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 고구려본기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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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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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年, 夏六月, <松讓>以國來降, 以其地爲<多勿都>, 封<松讓>爲主. <麗>語謂復舊土爲'多勿', 故以名焉.
2년 여름 6월, 송양이 나라를 바치며 항복했다. 그곳을 다물도로 개칭하고, 송양을 그곳의 군주로 봉했다. 고구려 말로 옛 땅을 회복한 것을 '다물'이라 하기 때문에 그곳의 명칭으로 삼은 것이다.
○三年, 春三月, 黃龍見於< 嶺>. 秋七月, 慶雲見< 嶺>南, 其色{邑} 靑赤.
李丙燾. 舊本.
3년 봄 3월, 황룡이 골령에 나타났다.
가을 7월, 상서로운 구름이 골령 남쪽에 나타났다. 그 빛이 푸르고 붉었다.
○四年, 夏四月, 雲霧四起, 人不辨色七日. 秋七月, 營作城郭宮室.
4년 여름 4월, 구름과 안개가 사방에서 일어나 7일 동안이나 사람들이 색깔을 분별하지 못했다.
가을 7월, 성곽과 궁실을 건축하였다.
○六年, 秋八月, 神雀集宮庭. 冬十月, 王命<烏伊>·<扶芬奴>, 伐<大白山{太白山}> 東南<荇人國>, 取其地, 爲城邑.
趙炳舜. 『三國史節要』.
6년 가을 8월, 이상한 새가 대궐에 날아 들었다.
겨울 10월, 왕이 오이와 부분노에게 명하여 태백산 동남방에 있는 해인국을 치게하고, 그 땅을 빼앗아 성읍을 만들었다.
○十(+一) 年, 秋九月, 鸞集於王臺. 冬十一月, 王命<扶尉 >, 伐<北沃沮>, 滅之, 以其地爲城邑.
趙炳舜. 『三國史節要』.
10년 가을 9월, 난새가 왕대에 모였다.
겨울 11월, 왕이 부위염에게 명하여 북옥저를 격멸하고, 그 지역을 성읍으로 만들었다.
○十四年, 秋八月, 王母<柳花>薨於<東扶餘>. 其王<金蛙>以太后禮, 葬之, 遂立神廟. 冬十月, 遣使<扶餘>饋方物, 以報其德.
14년 가을 8월, 왕의 어머니 유화가 동부여에서 죽었다. 그곳의 왕 금와가 그를 태후의 예로 장례지내고, 그의 신묘를 세웠다.
겨울 10월, 사신을 부여에 보내 토산물을 주어 그 은덕에 보답하였다.
○十九年, 夏四月, 王子<類利>自<扶餘>與其母逃歸. 王喜之, 立爲太子. 秋九月, 王升遐, 時年四十歲. 葬<龍山>, 號<東明聖王>.
19년 여름 4월, 왕의 아들 유리가 부여로부터 그 어머니와 함께 도망해오니, 왕이 기뻐하여 태자로 삼았다.가을 9월, 왕이 별세하였다.이 때 왕의 나이 40세였다. 용산에 장사지내고, 호를 동명성왕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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