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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회복지의 역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제 2 장 사회복지의 역사

본문내용

제 2 장 사회복지의 역사
 
현대 사회복지의 발전과정을 간단히 설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국가마다 사회복지의 발전과정이 다르며, 사회복지의 발전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온 사회적 요인들이 결코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복지의 역사를 보는 이념적 관점에 따라 같은 사실을 상당히 다르게 설명할 수도 있다.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사회복지의 발전과정은 저소득 근로자계층을 회유하고 억압하기 위한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반면에 시장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사회복지의 발전은 정부관료들이 스스로의 규모와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적 과정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또한 윤리적 관점에서 보면 시민권의 발전의 한 축으로서의 사회복지의 발전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관점에 의해 사회복지의 역사가 설명될 수 있는데, 󰡒사회복지의 정책󰡓을 다루는 이 책에서는 정책이란 관점에서 사회복지발전의 기능적 측면에서 역사를 보고자 한다. 모든 사회적 제도가 나름대로의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발전되어 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복지제도 역시 시대적 필요에 따라 발전되어 온 것이다. 발전과정에서 정치적 개입은 사회복지의 본연의 역할을 많이 왜곡하기도 하고, 선심성 정책이 복지국가의 비대화를 가져오기도 하였지만, 사회복지가 지니고 있는 사회적 기능은 역사적으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여 왔으며, 미래에도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면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사회복지의 역사를 설명하는데 있어서는 영국의 사회복지역사가 가장 중심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영국은 독립국가로서 가장 오랜 사회복지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시대적 변화에 따른 사회복지의 발전과정을 잘 나타내어주고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도 사회복지의 역사를 다루는데 있어서 영국의 사회복지역사를 중심으로 하여, 필요한 부분에 있어서 독일과 미국의 사회복지 역사를 보충설명하기로 한다.
한국의 사회복지의 역사는 역사라고 하기에는 매우 일천한 과정을 겪어왔다고 하겠다. 사회복지의 관련법들은 1960년대부터 있어 왔지만, 실질적으로 제도적 차원으로 다룰 만큼의 사회복지제도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말이다. 따라서 이 장의 후반부에서 한국 사회복지의 역사를 간단히 조명해 보기로 한다.
 
1) 사회복지제도 이전의 자선
 
중세시대의 빈곤문제는 제도적 차원의 사회복지보다는 자선에 의한 빈곤구제에 의해 이루어졌다. 봉건시대의 장원제도에서는 대부분의 빈곤층이 농노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나 그 가족들이었으며, 이들의 복지는 영주에 의해 이루어졌다. 영주는 농노들의 복지에 절대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실상 당시의 생산성이 그다지 높았던 것이 아니다. 따라서 경작에 의한 이윤은 영주가 지니고 있는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소비를 충족하기에도 풍족하지 않았으며, 50%에 가까운 농노들은 빈곤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시대에도 빈곤층에 대한 중요한 보호원칙은 존재하였으며, 이 원칙이 소위 󰡒교회법(cannon law)󰡓이다. 교회법에 의하면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에 해당되는 수준을 초과하는 정도의 소득은 빈곤층을 위해 사용하여야 한다. 만일 그 이상의 소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산을 늘리기 위해 소득을 지키는 것은 절도에 해당된다.󰡓고 되어 있다. 즉 빈곤층에 대한 자선이 곧 종교적 구원의 지름길이며, 자선을 수행할 수 있는 재정적 능력이 있음에도 자선을 행하지 않는 것은 절도와 같은 것으로 비난받을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 따라 영주이상의 귀족계층에 의해 자선이 이루어졌고, 특히 교회에 대한 기부행위가 활발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은 빈곤층을 위한 자선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종교적 구원을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개인적 차원에서 직접적인 자선활동을 하는 것은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으며, 종교단체 특히 교회가 자선활동의 중심이 되었다. 교회 역시 집없는 사람들에 대해 숙식을 제공하고, 빈곤층에 대해 음식을 제공하는 정도였으며, 빈곤의 근본적 예방이나 구제를 생각하지는 않았다.
13세기부터는 소위 산업화의 초기로서 봉건시대의 장원제도가 붕괴되어가기 시작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13세기부터 시작된 양모산업은 국제무역을 활성화시키면서, 점차 영국의 경제를 화폐경제(money economies)로 전환시켰다. 장원제도가 붕괴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농노의 신분에서 벗어나 임금을 받는 농업노동자가 되거나, 도시로 옮겨가 산업노동자가 되었다.
농노의 위치에서 자유인이 된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방랑자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양모산업의 발달로 인해 일자리가 늘어나기는 하였지만, 대부분 지역주민들이 우선적으로 취업됨에 따라 다른 지역에서 온 노동자들은 쉽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였다. 봉건시대에는 영주에 의해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었으나, 자유인이 된 후로는 자신의 생계는 자신이 책임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질병에 걸리거나, 노쇠해진 경우에는 구걸만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며, 일자리를 찾아서 돌아다니는 방랑자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여기에 프랑스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 역시 농노로 돌아가느니, 타향에 가서 자유인이 되기를 희망하게 됨에 따라 방랑자들은 더욱 늘어났다.
산업화 초기에는 이러한 현상은 그다지 사회문제가 되지 않았다. 갑자기 높아진 생산성으로 인해 산업자본가들은 관대해지게 되었으며, 당시의 교회법의 전통은 개인적 차원에서부터 길드조직과 같은 단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선이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약 460개의 재단들이 만들어져 다양한 복지를 제공하였다. 이에 따라 일자리가 없는 방랑자들은 일자리가 생길 때까지 이러한 재단들이나 교회에 의존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풍성함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으며, 14세기부터는 각종 자연재해로 인해 식량이 부족하게 되었으며, 기근과 홍수 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고,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1348년에 시작되어 1375년까지 4번 발생한 흑사병은 영국의 인구를 급속히 줄어들게 하였다. 이에 따라 노동력이 부족하게 되었으며, 영국의 왕실이 처음으로 방랑과 구걸에 대한 제동을 걸기 시작하였다.
최초로 방랑과 구걸의 금지를 정한 법은 1349년의 「노동자법(the Statute of Laborers)」이다. 이 법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현재 거주하고 있는 교구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으며, 다른 생계수단이 없을 경우 자신을 고용하려고 하는 고용인의 제의를 받아드려야 하는 것을 법으로 정하고 있다. 또한 일할 능력이 있는 방랑자에게 시혜를 베푸는 자선도 금지하고 있다. 또한 방랑과 구걸을 방지하기 위해 1495년에는 「방랑 및 구걸금지법(Act Against Vagabonds and Beggars)」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방랑과 구걸을 금지시키는 것만으로는 크게 효과가 없었기 때문에, 빈민과 걸인들에 대한 구호도 법으로 제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531년에는 지방정부가 구걸을 할 자격이 있는 불구자나 노인들에 대해서는 자격증을 발행하고, 대신 건장한 사람들이 구걸행위를 할 경우에는 체형과 같은 형벌을 할 수 있게 하는 원칙이 국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건장한 방랑자나 걸인에게 숙소, 금전 등을 제공하는 사람들에게도 벌금을 부과할 수 있게 하였다.
 
 
2) 엘리자베스 구빈법(the Elisabeth Poor Law of 1601)
 
(1) 구빈법의 일반적 성격
 
빈곤층에 대한 구제를 국가차원에서 제도화한 최초의 법은 1601년의 엘리자베스 구빈법이다. 이 구빈법은 실질적으로 빈곤층을 도와주는 차원보다는 당시의 부족해진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일종의 “직업적 걸인”들에 대한 통제수단으로의 성격이 강했다. 따라서 엘리자베스 구빈법이 최초의 제도화된 법률이란 것에 반대하는 견해도 있으나, 무엇보다 최초로 빈곤층 구제를 위한 구빈세(poor rate)를 통해 빈곤층을 구제하였다는 점에서 사회복지관련법으로 인정되고 있다.
구빈법의 중심내용은 <표 2-1>과 같이 빈곤의 구제의 방법과 책임, 그리고 근로의무로 구성되어 있다. 구빈법이 비록 최초로 국가 차원에서 만들어진 법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각 교구가 중심이 되어 집행되었다. 교구의 치안판사는 무보수(unpaid)의 감독관들을 임명하여 구빈법의 집행을 맡겼으며, 치안판사의 성품에 따라 엄격함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관대한 치안판사가 있는 교구로 방랑인이나 걸인들이 이동해 옴에 따라 점차 각 교구가 엄격하게 통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독관들은 빈곤층의 구호를 신청을 받아 합당한 자격이 있는지 조사를 통해 결정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구호를 받을 자격은 빈곤층을 크게 세 분류로 나누어 일할 능력이 전혀 없는 빈곤층에게만 주어졌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경우에는 작업장에 보내지거나,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는 도제로 보내어졌다. 또한 감독관들은 주민들의 빈곤세의 부과도 책임을 지었다. 세액은 주민들의 재산수준에 비례하였다. 세율이나, 재산측정에 대한 세밀한 규정은 없으며, 전통적인 방법에 의해 감독관의 판단에 맡기도록 하였다.
 
<표 2-1> 엘리자베스 빈곤법의 중심 내용
1. 전국적 의무규정으로 중앙정부에 책임기관을 설립한다.
2. 각 교구(parish)는 그 지역 내에 재산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빈세를 거두어 그 지역의 빈곤에 대한 책임을 진다.
3. 무보수의 감독관들이 임명되어 구빈세가 거두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한 기금으로 빈곤을 구제하며, 일할 능력이 있는 빈곤층에게는 일을 시키고, 그 자녀들은 도제가 되도록 감독한다.
4. 부모들은 자식과 자식의 아이들까지 책임을 지며, 마찬가지로 자식들은 부모와 조부모의 생계를 책임진다.
5. 빈곤세를 내지 않는 재산소유자나,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빈곤층은 감옥에 보낸다.
6. 만일 한 교구가 지역내의 빈곤층을 모두 구제할 만큼의 여력이 없을 시에는 인근 다른 교구의 도움을 청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

태그 사회 구빈법, 노역장 대한, 빈곤층 사회복지, 근로능력 빈곤, 복지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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