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 한 고조 유방의 삶과 그의 업적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07.08.01 / 2019.12.24
  • 5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est1est2est3est4est5 1(구매금액의 3%지급)
  • 5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하고 싶은 말
한 고조 유방의 삶과 그의 업적에 관해 자세하고 세밀하게 정리한 레포트 입니다.
지난학기 동양사 시간 과제물로 20점 만점에 20점 받은 자료입니다.
유방,항우 관련 레포트를 작성하시는데 많은 도움 되실겁니다.
목차
< 한 고조 유방의 삶과 그의 업적 >

1. 서 론

2. 본 론
1) 제왕으로의 발걸음
2) 한 고조의 승리 원인

3. 결 론

- 참 고 문 헌 -
본문내용
1) 제왕으로의 발걸음
유방은 패현(沛縣)지방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태공太公이었으며 그의 어머니는 유오였다. 태공은 농부였다. 태공의 성이 분명치 않아서 유방은 그의 어머니 유오의 성(姓)을 따라 유씨 성에 아명을 계(季)라 지었다. 유오가 유방을 잉태할 때였다. 그녀가 호숫가에 앉아 쉬고 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었는데 용꿈을 꾸었다. 호수주변은 천둥번개가 치고 짙은 어둠에 쌓였다. 그것을 본 태공이 달려가 보니 자기 부인이 있는 근처에 하늘에서 교룡이 꿈틀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 사건 이후에 잉태된 아이가 바로 유방이다. 유방은 태어날 때부터 코가 우뚝 솟았고 용을 닮은 얼굴이었으며 왼쪽 넓적다리에는 점이 72개나 있었다고 한다. 중국의 천자가 자신의 얼굴을 용안이라고 칭한 것은 유방 때가 아니었나 생각되기도 한다. 또한 그는 친구를 좋아하고 마음이 넓었다. 사람을 아끼고 주기를 좋아하여 언제나 활발하였으며 큰 도량을 지니고 있어 조그마한 집안 살림은 돌보지 않았다 한다. 또한 그는 서른 살 때 정장이라는 관리로 채용되어 일을 하기도 하였는데, 관청의 일은 안중에도 없고 상사를 우습게 여기고 술과 여자 앞에선 정신을 못 차렸다고 하기도 한다. 진나라는 사회적으로 유민이 증가하여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건달의 수 또한 많았는데, 유방 또한 이 부류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맡았던 관직인 사수정장(泗水亭長)이라고 하는데 하급 관직이었다. 정(亭)이란 10리마다 설치된 숙소(宿所)이고, 정장은 정졸(亭卒)을 거느리고 이 정을 관리함과 동시에 그 치안을 담당한 경찰기관이기도 한 현의 하급 속리이다. 그는 정장이었을 때 패 지방에 온 여공이라는 사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정장이라는 하급 관리가 되긴 했어도 그는 여공의 딸과 함께 농경에 종사하였다. 그런 연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반란군이 되어 천하를 도모하게 된 건 어떤 이유였을까? 진나라가 여산릉을 만들기 위해 대규모 공사에 착수하자 유방은 죄수들을 여산까지 인솔하는 책임을 맡았다. 죄수들은 가는 중에 기회만 있으면 도망쳤다. 이렇게 풍서지방의 늪지대까지 이르렀을 때 유방은 자리에 주저앉아 술을 마시며 날이 어두워지자 죄수전원을 풀어주며 도망치고 싶은 사람은 모두 가라고 하고, 자신도 이내 도망치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혈기왕성한 청년 10여명이 그 자리에 남아 유방과 행동을 같이 하겠다 하여 같이 나섰다. 그 소식을 들은 패현의 젊은이들이 유방을 따르겠다고 모였는데 그 수가 몇 백은 되었다.
진나라 2대 황제 호해胡亥 황제 원년 가을, 진시황이 죽고 난 뒤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을 우두머리로 한 무리가 반란을 일으켜 진나라 군대를 격파한 뒤 다음 왕을 자칭하고 국호를 ‘장초長礎’라 하였다. (같은 해 9월에 항량과 항우도 회계군수 은통(殷通)을 죽이고 오중(吳中)의 병사들을 모아 반진(反秦)의 기치를 들었다. 항량은 스스로 회계군수에 올라 항우를 부장으로 삼고 정예병 8천명을 거느렸다. 그 후에 항량을 따르는 무리는 6~7만이 되었고 범증과 염포를 휘하에 두게 되었다.) 패현의 현령 또한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봉기를 하려 하였으나 수하였던 소하와 조삼이 여론을 걱정하며 여산으로 가던 중 도망쳐 버린 유방의 무리를 앞세우자 하였다. 현령은 이 의견을 듣고 부하인 번쾌를 시켜 유방을 불러들이려 하였지만, 번쾌 또한 유방의 인물됨에 반해 그의 수하가 되어 운명을 함께 하자 하고 유방과 함께 패현에 돌아왔다. 현령은 위기를 느껴 성문을 닫고 이 방법을 건의한 소하와 조참을 죽이고 유방을 내치려 하지만 유방은 성내의 군중을 설득해 현령을 죽이고 자신이 지도자가 되어 소하 조참 번쾌를 중심으로 패沛의 군중 3천명을 거느린 세력이 되었다.
참고문헌
- 유재주 / 영웅 / 돋을새김 / 2007
- 이언호 / 한권으로 보는 초한지 / 큰방 / 2001
- 시바 료타로, 양억관역 / 항우와 유방 / 달궁 / 2002
- 천춘천,이성림역 / 소설 십팔사략 / 자음과 모음 / 2004
- 신성곤 /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 서해문집 / 2004
자료평가
  • 자료평가0자료평가0자료평가0자료평가0자료평가0
  •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 ljs***
    (2012.11.27 20:15:13)
회원 추천자료
  • [동양사] 이홍장의 삶과 그의 업적
  • 한 인물들은 여럿 있다. 진시황제한고조한무제수양제당태종당고종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중국 근대사에서 황제가 아니면서도 중화패권주의를 주도한 인물이 있으니, 19세기말 청나라 북양대신 이홍장(李鴻章, 1823∼1901)이 바로 그 사람이다. 시기상으로 본다면, 이제까지 중화패권을 시도한 인물 가운데에서 이홍장이 오늘날과 가장 가까운 최신 모델이라 할 수 있겠다. 이홍장의 중화패권주의를 살펴보기에 앞서, 그가 여타 모델들

  • [중국역사] 항우와 유방에 대해
  • 유방유방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유방의 업적Ⅳ 항우와 유방의 대결Ⅴ 항우와 유방의 차이Ⅵ 맺음말Ⅶ 참고 문헌Ⅰ. 맺음말중국의 역사나 다른 나라의 역사를 보아도 주인공의 중심으로 쓴 역사를 보게 된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새로운 왕조를 세운 자에게 패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많은 영웅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항우 역시 그러한 인물로 중국사에서 비극적인 영웅으로 각인되어 있다. 이런 이미지

  • [동양사] 제갈량의 삶과 그의 업적
  • 한다. 그래서 결국 아녀자에게 속고 말았던 것이다. 이 또한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겟는가?” 라고 탄식하였다.그러나 제갈량의 시각에서는 유비는 난세에 천하를 도모하기는 어려운 사람이었다. 물론 제갈량의 입장에서 조조를 지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지만 유비는 이미 좋은 기회를 다 놓치고 형주까지 밀려와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당시 조조는 한 고조처럼 40만 대군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조조의 남정군(南

  • 명작 독후감 모음 11편!!!!
  • 한 왕실의 부흥에 인생을 걸었지만, 27년 노력이 허망하게 끝날 때 공명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아마도 제갈량은 예감했을 것이다. 자신의 죽음과 함께 촉의 운명도 새드 엔딩으로 끝날 것임을. 천하의 영웅도 때를 만나지 못하면 속절없이 스러지는 법이다. 제갈량이라는 절세의 전략가를 촉은 가졌지만, 제갈량은 난세에 어울리기에는 너무나 원칙주의자였다. 그가 조금만 영악했더라면 그의 삶도, 촉의 운명도 순탄하지 않았을까. 제갈량에 대한 안타

  • [사기열전] 사기열전
  • 그동안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얼마나 역사에 소홀했는가를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사기」속에서 내가 가장 흥미 있어 하는 인물은 항우이다. 하지만 사기에서 항우는 열전이 아니라 본기(本紀)에 들어가 있기에 이번 과제에서 작성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관안열전과 상군열전, 회음후열전이다. 이렇게 세 명을 선택한 이유는 열전에 포함된 업적이 있는 사람일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여러 가지 생각할 만한 주제를 던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