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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icon[영화] 기타노 다케시 - 죽음과 폭력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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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화] 기타노 다케시 - 죽음과 폭력의 미학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죽음과 폭력의 미학 『기타노 다케시』
(고요함 속에 번뜩이는 폭력과 웃음)
◎ Biograohy
◎ Filmography
◎ 기타노 다케시 영화의 테마
◎ 기타노 다케시의 주인공들
◎ 기타노 다케시 영화의 스타일
◎ 기타노가 말하는 기타노의 인생
◎ 정리 하면서...

본문내용

90년대 일본영화의 희망으로 기타노 다케시를 꼽는 일은 지극히 당연하다. 더 이상 일본영화계에서 󰡐프로󰡑 감독이나 󰡐전업󰡑 감독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기타노 다케시가 일본 텔레비전의 골든 아워를 독점하고 있는 최고의 개그맨이라는 사실은, 그의 영화들에 편견의 그늘을 드리우게 하지만 언제나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한 영화작가의 치열한 영혼이다. 어쩌면 이것은 단 한번에 그치는 기적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채널을 돌릴 때마다 욕설을 퍼붓고, 웃음의 정곡을 찌르는 통쾌한 유머와 기어이 한 방 먹이는 지독한 독설로 자지러지게 만들지만, 그가 메가폰을 잡는 순간은 경건함과 진지함으로 영화라는 대상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는 개그맨과 영화배우로 일할 때는 비트 다케시라는 이름을, 영화감독으로 일할 때는 자신의 본명인 기타노 다케시라는 이름을 따로따로 사용한다(이도저도 아닌 경우는 다케-찬이라는 별명을 쓴다). 이것은 그가 영화 속에서만 자신과 거짓없이 대면한다는 의미이며, 그가 우리시대를 간파하는 방식은 미소를 거둔 싸늘한 무표정과 패배와 절망의 수사학으로 인간의 내면 속에 잠재되어 있는 폭력성을 응시하는 것이다. 그는 소외당한 젊은이들과 법도 질서도 없는 야쿠자들의 충돌에 뛰어들어서 그것이 놀랍도록 일상적이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게 만든다. 기타노 다케시는 1948년 1월 18일 동경에서 태어났다. 80년대를 풍미한 스탠드 업 개그의 일인자로서 막강한 코미디언 사단을 이끌고 여러 채널권을 확보해온 수퍼스타(한 주에 8개의 다른 TV 쇼를 진행하기도 했다)가 영화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카메오󰡑 출연때였다. 오시마 나기사의 83년작 <전장의 메리 크리스마스>에서 겐고 하라 병사역으로 특유의 무표정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그는 이어서 <악마가 부르는 노래>, <만화책 따위는 필요없어> 같은 트렌디 영화에서 냉혈한 야쿠자 킬러 역으로 외유를 즐겼다(95년에는 헐리우드 영화 <코드명 조니>에서 키아누 리브스와 대결하기도 했다). 89년에 처음으로 주연 의뢰를 받게 되는데 그 영화가 바로 <이 남자 흉폭하다>였다. 원래 이 영화의 감독은 깡패영화의 대가로 꼽히던 후쿠사쿠 긴지가 내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서로 바쁜 감독과 주연배우의 스케줄이 맞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어지던 이 영화는 결국 기타노 다케시의 감독 데뷰작으로 운명이 바뀌게 된다. 시한폭탄처럼 위험하고 자학적인 아즈마 형사와 야쿠자 일당의 대결을 소름 끼치도록 리얼하게 묘사한 이 영화가 완성된 순간, 기타노
다케시는 단숨에 후쿠사쿠 긴지를 넘어서는 유능한 영화감독으로 부상했다. 특히 한쪽 눈을 안대로 가린 다케시가 여동생을 납치해간 일당들이 숨어있는 창고에서 벌이는 마지막 시퀀스는 <저수지의 개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듯 하다(96년 타란티노는 자신의 배급사를 통해 다케시의 영화를 미국에 수입했다). 두번째 영화 <3-4×10월>(90)는 젊은 야구선수들이 동네 깡패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총기를 구입하면서 점점 파국을 향하여 치달아간다. 기타노 다케시는 젊은이들에게 총을 구해주는 호모 섹슈얼한 한물 간 야쿠자로 등장했다. 두편의 󰡐흉폭한 남자󰡑이야기를 폭력과다로 연출한 기타노 다케시는 세번째 영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92)에서 획기적으로 변모한다. 자신의 영화사인 󰡐오피스 기타노󰡑를 차리고 직접 각본을 쓰고 편집까지 도맡은 진정한 작가영화의 출발이자 <소나티네>와 함께 기타노 다케시의 최고작으로 평가받은 이 영화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이모션으로 가득찬 침묵과 명상의 시편이다. 벙어리이자 귀머거리인 쓰레기 청소부 시게루와 그의 여자친구는 근심 없는 부루조아들이나 즐기는 서핑에 서서히 몰두해가면서 그 뜨거운 태양과 바다와 호흡하다가 결국은 바다 속으로 침몰해간다. 느리게 이동하는 카메라가 주인을 잃고 무심히 떠밀려 오는 서핑보드에 머무르는 순간 더없는 서글픔이 밀려온다.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를 통해 뛰어난 스타일리스트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기타노 다케시는 다시 󰡐흉폭한 남자󰡑의 완결판인 <소나티네>(93)로 돌아갔다. 동경과 오키나와 섬의 야쿠자들이 지역의 이권을 둘러싸고 전면전을 벌이는 이 영화는 이제 대가의 경지에 들어선 완숙한 폭력의 미장센으로 눈부시다. 깐느영화제 감독주간과 런던영화제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특히 피곤에 찌든 야쿠자 무라카미로 출연해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들이대고 빙글거리며 피를 흩뿌리는 라스트 장면에서 기타노 다케시는 사무라이 활극으로부터 내려오는 비장한 죽음에 대한 오마쥬를 잊지 않았다. 개그맨으로서나, 영화감독으로서 성공한 인생의 표본이었던 기타노 다케시에게 94년은 불운한 해였다. 최초의 코미디 영화였던 <모두 왔습니까>(94)는 최초의 실패작으로 기록되었고, 평소 스피드광이었던 다케시는 치명적인 모터사이클 사고로 몇달간 병원에 입원했다.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던 기타노 다케시는 그 후 여러 인터뷰를 통해 인생관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사고 이후의 첫 영화인 <키즈 리턴>(96)에는 그 변화가 녹아 있다.

태그 영화, 기타노다케시, 일본영화, 기타노, 다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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