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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과학사] 화약과 화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화약과 화포의 발전 시기
1. 최무선
1) 초석의 원재료를 구하는 과정(취토와 취회)
2) 초석을 추출해내는 과정(사수→예초→자초/재련)
3) 정련한 초석, 유황, 목탄을 섞는 과정(도침)

2. 세종
1) 화약무기 발달의 원인이 된 여진족과 왜구
2) 화기류의 통합본, 총통등록

3. 임진왜란
1) 행주대첩
2) 명랑대첩
3. 경주대첩

4. 흥선대원군
1) 수뢰포
2) ‘대․중․소포’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우리나라의 화약과 화포는 언제부터 사용되었으며 그 발전은 어떠하였을까? 우리나라의 화약과 화포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세조실록』에서 화포는 신라에서부터 시작하여 고려시대에 정비되고 조선에 와서 완성된 훌륭한 무기라고 한 기록이 있다. 그 외에도 『고려사』등의 기록을 통해 이미 오래전부터 화약과 화포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화약과 화포를 사용하게 된 시기는 상당히 빨랐고 고려시대에는 적들의 침략에 대응하는 전쟁이 빈번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군사무기가 널리 이용되었지만 당시 중국에서 만들어지는 화약의 제조법이 극비리에 붙여져 있었기 때문에 늘 화약무기를 중국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최무선 시기부터 화약과 화포를 스스로 개발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화약 무기의 기술이 발달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화약무기 기술이 꾸준히 발전한 것은 아니며 최무선을 시작으로 세종, 임진왜란, 대원군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무선은 우리나라 최초로 화약을 자체개발하는데 성공한 사람으로 우리는 이 시기부터를 우리나라의 화약과 화포의 발전이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최무선은 중국의 염초 제조 기술자들을 수소문한 끝에 중국의 강남지방에서 온 이원(李元)이라는 자가 개성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통해 비법을 전수받았다. (최무선이 직접 원나라에 건너가 제조법을 배워왔다는 기록도 있다.) 이러한 최무선의 업적은 고려 정부에서도 높이 평가하였고 최무선은 화약 무기의 개발을 적극 건의하여 1377년 ‘화통도감’이라는 기구를 설치하게 되었다. 화통도감에서는 화약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가지 포들과 불화살, 포탄들을 만들었다. 1380년에는 진포해전에서 세계 최초로 화포를 이용한 해전을 벌여 큰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조선에 이르러서는 고려 때의 화약 무기 기술을 계승하고 정비하였다. 세종에 이르러 화기의 대대적인 개량이 이루어졌으며, 화약무기가 대량 생산되어 전국에 널리 보급됨에 따라 같은 종류의 무기들의 치수의 규격이 서로 달라 어려움을 겪던 것을 보완하기 위해 화포를 표준화, 규격화하는 『총통등록』 편찬사업이 진행되었다. 이를 통해 지난 시기 같은 종류의 무기들의 치수와 규격이 달라 화살이 멀리 가지 못하던 것 등을 보완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화약무기의 발전이 뜸했던 조선은 임진왜란 시기에 이르러서야 많은 화약무기가 개발되고 사용되었다. 그 중 이장손이 만든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라는 시한폭탄은 임진왜란의 승리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외에도 승자총통(勝字銃筒)과 화승총, 쌍혈총통(雙穴銃筒) 등 많은 화포가 사용되었고 화차 역시 계속 발전하여 임진왜란시기 행주산성전투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
19세기에 들어와 나라의 방위력은 비할 바 없이 약화되어 열강의 침투가 시작되자 대원군 시기에 이르러서 화약무기의 발전은 다시금 이루어진다. 이때에 ‘수뢰포’라는 일종의 시한폭탄이 개발되었고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그 외에 ‘대․중․소포’라는 화포 역시 개발 되었는데, 이는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당시로서는 개혁적인 화포라 볼 수 있다.
이처럼 특정시기에만 화약무기의 발전이 두드러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앞서 말한 네 시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그 당시 화약무기가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인 배경과 당시 개발되고 활용되었던 화약 무기들을 통해 화약무기의 발전이 특정시기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던 이유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Ⅱ. 화약과 화포의 발전시기

1. 최무선

고려시대부터 화약무기들이 사용되었지만, 그 무기들을 발사하기 위한 화약은 중국에서 수입해야했다. 1370년경만 해도 세계에서 화약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중국뿐이었다. 게다가 중국은 화약 제조법을 국가 기밀로 철저히 감추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려는 스스로 화약을 개발하게 되는데, 그 장본인은 바로 최무선이다. 최무선이 20년이 넘도록 집요하게 화약 개발에 매달린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이는 아버지가 광흥창사로 일하였기 때문에 아버지를 통해서 조운선의 동향이라든가 왜구에 의한 피해상을 몸소 느꼈다. 화약을 개발해 왜구를 물리치겠다고 생각한 최무선은 자신의 노복들과 함께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력한 결과 1373년 마침내 화약 개발에 성공한다. KBS 역사스페셜, 『역사스페셜 6 전술과 전략 그리고 전쟁 베일을 벗다』, 효형출판사, 2003. pp.178~179.


참고문헌

김근배 외. 『한국 과학기술 인물 12인』해나무. 2005
두산. 『두산 세계 대 백과사전』. 두산.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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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승기. 『조선의 무기와 갑옷』. 가람기획. 2004.
박성래. 『다시보는 민족과학 이야기』. 두산동아. 2002.
박성래. 『한국사에도 과학이 있는가』. 교보문고. 1998.
박환수. “세종의 국방 및 군사분야의 업적에 관한 연구”. 대전대 경영행정사회복지대학원. 2004
안경전. 『개벽 실제상황』. 대원출판사. 2006.
이종호. 『천재를 이긴 천재들』. 글항아리. 2007.
한국과학사 편찬의원회編. 『한국과학사』. 여강출판사. 2001
http://www.krpia.co.kr/pcontent/?svcid=KR&proid=38
한국역사연구회.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2』. 청년사. 1996
KBS 역사스페셜. 『역사스페셜 6 전술과 전략 그리고 전쟁 베일을 벗다』. 효형출판사. 2003

태그 화약무기 화약, 무기 조선, 최무선 화포, 대원군 기술, 시기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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