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사] 장준하와 박정희의 생애, 대결과 후대 평가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06.03.24 / 2019.12.24
  • 20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est1est2est3est4est5 1(구매금액의 3%지급)
  • 1,8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목차
Ⅰ. 머리말

Ⅱ. 장준하와 박정희의 생애
1. 일제 강점기 (광복군 vs 일본군)
2. 광복 후 (언론인 vs 육사시절 군인)
3. 5 ․ 16 이후 (재야대통령 vs 무소불위의 독재대통령)

Ⅲ. 장준하와 박정희의 대결
1. 정치문제
2. 경제문제
3. 통일문제
4. 언론문제 (사상계)

Ⅳ. 장준하와 박정희에 대한 평가
1. 장준하
2. 박정희

Ⅴ. 맺음말
본문내용
박정희와 장준하. 얼핏 듣기에 두 사람은 정치라는 냉혹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공간에서 살펴볼 때 상대가 되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두 사람이 라이벌이라는 인식에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전자는 18년간 독재정치로 한 나라의 최고통치자였고, 후자는 몸소 독재정권을 부당함을 외치며 민주화를 위해 애쓴 언론인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또한 박정희에게는 주지하다시피 여러 라이벌이 많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윤보선, 김대중, 김영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대통령을 역임한 이들로서 정치적으로 박정희와 대결구도를 가졌다.
그러면 왜 박정희의 라이벌로 장준하를 주목해야 하는가? 장준하가 어떤 다른 인물보다도 박정희의 라이벌로서 상징성을 선명히 갖는 것은 장준하의 생애와 인품이 박정희와 너무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서중석, 1999, 「장준하와 박정희의 연구비교」, 『장준하선생 정신 계승 심포지움』, 사단법인장준하기념사업회 ; 이는 다음의 생애 부분에서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둘은 비슷한 연배로서 일생자체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 까지 비교 ․ 대조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가 현행법상 국가의 최고 지도자였다면 장준하는 유신독재가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독재와 부패에 대항하여 싸운 유일한 재야의 대통령이며 민주주의와 양심의 심벌이었다.

며칠 전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사업에 208억원의 국가보조금을 주지 않은 것은 위헌이란 판결을 내렸다. 박정희가 죽은지 올해로 26년이나 흘렀지만 그는 아직도 우리 사회의 논쟁의 쟁점 그와 관련한 논쟁이라 함은 그의 功過 즉 경제적 성장 vs 독재정치(민주화말살) 라는 상반된 평가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되면서 다시 부활하고 있다. 부활이란 단어보다 박정희는 역사의 흐름 속에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는 것이 옳다고 하겠다.

자료평가
  • 자료평가0자료평가0자료평가0자료평가0자료평가0
  •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 khs9***
    (2013.05.03 16:40:09)
회원 추천자료
  • [장준하]장준하에 대하여...
  • 장준하의 한일협정반대론은 장면 정권 시기부터의 비교적 단순한 비주체적 굴욕적 한일협정 반대론에서 출발하여 친일 세력이 추진하는 제2의 한일합방으로서의 한일협정에 대한 반대론으로, 그리고 미국마저 자국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알선하는 한일 협정에 대한 반대론으로 발전했다고 할 것이다.3) 유신독재 반대 투쟁장준하는 민주수호국민협의회에 참가하여 박정권과의 대결을 강화하다가 박정희의 영구집권 조치로 평가된 10월

  • [한국근현대사] 박정희 연구
  • 한국인 졸업생 3명과 함께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44년 사관학교를 졸업한 박정희는 만리장성 근처 열하성에 주둔한 일본 관동군 제8단 소위로 배속되어 8단장이었던 중국인 대령 탕지룽의 전속부관으로 인사 및 군사작전을 담당하였다. 8단은 만주지역의 한국인 및 중국인 항일 게릴라들에 대한 탄압으로 악병이 높았는데, 관동군에서의 박정희의 군사활동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대립하는데, 한쪽은 박정희를 일본군의 ‘앞잡이’로 보고(

  • [역사학개론] 박정희 폭압과 리더십
  • 한국갤럽 등 3개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꼽으라는 여론조사에서는 박정희(21.1%), 세종대왕(19.8%), 김구(10.5%)로 박정희가 1위를 차지했다.이처럼 국민 지지도에서 부동의 1위라는 것에서 볼 때, 과연 비민주성과 가공할 억압성을 말하는 지식인들이 오만한 것인가, 아니면 국민들이 무지한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할 만큼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리고 있다. 이 점에서 박정희를 가리켜 한국 현대사의 최대 ‘

  •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의 역사와 의의에 관한 고찰
  • 한국 사법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날”로 기록되고 있으며, 당시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협회는 사형이 집행된 1975년 4월 9일을 “사법사상 치욕의 날”로 선포한다. 1975년엔 유신 체제에 강력히 반발하던 “재야 대통령” 장준하를 의문의 죽음으로 몰고 가고, 1979년 유신과 김영삼 제명에 항의하는 부마민중 항쟁을 군대를 동원해 진압하는 등, 박정희의 공포 정치는 날이 갈수록 도를 더했다. 1979년 10월 26일 중앙 정보부장 김재규가 평소

  • [서양사] 독일과 스페인의 과거사 청산 사례 연구
  • 현대사에서 사회가 양 극단으로 치우쳐 대립할 때의 아픔을 경험으로 배운 스페인만의 중용정신일 것이라 생각한다. 내전과 독재라는 불행한 과거를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 생각하고, 독재자 프랑코를 대할 때에도 그의 공과(功過)를 함께 고려하는 등의 모습에 그러한 스페인만의 중용정신이 투영되어 있고 할 수 있다. 3. 결론지금 한국은 친일파청산이라는 뜨거운 민족적 과업을 앞두고 있는 게 사실이다.몇 번 아니 수십 수백 번도 우리 사회에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