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종묘와 창경궁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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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9.07 / 201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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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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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종묘(宗廟)(1P)
(영녕전)악공청→영녕전→(정전)악공청→칠사당→정전→공신당→전사청→제정→어숙실→향대청→공민왕신당→망묘루→정문
Ⅱ. 창경궁(昌慶宮)(5P)
관천대→함인정→경춘전→환경전→통명전→양화당→영춘헌과 집복헌→풍기대,앙부일구→성종태실비→ 팔각칠층석탑→ 춘당지→홍화문→옥천교→명정문→명정전→문정전→숭문당→빈양문
Ⅲ. 느낀 점(10P)
-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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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종묘(宗廟)
종묘는 사적 제 125호로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神位)를 모신 신궁(神宮)이며, 유교사당으로서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 중의 하나라고 한다. 태조(太祖) 3년(1394) 10월 조선 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그 해 12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9월에 완공하고, 개성에서 태조의 4대조인 목조(穆祖) 익조(翼祖) 도조(度祖) 환조(桓祖)의 신위를 모셔 왔다. 56,503평의 경내에는 종묘 정전(正殿)을 비롯하여 영녕전(永寧殿)과 전사청(典祀廳), 어숙실(御肅室), 향대청(香大廳), 공신당(功臣堂), 칠사당(七祀堂) 등의 건물이 있다.
정전은 처음에 큰방 7실, 좌우에 딸린 방 2실이었으며 명종(明宗) 때 4실을 증축하여 큰방이 11실이 되었는데, 선조(宣祖) 25년(1592)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려 광해군(光海君) 즉위년(1608)에 다시 고쳐지었다. 그 후 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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