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
황해도 일원에 전승되어 오는 탈놀이를 흔히 '해서 탈춤'이라 한다. 분포지역을 보면 서쪽 평애 지대인 사리원을 중심으로 황주와 안악, 재령, 신천, 장연, 송화, 은율 등지 그리고 해안 지대로 해주, 강령, 옹진, 송림, 추화, 금산, 연맥 등지의 탈춤으로 크게 셋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밖에도 5일장이 선 거의 모든 장터에서는 탈꾼들을 초빙해서라도 최소한 1년에 한 번씩은 탈놀이를 했다고 하니 과연 탈의 고장이라 할 만 하다.
예전부터 황해도 봉산 읍내에서는 단오날 밤에는 탈판이 벌어졌다. 경의선 철도가 개통됨에 따라서 봉산군청이 사리원으로 옮기면서 봉산은 나날이 쇠퇴하여 그 유명한 탈춤도 사리원에서 행하게 되었다. 이 탈놀이를 행할 때면 인근 각지의 남녀노소 구별없이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대혼잡을 이루었다고 한다. 봉산 부근의 해주, 강령, 은율 등은 봉산탈춤을 배워가서 생긴 것이라 한다. 해서 탈춤은 춤동작이 경쾌하고 힘이 있으며, 대사도 시대를 잘 풍자하는 독특한 맛이 있다. 현재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을 받은 해서 탈춤은 봉산탈춤(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 은율탈춤(중요무형문화재 제61호), 강령탈춤(중요무형문화재 제34호) 세 가지인데 그 예능 보유자들은 1950년 6.25 이후 월남한 분이 대부분이며 최초의 보유자들이 거의 세상을 떠나 지금은 후계자들이 뒤를 잇고 있다.
황해도에서 탈춤이 성행하게 된 이유는 ①농산물과 각종 물건들이 모여드는 곳이 많아 장이 설 때마다 탈춤을 놀곤 하게 되었으며,
문화재 제17호 봉산탈춤은 한국무형문화재의 대표적인 탈춤으로,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오늘날 일반인들에게도 매우 친숙한 민속예능의 한가지이다. 일찍부터 봉산탈춤의 조사와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신 이두현 교수의 연구성과를 정리하여 옮기면 다음과 같다.봉산탈춤은 해서, 즉 황해도 일대에 분포되어온 탈춤 중의 하나이다. 이 해서탈춤의 분포를 보면 사리원과 봉산을 중심으로 황주와 서족 평야지대인 안악․재령․신천․장연․송화․은율
탈춤의 특징중부지방의 산대춤은 비교적 섬세한 맛이 있고 형식도 갖추고 있으며 특히 몸짓의 연극적 약속이 잘 정형화 되어 있고 손을 내놓고 추기 때문에 손짓 동작이 많으며 매듭이 확실한 타령장단, 매듭춤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해서지방은 타령장단에 한삼춤을 추기 때문에 힘찬 조무로 짜여 있으며 어느 지방의 춤보다 전통 무용적 성격을 띠고 있다.남부지방의 춤사위는 어느 지점에다 온몸을 던져 정지하고 전신적 긴장을 가져오며
탈춤에서 도시탈춤으로 변모되거나 풍물의 잡색 놀이로 남게 된다. 오늘 현존하는 대부분의 탈춤은 강릉단오굿의 관노놀음이나 북청사자놀음, 하회별신굿 등과 같이 대륙 전래의 것 이전의 토착적인 탈춤(봉산탈춤)을 제외하고는 거의 도시형 탈춤이다.이들을 지방별로 구분해 본다면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기도 일원의 산대놀이(양주별산대,송파산대) 황해도를 중심으로 한 해서 지방의 탈춤(봉산,강령, 은율) 그리고 낙동강을 가운데 두고 그 동쪽
해서 급격히 뒤집어 엎는 형식으로 된 대사가 자주 사용된다.(양반 나오신다. 양반이라거니 노론 소론~ 개다리 소반이라는 반자 쓰는 양반이 나오신단 말이요.(봉산탈춤 말뚝이)) 또한 반복의 형식도 있다.(어디를 갔나. 어디를 갔나. 우리 영감 어디를 갔나.) 이런 반복은 율동감을 조성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효과를 가진다.가면대부분의 연희자들은 가면을 쓴다. 가면은 극중인물로의 전환을 용이하게 해주며, 전형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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