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음악사] 고불 맹사성의 음악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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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
실제 세종실록에 나와있는 내용을 인용했습니다.
목차
1. 고불맹사성의 생애
2. 과제의 목적
3. 고불 맹사성의 음악업적의 시대적 배경
4. 세종실록에 나타난 맹사성과 음악
5. 결론
본문내용
맹사성은 오랜 음악 경륜과 문화와 전통을 바라보는 유연하고 참신한 사고를 겸비한 인물이었고, 자신을 많이 드러내지 않았지만 핵심적인 생각 몇 가지로 세종 시대의 음악정책 방향을 바꾸어 새로운 음악문화의 조류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그는 소박한 성품의 청백리 맹사성으로서 뿐만 아니라 세종 시대를 빛낸 문화 전략가로 부각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고, 세종조의 음악 정비 사업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 세종 053 13/08/02(갑오) >>
… 임금이 맹사성에게 이르기를,
“사람들이 말하기를, ‘사신 회례(會禮)에 여악(女樂)을 쓸 수 없다.’고 하니, 만약 여악을 그만두고라도 남악(男樂)이 족히 볼 만하면 가하거니와, 만약 음률에 맞지 않으면 어찌할까. 문무(文舞)와 무무(武舞)의 복색이 아마 중국과 같지 않은 듯한데, 그를 곁에서 보기에 어떨까. 중국의 풍류를 쓰고자 하여 향악(鄕樂)을 다 버리는 것은 단연코 불가하다.”
하니, 사성이 대답하기를,
“성상의 하교가 과연 그러하옵니다. 어찌 향악을 모두 버릴 수야 있사오리까. 먼저 아악을 연주하고 향악을 겸해 쓰는 것이 옳습니다. 지금 문무와 무무의 의복 제도도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일찍이 사람을 시켜 의복을 그려서 가져 왔는데, 지금 만들어 쓰는 것과는 같지 아니하니 이것이 의심스럽다.”
하니, 권진이 대답하기를,
“만일 중국의 풍악과 같지 않으면 예전대로 향악을 쓰는 것만 못하옵니다.”
하였다.

▶▶중국의 음악을 쓰고자 하여 향악을 다 버리는 것은 단연코 불가하다는 세종의 의견에 대해서 맹사성이 동의하며 향악을 버리는 것을 불가하다고 한 점에서 그의 향악을 존중하였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中 『세종실록』
『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저. 일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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