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샵

fileicon[역사학] 단종에 관하여

이전

  • 1역사학  단종에 관하여1
  • 2역사학  단종에 관하여2
  • 3역사학  단종에 관하여3
  • 4역사학  단종에 관하여4
  • 5역사학  단종에 관하여5
  • 6역사학  단종에 관하여6
  • 7역사학  단종에 관하여7
  • 8역사학  단종에 관하여8
  • 9역사학  단종에 관하여9
  • 10역사학  단종에 관하여10

다음

  • 최대 100페이지까지 확대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 레포트 > 인문계열 > 자료상세보기 (자료번호:223020)

구매가격
1,000원 할인쿠폰900원
등록/수정
2008.11.28 / 2008.11.29
파일형식
fileiconhwp(아래아한글2002) [무료뷰어다운]
페이지수
10페이지
자료평가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등록자
swdde
  • 다운로드
  • 장바구니 담기

닫기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 트위터
  • 페이스북
신규가입 200원 적립! + 10% 할인쿠폰 3장지급! banner구매자료를 평가하면 현금처럼 3%지급!

소개글

[역사학] 단종에 관하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기
2. 단종의 즉위
3. 계유정난과 그 이후
4. 단종 복위 운동
4.1 사육신
4.2 금성대군
4.3 이징옥
4.4 생육신
5. 단종실록과 진실
5.1 단종실록
5.2 단종에 관한 진실
5.3 계유정난에 관한 진실
6. 복권에 관하여
6.1 단종의 복권
6.2 사육신의 복권
7. 단종에 관한 전설
8. 마무리

본문내용

단종은 12세의 어린나이로 즉위하였다. 당시 미성년의 어린 왕이 즉위하면 궁중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후비가 수렴청정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당시 궁중의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단종의 모후였던 현덕왕후가 단종을 낳은 후 3일 만에 숨을 거두었고 문종의 후궁으로도 귀인 홍씨, 사칙 양씨뿐이었다. 세종의 후궁인 혜빈 양씨가 있었으나 늦은 입궁과 후궁인 탓으로 정치적 발언권이 거의 없어 후궁들은 모두 비슷한 위치에서 내사를 돕는 정도에 그쳐야 했다.
단종은 너무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기 때문에 정사를 돌볼 수 없어 모든 조처는 의정부와 육조가 도맡아 했다. 대표적인 예로 황표정사라는 제도가 있는데 이는 인사에 관련된 제도로서 조정에서 지명된 일부 신하들이 인사 대상자의 이름에 황색 점을 찍어 올리면 왕은 단지 그 점 위에 낙점을 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조정은 문종의 유명을 받든 김종서, 황보 인등의 고명대신들에 의해 운영되었으며 자연히 정치권력은 이들에게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 왕위를 노리는 왕족들의 힘도 강해졌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안평대군과 수양대군이었다. 이 둘은 세종 후반기부터 서서히 힘을 길러왔으며 문종 때에는 자신들의 세력을 점차 드러내기 시작했다. 고명대신들은 왕족의 힘을 분산시키기 위해 안평대군을 끌어들였다. 안평은 육진을 개척할 때 김종서와 함께 여진을 토벌했으며 조정대신들과 비교적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고명대신들이 안평대군과 손을 잡음으로써 수양대군의 기세는 위축되었고, 그는 이에 대한 대책을 모색하게 된다.
수양대군은 거사를 수행하기 위해 치밀하게 행동하였다. 1452년 9월 명나라가 단종의 즉위를 인정한다는 고명을 전해오자 조정에서는 이에 감사한다는 사은사를 보내기로 하는데 수양대군이 자청하여 명나라로 떠나게 된다. 수양대군이 없는 틈에 대신들의 세력이 커지길 우려했던 수양대군의 수하들은 이를 만류하였으나 그의 사은사로의 자청은 의도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가 사은사로서 명나라에 다녀온 것은 정권에 욕심이 없다는 뜻을 내비치기 위함이었고 대신들은 수양대군의 뜻대로 그에 대한 경계를 풀어 그가 자유롭게 거사 계획을 짜도록 하였다. 1453년 4월부터 수양대군은 신숙주를 끌어들이고, 홍달손, 양정 등 뛰어난 무사를 수하게 두고 본격적으로 무력을 양성했다.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난은 시작되었다. 이 때 계유정난의 명분은 대신들이 안평대군을 추대하여 종사를 위태롭게 한다는 것이었다. 우선 수양대군은 당시 최대의 권력가였던 김종서를 죽이기 위해 그의 종 임어을운만 데리고 김종서의 집으로 향했다. 김종서의 아들, 김승규는 수양대군이 혼자 온 것을 확인하고 수양대군을 맞아 들였고 김종서를 만난 수양대군은 비밀스런 청이 있다며 주위 사람들은 물리치게 한 후 편지 한 통을 주었다. 편지를 받은 김종서가 편지를 읽고 있을 때 임어을운이 철퇴로 김종서를 쳐서 땅에 쓰러뜨리고 양정이 아버지를 보호하려는 김승규를 죽였다. 수양대군은 곧바로 사병을 동원하여 궁을 장악하였고 대신들에게 입궁하라는 어명을 내렸다. 이때 한명회가 살생부를 들고 신호하면 입궁하는 대신들을 차례로 죽였는데 조극관, 황보인, 이양이 입궁하다 철퇴에 맞아 죽었고 윤처공, 이명민, 조번, 원구 등은 사람을 보내 죽였으며 김연과 민신도 집에서 목을 베어 죽였다. 한편 김종서는 다시 깨어났으나 이미 모든 대문 수비군이 수양대군의 군사로 배치 되어있었고 몰래 들어가려는 계획마저 실패하자 아들 김승벽의 처가에 숨었으나 수양대군의 군사에게 들켜 죽고 말았다.
이로써 조정은 수양대군에 의해 장악되어, 수양대군은 영의정에 올랐으며 왕을 대신해 서무를 관장하는 등 왕권과 신권을 동시에 장악했다.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에 참여한 인물들은 정난공신에 봉하고 안평대군과 그의 아들 우직은 강화도로 유배시켰다가 안평대군은 사사시키고 우직은 진도에 유폐시켰다.
1454년 이름뿐인 왕이었던 단종은 송현수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였으나 이듬해 수양대군이 금성대군과 신하들을 유배시키자 더 이상 왕위에 있지 못함을 알고 상왕으로 물러나 수강궁으로 옮겨갔다. 단종이 왕위를 수양대군에게 맡기고 물러나자 이로써 수양대군은 그를 이어 조선의 7대왕에 즉위하여 세조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태그 단종, 사육신, 계유정난, 단종전설, 생육신

도움말

이 문서는 한글워디안, 한글2002 이상의 버전에서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구매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img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 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 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