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삼정의 문란과 신분제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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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편 삼정 전체에 해당되는 부정행위 방법을 보면 다음과 같다. 곡식을 받아들일 때는 규격보다 큰 말을 사용하고 곡식을 내줄 때에는 규격보다 작은 말을 사용하였다. 옷감을 재는 자도 받아들일 때에는 긴 자를 사용해 쟀으며, 저울질에도 마찬가지 방법을 썼다. 이렇게 해서 많게는 3분의 1 이상의 분량이 차이가 나기도 했다. 강위는 누구보다도 삼정의 문란을 심각하게 여겼다. 그는 그 근본원인을 부정행위에 두고 <<의삼정책>>에서 다음과 같이 갈파하였다.
첫째로, 잘못된 제도를 지적했다. 양반은 군역을 지지 않고 전세에서도 온갖 특권을 누린다. 이들에게도 공평하게 조세를 매기고 군대의 의무를 지게 해야 한다. 토지 겸병을 한없이 허락하여 부의 편중은 물론 국가 재정에 막대한 손실을 끼치고 있다. 실제로 양반은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 군대에 나가지 않고 게다가 군의 경비로 내는 군포도 물지 않는다. 그리하여 양반이 도기 위해 신분을 속이거나 벼슬을 사거나 족보를 위조하는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반면에 가난한 자들은 먹거리가 없어서 고향을 떠나거나 도망가거나 산적, 화적으로 전락하고 있다. 재부를 가지니 자들이 쌀 한 말이나 닷 되로 굶어죽기를 면하고자 하는 소농민의 논 한 마지기와 맞바꾸는 현실이라 빈부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
둘째로, 부당하게 행사되는 권력을 지적하였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한국 역사연구회 지음
『조선은 지방을 어떻게 지배했는가?』한국 역사연구회 조선시기 사회사 연구반
『고쳐 쓴 한국 근대사』강만길 지음.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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