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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icon[국어학사] 광복 이후부터 1980년대까지의 국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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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어학사] 광복 이후부터 1980년대까지의 국어학에 대한 자료입니다.

하고 싶은 말

국어국문학과 전공 수업 시간에 제출한 레포트입니다~
광복 이후부터 1980년대까지의 국어학에 대해 조사해서 발표하는 것이었는데 이 레포트를 통해서 A+을 받게 되었어요~
자료가 필요하신 분들께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목차

1. 광복 후의 국어 연구(1945~1950)
(가) 국어 정책
(나) 국어사와 국어학사의 연구 : <조선고가연구>, <여요전주>, 고어사전 편찬

2. 사변 후의 국어 연구(1950~1959)
(가) 국어 연구를 위한 여건 변화 : 학계 창립, 재건
(나) 국어 정책의 실패 : 한글 파동, 국문 전용
(다) 국어사 연구
(라) 현대국어 연구 : 허웅의 <국어음운론>
(마) 국어학사의 연구 : 체계적인 통사가 실현됨.
3. 1960년대의 국어 연구
(가) 구조주의 이론의 도임과 적용
(나) 국어사 연구의 결실 : 이기문의 <국어사개설>
(다) 변형 생성 문법의 도입
4. 1970년대의 국어 연구
(가) 학회 활동 변화
(나) 구조주의 이론의 결실과 생성 문법의 적용 : 허웅 <우리옛말본>, <신국어학개론>, <국어의미론>
(다) 국어사 연구
(라) 국어학 연구 평가
5. 1980년대의 국어 연구
(가) 국어학 연구의 자리 잡음 : 개론서 출간
(나) 국어의 역사적 연구
(다) 국어학 연구의 정리

본문내용

1. 광복 후의 국어 연구(1945~1950)
해방 후의 국어학은 먼저 국어 회복을 위한 국어 순화 노력이 이루어 졌으며, 저항기부터 관심을 보여 온 영역인 국어사와 국어학사에 대한 연구가 행해졌다. 또한, 이념적인 민족 운동의 일환으로 계속되었는데, 이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태도를 여전히 가지고 있었으며 종전의 민족 운동을 완성시키려는 뜻에서 더욱 강조된 경향이었다. 마지막으로, 새로 생긴 대학에서 연구가 심화되어 가고 이에 따라 비판적 기풍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해방 후의 국어 연구는 양은 많지 않으면서, 질이 높지 않은 성과를 이룩해냈다.

(가) 국어 정책
해방 후 당면 현안은 신속한 국어 회복을 위한 국어 정책이었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구체적으로 바른 언어 보급보다 문자 보급이 긴급하다는 필요성을 인식하고, ‘조선어학회’에서 당면 방침을 정하여 국어 교과서 편찬, 국어 교원 양성, 한글지 속간, 국어사전 편찬 완결 등의 정책을 펼쳐 나갔다.
교원 양성과 교과서 편찬은 우선 국어 강습회를 통한 철자법 교육을 시행하고, 39명의 국어 강사를 전국에 파견하였으며, 맞춤법 통일안이 남북에 일시에 보급되면서 철자법상 남북 통일 시대가 지속되었다. 해방 후의 어문 정책은 민간단체인 ‘조선어학회’가 담당하였고, 야간제 ‘세종중등국어교사양성소(1948)’를 세워 본격적으로 교원을 양성하였다. 그리고, ‘조선어학회’는 최초의 국어 교과서를 1945년 14월 4종에 걸쳐 편찬하였다.
교원 양성 ․ 교과서 편찬과 더불어 ‘큰사전’과 국어 순화 정책이 시행되었다. 큰사전은 조선 광문회에서 ‘말모이’편찬을 시작으로 주시경, 김두봉에 의해 1919년까지 계속되다가 중단되고, 1928년 1월 박승빈의 계명구락부에서 편찬하다가 중단되었으며, 1934년 6월 박승빈의 ‘조선어학연구회’로 이관된 후 미구에 중단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1929년 10월 ‘조선어학회’에서 사전편찬회를 조직하고 1930년 1월에 다시 착수를 시작하여, 1942년 봄 ‘조선어대사전’이 탈고되었다. 200여 면의 조판이 진행되었으나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원고 50여 권도 몰수당하게 된다. 이후 원고가 1945년 10월 3일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되고, 1947년 10월 ‘조선말큰사전’ 제1권이 을유문화사에게 간행되었으며, 1949년 5월 제 2권이 록펠러 재단의 지원으로 속간된다. 이는 록페럴 재단이 한국 재건의 원조를 주고자 하는 뜻에서 한글학회 사전 사업을 선택한 것이었으며, 둘째 권에서 여섯째 권 10만권 발행의 물자 도움을 받고, 6․25 사변 후 또 다시 오만 삼천 책 발행의 물자를 기증받게 된다. 제 3권은 1950년 6월 ‘큰사전’으로 고쳐 간행되어 28년의 작업 끝에 1957년 6권으로 완간된다. ‘큰사전’의 편찬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표준국어사전이요, 국어 확립의 구체적 표상이며, ‘큰사전’을 통해 우리는 국가적 민족적 체면이 서게 되었다. 이러한 ‘큰사전’을 깁고 다듬은 것이 ‘우리말큰사전(1991)’이다.
국어 순화 정책은 1946년 문교부의 학술용어제정위원회 21개 분과에서 시행되었으며, ‘우리말 도로 찾기’와 문법 용어 제정등으로 국어 순화를 위한 노력을 시행해 나갔다.

참고문헌

고영근, 「국어학연구사」, 학연사, 1985.

태그 국어학, 국어 연구, 광복 후, 사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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