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 한국 문화재의 수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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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
한국 문화재의 수난사를 읽고 쓴 독후감입니다.
한국 문화재에 관한 내용 수난사 느낌 역사적 경험등
성의 있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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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한국 문화재의 수난사를 읽게 된 배경

2. 본론
한국 문화재의 종류들
한국 문화재에 대한 자부심
한국 문화재의 뛰어남
한국 문화재 약탈 국가들
외세에 의해 수난당한 한국의 문화재들
현재 외국에 보관되고 있는 한국 문화재들
외세에 의해 빼앗기게 된 역사적 배경과 과정

3. 결론
우리 문화재를 다시 찾기 위한 우리의 노력

본문내용
일본이라는 나라는 우리의 가장 근접한 이웃나라이며 중국과 더불어 우리나라와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이웃나라와 사이가 좋은 국가는 별로 없다고 한다. 터키와 그리스가 그렇고 이란과 이라크가 그러하며 독일과 프랑스가 그렇다. 우리나라와 일본역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은 과거와 지금까지도 마찮가지지만 참 악연인거 같다. 다만 내가 아쉬운것은 왜 하필이면 우리나라가 피해자적 입장에서 악연이냐 하는점이다. 역사적으로 좀더 범위를 좁혀서 문화재에 대한 관점에서도 그렇다. 분명히 우리나라의 문화가 월등히 뛰어났다. 도자기에서부터 글 탑 거의 모든 종류에서 우리나라의 문화재는 세계적인 수준이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 많고 값어치 있는 문화재들을 일본이라는 나라에 의해서 빼앗겼으며 왜 파괴되었냐 하는 점이다. 물론 역사를 거꾸로 돌릴 수도 없고 가정도 필요없다. 우리나라가 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임진왜란때 수많은 문화재가 약탈 당했으며 파괴 되었고, 일제시대라는 암흑기를 거치면서 우리 문화재들은 일본에 의해서 더욱더 가혹한 수난사를 겪었다. 그리고 독립후 사람들의 몰지각함도 있었겠지만 경제적으로 일본에 뒤쳐졌기 때문에 수많은 유적들이 도굴 당해서 일본에 팔려 나갔다. 이 책의 내용을 보면 경천사탑 불국사 사리탑등 규장각 장서등 우리 학계와 정부의 노력으로 인해 다시 우리의 품으로 반환된 문화재가 있긴하나 빙산의 일각이 아닌가. 얼마전 수업 시간에 본 역사스페셜에서 부처하나하나를 작게 그려서 커다란 그림으로 그린 그림역시 상당수가 일본에 보관되어있지 않은가.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언젠가 TV를 보는데 우리와 일본의 이웃한 국가로서 앞으로 마지할 미래를 동반자적입장에서 협력해야 한다고 하는 프로그램을 본적이 있다. 하지만 독도 문제라는가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약탈하고 파괴하는 이웃나라라니 그다지 반갑지 않은 이웃이다. 문화재에 대한 지나친 집착 그리고 파괴는 선진 문화재를 소유하겠다는 비뚫어진 욕망이다. 어쩌면 민족 자체적인 컴플랙스가 아닌가 생각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어떻게 이렇게 무식하고 집착이 심한 민족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막부 시대에 이토히로부미는 상당수 문화재에 대한 욕심 가진다 고려청자에 대해 집착을 했으며 심지어 장인들까지 일본으로 강제로 대려갈 정도 였다. 왕이 이정돈데 일반 백성들은 어떠한가 불국사 사리탑이 요릿집 정원에서 나왔다니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마치 일본이 우리 나라 문화재를 약탈한 내용들을 보면 할리우드 영화에서 나오는 박물관에 비치된 물건을 훔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아주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그들은 우리 문화재를 약탈해간다. 과거 조선시대와 그전 시대야 나라와 나라끼리 힘 즉 전쟁을 통해서 침략한 나라가 침략당한 나라의 문화재를 약탈하고 파괴하고 한다. 그리고 일제 시대때야 일반 백성들은 잘 모르니깐 일본의 문화재 도굴에 대한 의식이 없으니깐 그들에게 도굴해서 준다. 하지만 그 후 일본은 자본을 앞세워 도굴꾼들을 통해 우리 문화재를 도굴해간다.
참고문헌
한국 문화사의 수난사(돌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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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4.19 16: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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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1.24 17:4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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