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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작가론] 김시습과 한문 문학 -금오신화를 중심으로

레포트 > 인문계열 > 자료상세보기 (자료번호:21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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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매월당 김시습의 생애와 문학관
1.1 김시습의 일생
1.2 김시습의 시세계
1.2.1 방랑의 시작
1.2.2 문학을 통한 자아와 가치 실현
1.2.3 현실 대응 태도와 인간미의 발현
1.2.4 선각자적 방외인의 초상
2. 금오신화 연구
2.1 「금오신화」 간단한 줄거리
2.2 「금오신화」와 「전등신화」의 비교를 통해본 「금오신화」의 특징
2.3 「금오신화」에 나타난 김시습의 사상 고찰
2.3.1 유교사상
2.3.2 불교사상
2.3.3 도교사상
2.3.4 기 타
2.4 「금오신화」에 나타난 김시습의 죽음에 대한 사상 (송정란)
2.5 「금오신화」중, 현실 소외에 의한 내면의식-방외인으로서 면모

3. 심화 연구
3.1 「금오신화」의 선불교적 現實主義
3.2 최초의 소설 「금오신화」 vs 「수이전」
3.2.1 「수이전」의 문학사적 의의

본문내용


1. 매월당 김시습의 생애와 문학관

1.1 김시습의 일생


김시습의 본관은 강릉(江陵)이고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청한자(淸寒子)·벽산(碧山)․설잠(雪岑)이고, 시호는 청간(淸簡)이다. 그의 이름 시습(時習)은 그의 친척이며 집현전 학사인 최치운이 그의 재주에 경탄하여 지어줬고,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글을 알았고, 2살에 시문을 깨우쳤으며 다섯 살에 대학, 중용을 터득하였다.

그는 신동으로 5세에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소문을 들은 대신 허조가 그의 집을 방문하여 그의 실력을 알아보고자 하여 “나는 늙은 몸이니, ‘늙었다’(老)는 말로 글을 지어보라.”고 하니 ‘老木開花心不老 : 늙은 나무에 꽃이 피었으니 마음은 늙지 않았다’라 했다. 세종이 이 소문을 듣고 그의 실력을 시험하도록 했다. 지신사 박이창이 매월당에게 이름을 가지고 시를 지어보라는 시험을 냈고 이에 매월당은 ‘來時襁褓金時習 : 올 때 강보(포데기)에 싸여 있던 김시습입니다’라는 대답을 한다. “저 앞에 있는 산수화를 보니 무엇이 생각나느냐?”라는 질문에 ‘小亭舟宅何人在 : 작은 정자와 배 위의 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라는 답을 한다. ‘童子之學白鶴靑空之末 : 어린 아이의 학식이 백학이 되어 푸른 하늘 끝에서 춤을 추는구나.’라는 말에 대귀하여 매월당은 ‘聖主之德黃龍暢碧海之中 : 성스러운 임금의 덕은 황룡이 되어 푸른 바다 한가운데에서 번득이고 있네.’라고 답한다. 세종대왕은 친히 비단 50필을 하사하며 스스로 가져가게 하니 시습은 바늘실로 자치를 연결하고 한 끝을 끌고 대궐문을 나갔다고 한다. 시습이 13세 되던 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외갓집에 맡겨져 외조모의 사랑을 받고 자랐으나 외조모도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재혼을 한다. 기울어져 가는 가세를 살리기 위해 남효례의 딸과 혼인하나 얼마 후 병으로 죽고 만다. 어머니와 외할머니를 사별하고 인생의 무상과 허무를 느끼던 그는 불교에 마음을 기울였고, 또한 도교서를 열심히 탐독했다. 단종 원년 계유감시에는 합격했으나, 불운하게도 증광시에는 낙방했다.

시습이 20세(1455)에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에 들어가 독서를 하며 여러 가지 공부를 하던 중 세종과 문종의 승하 소식을 듣고, 어린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통분을 금치 못하고 꼬박 사흘 동안 망연자실하여 두문불출하던 김시습은 서적을 불사르고 승으로 가장하여 설악산에 들어가 오세암을 짓고 중이 되었다.

* 생육신 : 조선 세조가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탈취하자 세상에 뜻이 없어 벼슬을 버리고 절개를 지킨 여섯 사람. 사육신이 절개로 생명을 바친 데 대해 이들은 살아 있으면서 단종을 추모했다. 이 여섯 사람 중 하나가 김시습이다. 1782년 정조 때에는 그 절개와 공로를 인정받아 이

참고문헌

『金鰲新話의 揷入詩 硏究』, 金鎭斗 1979.
『금오신화 연구』, 이대형 2003.
『<금오신화>에 투영된 김시습의 내면의식』, 이원수 1998.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의 이념과 역설』, 박일용 2006.
『매월당 김시습의 문학세계』, 박영주 2000.
『한국고전소설사연구』, 장효현,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4.
『소설의 발생과 수이전 일문의 장르적 성격』, 박일용, 집문당, 1993.
『한국 전기소설사 연구』, 소인호, 집문당, 2005
『김시습의 문학과 성리학 사상』, 김명호, 한국학보, 1984.
『매월당 김시습의 시문학 연구』, 이은주, 한문교육연구, 1994
『김시습 문학의 사상적 배경 연구-금오신화를 중심으로』, 전준걸, 새국어교육, 1982
『수이전 연구』, 박옥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논문, 1997.


태그 김시습 현실, 금오신화 대한, 매월당 염왕, 사상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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