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학] 조선경국전과 경국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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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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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Ⅰ. 緖 論 Ⅳ. 大明律直解
Ⅱ. 朝鮮徑國典 Ⅴ. 經國大典의 立法背景과 編制
Ⅲ. 經濟六典Ⅵ. 經國大典의 編纂過程 Ⅶ. 結 論
-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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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經濟六典
經濟六典은 조선왕조 최초의 성문법전이 되었다. 이리하여 이 經濟六典은 조선왕조의 제반 제도의 준칙의 기준으로서 후일 續典 ․ 謄錄 등 조선초기 諸法典의 母法이 되었다. 여기서 續典은 第3代 王인 太宗이 시대의 변천에 따른 기존의 법전인 經濟六典 보완의 필요성을 느껴 편찬된 補元立法典으로 펴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謄錄은 第4代 王인 世宗이 기존의 續典을 새롭게 정비 ․ 보완한 법전이다.
經濟六典의 입법정신을 살펴보면 조선왕조 최초의 법전인 經濟六典을 비롯한 續典 ․ 謄錄 등 諸法典의 입법정신은 儒家의 관료주의에 입각한 전제군주국가의 전형적인 성격을 띤 성문법전이다.
신민을 통치대상으로 성립된 이 전제군주국가의 통치이념은 군주의 통치권은 절대적인 권력으로 왕의 명령은 하교 ․ 교지로서 강행법규의 효력이 발생한다. 儒家의 바탕에 둔 절대전제군주국가인 조선왕조는 언급한 바와 같이 국왕은 신민의 부모로서 민생의 책임을 가진다.
太祖는 국호를 조선이라 개칭하였는바, 이는 조선왕조가 단군의 개국정신과 箕子의 도덕정치를 계승한다는 뜻에서 신왕조의 國號를 조선이라고 정한 것이다. 이 같은 국호 제정의 취지를 朝鮮徑國典에서 명문으로 밝혀 우리의 역사의식을 엿볼 수 있게 하고 있다.
이는 전왕조인 고려가 그 정통성을 고구려를 계승하였느니, 신라를 계승하였느니 하는 삼국의 유민정신을 청산하고 고조선의 후계자로서 정통성을 내세운 단일국가로서 뿌리 내렸다는 데 그 뜻이 깊다 하겠다. 그리고 조선왕조는 모든 제도의 표준은 周禮의 이상국가의 구현에 두고 국가권력을 매개로 한 공개념 의식을 신민들에게 심어주도록 하였다.
한편 최고 중신회의인 議政府와 그 아래 6조의 행정부서 등의 중요정책 및 중요인사는 국왕의 재결을 거치도록 되어 있었다. 이 같은 유가의 관료주의가 확립된 배경은 抑佛崇儒의 구왕조와 상반된 정책변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에 앞서 太祖 李成桂가 고려말 친명파의 리더로서 당시 국교인 유교일각의 부패상을 공격해 오던 차에 왕위에 올라 조선왕조를 건국하면서 불교를 억압하고 통치이념의 하나로서 유교를 받아들여 이 유교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관료주의를 성립시켰기 때문에 이 같은 抑佛 ․ 崇儒 입법정신이 經濟六典을 비롯해 續典 ․ 謄錄에 반영되고 있다. 이상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經濟六典을 비롯한 續典 ․ 謄錄 등 이 조선왕조 초기의 세 법전의 입법정신은 상호 일치되고 있다.
다음은 經濟六典 성립과정을 살펴보면 조선왕조가 창건된 후 태조는 즉위교서에서 儀章法制는 前朝의 故事에 따르며 법률을 정립하여 모두 율문에 따라 처결함으로 고려의 전폐를 밟지 않을 것을 선명하였다. 즉 통치의 기본 방침으로서 국가 경륜의 급격한 개혁은 하지 않으며 통일적 법률을 정립하여 법치주의를 기본으로 할 것을 밝힌 것이다.
교서 발표 다음날 都評議使司(議政府) 밑에 부속 기관으로 오늘날의 법제국에 해당하는 檢詳條例司를 설치하여 법령의 제정과 정리에 관한 사무를 담당케 하였다.
太祖 3年(1394)에는 鄭道傳이 朝鮮徑國典을 편찬하였는데 이는 개인 저술이지만 당시 국가에서 편찬한 법전이 없었던 조선왕조의 통치규범과 규정을 제정함에 커다란 영향력을 주었다. 따라서 朝鮮徑國典은 經濟六典 편찬에 도입되어 太祖 6年(1394)에는 檢詳條例司에서 고려 禑王 14年(1388) 이후부터 10여 년간 시행된 법령과 규정들을 수집하고 앞으로 준행되어야 할 조례들을 六典의 형식에 따라 분류하여 聖朝一代의 법전으로 經濟六典 이라는 이름을 붙여 간행하여 중외에 공포 ․ 시행하게 되었다.
이는 政丞 趙浚 등이 그 찬집에 공로가 커 趙浚의 經濟六典 이라고도 하며 조선왕조의 祖宗成憲이라고 하는 최초의 성문법전이 되었다.
經濟六典은 광범한 계층들이 알 수 있도록 그 조문이 모두 吏讀와 俚語(方言)를 섞어 기술 되었기에 이를 方言六典 , 吏讀元六典 이라 한다.
經濟六典은 편찬된 후 법적 효력을 가지기는 했으나 누락된 것이 많았고, 그 이후 새로 반포된 법령도 있었기 때문에 正宗 元年(1399)에 條例詳定都監이라는 法典改修官廳을 설치하여 수정 ․ 보완 사업이 진행 되었으나 국가 내에서의 왕위 교체로 일시 중단되어 진척을 보지 못했다. 王代가 바뀌면서 사회 ․ 경제분야에 변화가 일고 그에 따라 새로운 법령이 적지 않게 나와 변혁과 규정들을 법전으로 고착시켜야 하는 필요성에 의해 만대의 법으로 삼을만한 것들을 골라 續六典을 편찬하자는 의견이 나오므로 태종 7년(1407)에 續六典修撰所를 설치하고 河崙이 이 일을 주재하였다.
이 작업은 여러 해에 걸쳐 修交를 거듭하여 太宗 12년(1412)에 趙浚등의 吏讀元六典을 내용은 그대로 두고 방언과 이두로 표기된 것을 純漢文으로 바꾸어 經濟六典元集詳節 3卷으로 개편하고, 太祖 7年(1398) 이후부터 太宗 7년(1407)까지의 법령을 집록하여 經濟六典續集詳節 3卷으로 찬진하였다. 그 후 經濟六典元集詳節과 經濟六典續集詳節을 대조하여 중복된 것은 빼고 번잡한 것은 간단히 하여 太宗 13年(1413)에 이 두 법전을 합쳐 經濟六典이라는 이름으로 간행 ․ 반포되었고 經濟六典元集詳節 3卷을 元六典, 經濟六典續集詳節, 3券을 續六典이라고 하였으며 이것은 元典, 續典으로 약칭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元典과 續典의 조문 중 서로 모순되는 경우는 항상 元典을 존중하여 元典의 조문을 본위로 삼고 元典의 규정에 맞지 않는 續典의 규정을 모두 삭제하고 부득이 元典의 조문을 고쳐야 할 경우는 元典의 조문은 그대로 두고 그 조문 밑에 취지를 각주로 첨가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법의 일관성을 유지하였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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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韓國法制史」 延正悅, 學文社, 1996年 4月
「朝鮮朝 初期의 法典」유성국
「여말선초 육전체제의 성립과 전개」 김인호
「經國大典의 編纂과 大明律」 李成茂
「朝鮮 初期 諸法典의 形成過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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