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김시습의 생애와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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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매월당 김시습의 생애
1.1 15세기 전반의 사회적 배경
1.2 생장수학기
1.3 방랑편력기(放浪遍歷期)
1.4 금오은둔기(金鰲隱遁期)
1.5 실의배회기(失意徘徊期)
1.6 김시습 일화
2. 매월당 김시습의 사상
2.1 유교사상
2.2 불교사상
2.3 도선사상
2.4 매월당의 인간성에 바탕을 둔 문학관
2.5 문학지상주의적문학관
3. 매월당 김시습의 생애에 대한 고찰
- 매월당의 방외인(方外人)적 인생
4. 금오신화(金鰲神話)
4.1 금오신화를 쓸 당시의 사회적 환경
4.2 金鰲新話에 나타난 김시습의 죽음에 대한 사상
4.3 금오신화의 문학사적 의의
4.4 금오신화에 실린 「이생규장전」(`이생이 담 안을 엿보다`라는 뜻)
4.4.1 줄거리
4.4.2 작품분석
4.4.3 이생규장전의 주제 및 감사
5. 매월당 김시습의 평가.
5.1 조윤제․주왕산의 매월당 문학의 평가
5.2 조동일의「한국소설의 이론」과「한국문학통사」가 평가한 매월당문학
5.3 남북한 문학사적 위상과 평가
5.4 소재영의 문예미학적 립장에서의 평가
5.5 박태상의 「조선조 애정소설연구」에서의 매월당 문학의 평가
5.6 (서울/연합뉴스)
6. 나오면서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매월당 김시습의 생애
• 김시습의 저항적 생애
김시습(1435~ 1493)은 세종 17년 서울 교외에서 충순위(忠順衛)의 벼슬을 하던 가난한 문인(文人)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천재적인 아이로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그가 아직 돌도 되지 않았던 어느날, 이웃에 살고 있던 최치운(崔致雲)이라는 학자가 아기인 김시습에게 문장을 가르쳐 주었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외워 버렸다 한다. 그는 세살이 되자 어려운 한문책을 줄줄 읽었을 뿐 아니라 한시를 짓기 시작했다. 이 소문이 널리 퍼지자 당시의 재상 허조(許稠)는 이 소문을 확인하기 위하여 직접 김시습의 집을 찾아가 다음과 같은 시험을 해 보았다. “너는 시를 잘 짓는다고 하던데 나를 위해 늙을 老자를 넣어 시 한 수 지어 보아라.” 허조의 이 말이 끝나자마자 김시습은 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한시를 지어 보였다.“老木開花心不老(노목개화심불로)” 즉 ‘늙은 나무에 꽃이 피었으니 마음은 늙지 않았네’라는 뜻이다.“이 얼마나 천재적인 표현인가! 너는 과연 신동이로다.”재상 허조가 크게 감탄하며 칭찬하였다.이런 이야기들이 어느덧 궁중에까지 들어가자 학문을 좋아하는 세종은 김시습을 궁중으로 데려와 관리들을 시켜 그의 재능을 시험해 보았다. 시험관의 무릎 위에 앉은 김시습은 즉석에서 자유자재로 시 몇 수를 지어 보였다. 이 보고를 들은 세종은 매우 감동하여 비단 50필을 하사하며 후일을 기약하였다. 이로부터 그가 천재라는 소문이 송도에 울려퍼지게 되었으며, ‘오세문장(五歲文章)’이라는 칭호를 받아 모든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15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계모가 들어왔다. 그리고 20세가 되던 해 결혼을 하면서 집으로부터 탈출하여 서울에서 떨어진 중흥사(重興寺)에 들어가 오로지 공부에만 열중하였다. 계유정란이 일어난 1455년, 당시 21세였던 김시습은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추방하고 왕위를 탈취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릴 때 세종과의 약속을 삶의 큰 지주로 삼아 언젠가 세종의 손자인 단종 밑에서 큰 일을 하리라는 꿈을 품고 있었던 그인지라, 그 소식은 청년 김시습에게 너무나 큰 절망을 안겨주었다. 그는 사흘 밤낮을 방안에 틀어박혀 고민하며 통곡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공부하기 위해 가져온 책과 지필묵 등을 모두 깨끗이 태워 버렸을 뿐 아니라 가위로 손수 머리털을 자르고 홀연히 절을 떠났다. 이 때부터 그는 염세적인 기분에 사로잡혀 일개 초라한 승려로 방랑생활을 계속 하였다. 매월당은 출가와 환속, 재출가를 거듭하면서 전국을 방랑하였다. 한때는 잠시 효녕대군에게 붙잡혀 내불당에 머물면서(29세 때, 세조 9년) 간경도감의 연화경 번역의 교정 일을 보기도 했지만,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곧 금강산에 은거하게 되었다. 그후 예종에 이어 등극한 성종은 학문을 좋아하여 학자를 널리 구했으며 선정에 힘썼다. 매월당은 주위의 권유도 있고 하여 치의을 벗고 종사를 받들 생각을 가졌으나 이때 역시 여의롭지 않았다.
참고문헌
10.『한국한시가』, 민병수, 태학사, 1996.
11.『문학개론』, 박제희, 형설출판사, 1981.
12.『조선문학사』, 이가원, 태학사, 1995.
13.『한국고전시학사』, 전형대, 기린원, 1989.
14.『매월당 김시습연구』, 정주동, 민족문화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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