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철학, 중국철학, 묵자] 묵자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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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생애와 사상
2. 교육 목적
3. 교육내용
3-1. 도덕
3-2. 과학기술
3-3. 논리
3-4. 근로
4. 학습방법
4-1. 언행일치
4-2. 적성
4-3. 능동성
4-4. 확고한 의지
본문내용
I.생애와 사상

묵자의 이름은 적(翟)으로 노(魯)나라 사람이라는 설과 송(宋)나라 사람이라는 설이 있다. 현재 중국의 학자들은 노나라에서 태어나 송나라의 대부(大夫)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의 출생에 대한 기록은 분명하지 않지만 기원전 490년에서 403년 사이, 즉 공자와 맹자 중간 시대의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의 성(姓) “墨”에 대해 학자들은, 고대 중국에서 죄인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는 점을 들어 죄인에 대한 표시라는 의견과 묵자의 피부가 상당히 검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확증할 만한 증거는 없다. 다만 그가 천한 계급 출신이라는 데에는 이견(異見)이 없다.
묵자는 수공업(手工業)과 공예(工藝)에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심지어는 그가 나무로 만든 솔개를 날려보냈다는 말도 있다. 묵자는 그의 작품들이 주로 실용적으로 쓰여져, 백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바랬다. 이후, 그는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제자들과 집단을 이루어 묵가(墨家)를 형성한다. 이들은 엄격한 규율과 체계적인 교육형태로, 유가(儒家)와 함께 중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학파를 형성하였다. 『淮南子』의 기록에 따르면 “묵자의 부하는 188인으로 모두 불에 들어가거나 칼날 위에 서라고 할 수 있었고 죽음이 닥쳐도 발꿈치를 돌리지 않았다”고 한다.
묵자가 살던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는 노예주 계급이 서서히 몰락해 가던 시기로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혼란기였다. 때문에 묵자의 사상은 당시의 시대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즉, 묵자는 빈번한 전쟁과 착취로 인해 생활이 곤란해진 백성들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묵자는 백성의 생활을 곤란하게 만드는 전쟁을 반대하였다. 그는 “반드시 배고픈 자가 먹을 것을 얻고, 추운자가 옷을 얻고, 피곤한 자가 휴식을 얻고 혼란한 자가 다스림을 얻는” 天下太平한 세상을 추구했다. 따라서, 묵자 자신도 평생 소박함을 지켰고 부당한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 맹자는 세상에 대한 묵자의 열정을 “묵자는 널리 사랑하기에(兼愛) 이마를 갈아(부딪쳐) 발뒤축까지 이르더라도 천하를 이롭게 한다면 한다”라고 기록했다.
묵자는 당시 통치계급의 지배사상이었던 유가에 대해 반기를 들었는데, 특히 복잡하고 번거로운 禮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사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일생을 제자들과 함께 魯, 宋, 楚, 齊나라 등에서 활동하였다. 묵자는 이 과정에서 명령하달식 교육방법으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가르쳤다. 공자와 유가가 당시 집권계급을 대변했다면, 묵자와 묵가는 피지배계급을 위해 존재했다고 할 수 있다. “양주와 묵적의 말이 천하에 가득해서 천하의 말이 양주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묵적에게 돌아간다”는 맹자의 기록과 “세상의 현학(賢學)은 유가와 묵가였다”라는 한비자(韓非子)의 기록으로 보아 당시 묵가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묵자사상의 중심은 “兼相愛”이다. 묵자는 “천하의 사람들 모두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강자는 반드시 약자를 누르고, 부자는 반드시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고, 귀한자는 반드시 천한자에게 교만하며, 꾀부리는 자는 반드시 우매한 자를 속일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모든 문제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고, 세상 사람들 모두가 서로 사랑하는 것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이 당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수용했던 것으로 보아, 당시의 사람들은 지금에 비해서 선량(善良)했음을 추측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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