에 묻힘
1927년 동아일보 지국에서 손을 떼고 할아버지에게 얻어낸 돈으로 고리대금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경영미숙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1929년 시인 이장희의 자살 소식을 듣고 소월은 다시 한 번 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특히 이장희의 죽음은 스스로 목숨으로 끊은 것이기에 또 다른 충격으로 와 닿았다. 이장희의 죽음은 자살 충동을 좀 더 심화시키고 구체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32년 들어 일경의 감시가 심해졌다. 일본 순사는 소월게게 모욕을 주기도 하고 작품들을 검열한다고 빼앗아가기도 하였다. 순사들의 취조는 그를 더욱 파탄케 했다.
결국 1934년 12월 23일 소월은 장터에 들러 사온 아편과 술을 마신 채 잠들어 다신 일어나지 못했다.
자료평가
- 몰랐던 내용도 많고 중요한 핵심만 잘 정리해놓았네요
좋은자료 잘받아갑니다. - zas***
(2015.05.23 01:2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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