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샵

fileicon[사화] 조선시대 4대 사화에 관하여(A+)

이전

  • 1사화  조선시대 4대 사화에 관하여(A+)1
  • 2사화  조선시대 4대 사화에 관하여(A+)2
  • 3사화  조선시대 4대 사화에 관하여(A+)3
  • 4사화  조선시대 4대 사화에 관하여(A+)4
  • 5사화  조선시대 4대 사화에 관하여(A+)5
  • 6사화  조선시대 4대 사화에 관하여(A+)6

다음

  • 최대 100페이지까지 확대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 레포트 > 인문계열 > 자료상세보기 (자료번호:184557)

구매가격
1,000원 할인쿠폰900원
등록/수정
2007.12.07 / 2007.12.08
파일형식
fileiconhwp(아래아한글2002) [무료뷰어다운]
페이지수
6페이지
자료평가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등록자
mrjjo
  • 다운로드
  • 장바구니 담기

닫기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 트위터
  • 페이스북
신규가입 200원 적립! + 10% 할인쿠폰 3장지급! banner구매자료를 평가하면 현금처럼 3%지급!

소개글

[사화] 조선시대 4대 사화에 관하여(A+)에 대한 자료입니다.

하고 싶은 말

조선시대 4대 사화에 관해 자세하고 세밀하게 정리한 레포트 입니다.
지난학기 한국사 시간 과제물로 20점 만점에 20점 받은 자료입니다.
사화 관련 레포트를 작성하시는데 많은 도움 되실겁니다.

목차

< 조선시대 4대 사화에 관하여 >

1. 사 림
2.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
3. 사화
1) 무오사화
2) 갑자사화
3) 기묘사화
4) 을사사화

- 참 고 문 헌 -

본문내용

3. 사화
1) 무오사화(戊午士禍)

성종이 죽은 후 세자 융(연산군)은 조선 제 10대 왕으로 즉위했다. 즉위 초에는 전국의 모든 도에 어사를 파견하여 지방관들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백성들의 고초를 살폈다. 연산군 초기는 겉으로는 평화로운 문치주의가 계속된 시기로 보이지만 그 밑에서는 사림파와 훈구파가 치열한 암투를 벌이고 있었다. 훈구파는 사림파가 성종 대에 펼쳤던 공격을 잊기 않고 있었다 연산군 즉위 이후, 사림파는 훈구파에 대해 공격을 재개했다. 하지만 연산군은 사림파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고, 이를 확인한 훈구파는 사림파를 쓸어버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무오사화는 김종직의 제자였던 김일손의 ≪사초≫로부터 발단되었다. 일반적으로 김종직의 ≪조의제문≫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것은 사건이 한창 전개되던 막바지에 돌출한 하나의 변수였고, 그 배경은 훈구파와 사림파의 권력 투쟁이였다. 무오사화는 연산군 4년(1498년 7월) 춘추관에서 성종실록을 펴내기 위한 사국을 열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김일손은 이극돈의 기록을 맡았는데 이극돈은 김일손에게 세조때 불경을 외웠던 것과 전라도 관찰사 재임시 정희왕후의 국상에도 관기를 불러 주연을 베풀었다는 것을 삭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김일손은 한마디로 잘라 거절했고 이극돈은 다른 구실을 만들어 자신을 변명하고 김일손을 비난했다. 양쪽은 물러설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훈구파는 여러 가지 중에서 세조 즉위에 대한 사림파의 평가를 문제 삼았다. 먼저 세조의 죽음 당시 만 4살이었던 김일손이 어떻게 세조 당시의 궁중 비사를 적었음을 문제 삼았고, 이것에는 ‘김종직’이라는 배후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연산군을 찾아갔다. 사초 문제로 임금을 찾아간 것은 불법이었다. 임금이라 해도 사초를 볼 수 없다는 엄격한 규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훈구파는 김일손이 쓴 사초 6조만 봉입했고, 그것을 본 연산군은 세조 즉위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글이라고 판단하고 세조의 도덕성과 왕실의 도덕성을 흠집내려는 불순한 의도가 담긴 글이라 생각하여 이 기회에 사림파를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먼저 사초를 쓴 김일손을 잡아들여 국문을 열었다. 연산군은 사육신에 대한 사림파의 시각과 그 당시 상황을 기록한 것도 문제 삼아 김일손이 세조의 즉위 자체를 부정하는 불순한 역사관을 지녔고, 그것을 드러낸 사초라 하여 공격했고 죽음을 각오한 김일손은 단독 소행으로 사건을 종결 지으려 했다. 일이 이렇게 되어 가자 유자광은 훈구파를 모아 조정의 기풍을 쇄신하자며 연산군에게 김일손의 무리가 어떻게 간계를 꾸밀지 모른다며 위기 의식을 조장하기 시작했다. 즉, 무오사화를 확대해 간 것이다. 유자광은 다른 문제를 잡기 위해 샅샅이 살피다가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발견했고 그것을 문제삼았다. 연산군은 김종직을 선왕의 은혜를 저버린 인물로 비난했고, ≪조의제문≫의 내용을 들어 김종직의 제자들까지 확대를 시켰다. 결국 사림파의 정치 행위 모두 부정의 대상이 되었고,

참고문헌

이덕일, ≪사화로 보는 조선 역사≫ 석필, 1998
이태진, ≪조선시대 정치사의 재조명≫ 태학사, 2003

태그 조선의사화, 4대사화, 사화, 조선시대사화, 사화에관해

도움말

이 문서는 한글워디안, 한글2002 이상의 버전에서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구매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img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 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 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