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 공산당선언에 대한 명제에 대해-마르크스,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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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공 산 당 선 언 에 대한 명제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길드장인과 직인, 한 마디로 억압자와 피억압자는 항상 서로 대립하면서 때로는 숨겨진, 때로는 공공연한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각각의 싸움은 그때마다 대대적인 사회의 혁명적 재편 또는 경쟁하는 계급들의 공동파멸로 끝났다. 부르주아지 시대는 계급적대를 단순화 시켰다는 특징이 있다. 전체 사회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양대 적대적 진영으로, 서로 직면하고 있는 양대 계급으로 점점 더 분열되어 가고 있다. 부르주아지는 가족으로부터 그 감정의 장막을 찢어내고 가족관계를 단순한 돈의 관계로 만들었다. 부르주아지는 세계시장의 착취를 통하여 각 나라의 생산과 소비에 범세계적인 성격을 부여해왔다. 부르주아지는 모든 생산도구가 급속히 향상되고 교통수단이 엄청나게 개선됨으로써, 가장 미개한 민족을 포함하여 모든 민족을 문명화시킨다. 부르주아지는 백년 남짓한 자신의 지배기간 동안 이전의 모든 세대들이 이루어낸 것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거대하고 엄청난 생산력을 창출했다. 부르주아지, 즉 자본이 발전하는 것과 똑같은 정도로 프롤레타리아트, 즉 현대 노동계급도 발전한다. 프롤레타리아의 노동은 모든 개인적 성격을 잃었으며, 그 결과 노동자에 대한 매력도 사라졌다. 노동자는 이제 기계의 부속물이며, 그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가장 단순하고 가장 단조로우며 가장 쉽게 획득한 기술뿐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다양한 발전단계를 거친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생겨나자마자 부르주아지와의 투쟁도 시작된다. 개별 근로자와 개별 부르주아 간의 충돌은 갈수록 두 계급간의 충돌이라는 성격을 띠게 된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에 반대하는 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시작하며, 임금율을 높이기 위해 한데 뭉치고, 때때로 일어날 충돌에 미리 대비하기 위해 단체를 창건한다. 여기저기에서 싸움은 폭동으로 터지게 된다. 계급투쟁이 결정적인 순간에 다다르게 될 때 역사적 운동 전반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수준으로 스스로를 끌어올린 부르주아적 사상가들의 부분이 프롤레타리아트의 편으로 넘어온다. 이전의 역사적 운동은 모두 소수의 운동이며 소수의 이익을 위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운동은 거대한 다수의 자 의식적이고 자주적인 운동이며, 거대한 다수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공산주의자는 전체 프롤레타리아와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 공산주의자는 전체 프롤레타리아트가 가지는 이해와 별도로 분리된 이해를 가지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다른 노동계급의 당들과 구별된다. ①각국 프롤레타리아의 일국적 투쟁에서, 일체의 국적으로부터 독립된 전체 프롤레타리아트의 공동 이해를 제기하고 전면에 내세운다. ②부르조아지에 반대하는 노동계급의 투쟁이 거치는 다양한 발전단계에서, 언제 어디서나 그 운동 전체의 이해를 대변한다. 공산주의자의 이론적 명제들은 결코 이러저러한 자칭 보편적 개혁가가 발명 또는 발견한 사상이나 원칙들에 기초하지 않는다. 공산주의자의 이론은 사유재산의 폐지라는 단 하나의 문구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이 공동재산, 전 사회 구성원의 소유로 바뀐다고 해서 개인적 소유가 사회적 소유로 전환되지는 않는다. 변화되는 것은 단지 소유의 사회적 성격뿐이다. 소유는 그 계급적 성격을 잃는다. 사유재산이 폐지되면 모든 노동이 중단되고 곳곳에서 나태가 우리를 덮칠 것이라는 반대가 있어왔다. 그러나 그에 따른다면 이미 오래 전에 부르주아 사회는 순전히 게으름으로 인해 파멸해 버려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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