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샵

fileicon[고려사] 원의 간섭기가 고려에 미친 영향

이전

  • 1고려사  원의 간섭기가 고려에 미친 영향1
  • 2고려사  원의 간섭기가 고려에 미친 영향2
  • 3고려사  원의 간섭기가 고려에 미친 영향3
  • 4고려사  원의 간섭기가 고려에 미친 영향4
  • 5고려사  원의 간섭기가 고려에 미친 영향5
  • 6고려사  원의 간섭기가 고려에 미친 영향6

다음

  • 최대 100페이지까지 확대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 레포트 > 인문계열 > 자료상세보기 (자료번호:175405)

구매가격
1,000원 할인쿠폰900원
등록/수정
2007.08.28 / 2007.08.29
파일형식
fileiconhwp(아래아한글2002) [무료뷰어다운]
페이지수
6페이지
자료평가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등록자
mrjjo
  • 다운로드
  • 장바구니 담기

닫기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 트위터
  • 페이스북
신규가입 200원 적립! + 10% 할인쿠폰 3장지급! banner구매자료를 평가하면 현금처럼 3%지급!

소개글

[고려사] 원의 간섭기가 고려에 미친 영향에 대한 자료입니다.

하고 싶은 말

원의 간섭기가 고려에 미친 영향에 관해 자세하고 세밀하게 정리한 레포트 입니다.
지난학기 고려사 시간 과제물로 20점 만점에 20점 받은 자료입니다.
원의 간섭기나 고려사 관련 레포트를 작성하시는데 많은 도움 되실겁니다.

목차

< 원의 간섭기가 고려에 미친 영향 >

1. 서 론

2. 본 론

3. 결 론

- 참 고 문 헌 -

본문내용

1. 서 론
고려는 100년간 원의 간섭을 받았다. 이렇게 원 간섭기가 100년이나 지속되는 동안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의 생활 깊숙히 까지 걸쳐 적지 않은 몽골의 영향을 받았다. 관제와 용어를 격하시키고 내정간섭을 일삼았으며 물자를 징발하는 등 민족의 자주성을 훼손하는 일 말고도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여 발전시키는 일 등이 일어나는 시기가 되었다.
여기에서 원 간섭기가 고려에 끼친 영향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2. 본 론
원나라가 통치하던 시기, 전쟁의 영향과 전후 고려가 원나라에 부속되었던 관계의 확립은 양국 간의 인적 교류가 전대에 없을 정도로 빈번하게 교류하게끔 만들었다. 고려 민중이 원나라에 대량 이민하여 거주하게 됐고 원나라의 적지 않은 사람들도 고려에 건너가 거주했다. 요양행성은 원 시기 고려 이민이 가장 집중되어 있던 지역이었다. 1233년 고려의 반역자인 홍복원이 몽고에 투항했다. 그는 북부의 백성들을 모집하여 요양과 심양지역으로 이민을 오도록 했다. 그 후 몽고는 고려를 수차례나 정벌했다. 그 때마다 투항했거나 포로된 대부분의 고려인들을 홍복원에게 넘겨주어 통치하게 했다. 후에 고려에서는 영녕공(永寧公) 왕순(王淳)을 몽고에 인질로 보내었다. 왕순은 몽고의 종실 여자를 아내로 삼아 원조의 신임을 얻었다. 그는 홍복원과 고려 이민의 관리권을 쟁탈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했다. 홍복원이 이 때 피살되었다.
쿠빌라이가 즉위한 이후 안무고려군민총관부(按撫高麗軍民總管俯)를 설치했다. 쿠빌라이는 또 고려, 여진 , 한군(寒軍), 만호부(萬戶俯)를 증설했다. 이 두 기구는 모두 요양과 심양 일대에 두었다. 주로 고려인의 이민 사무를 관장했다. 1296년 상기의 두 기구를 하병하여 심양등로안무고려군민총관부로 개편했다. 이 기구를 간칭 하여 심양로(瀋陽路)라 했다. 요양 옛 성에 소재지를 두고 총관 5, 천호 24, 백호 25를 관할했다. 심양로는 행정구역상 요양행성에 속했는데, 요양과 심양 일대의 고려 군민을 관할하기 위해 설립한 전문기구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동행성을 설립할 때 심양로를 정동행성에 귀속시켰던 것이다. 원조 중,후기 심양로는 원에 상주하고 있는 고려 왕실의 성원 심왕의 통치를 받았다. 이런 시점에서 볼 때 심양로는 원 경내의 특수한 행정기구였다고 할 수 있다.
요양행성의 고려 이민은 양국 전쟁시기 투항한 자와 포로된 사람을 제외하고도 적지 않은 수가 스스로 고려 경내에서 이민해 온 사람들이었다. 장기간에 걸친 전란의 피해를 입은 고려의 경제는 매우 낙후되어 있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는 원이 고려를 일본 공격의 발판 기지로 삼아 번잡한 가렴잡세를 부여하여 민중들이 도탄에서 허덕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대량의 고려 거주민들이 원 경내로 국경을 넘게 된 것이다. 인구의 유실은 고려 국내의 세금징수와 부역에 심각한 영향을 주었으며, 고려의 경제회복과 발전을 지연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고려는 수차례나 고려포로와 국경을 넘은 자의 소환을 원나라에 제의했던 것이다. 동시에 원에서 허락하는 범위에서 요양 ,심양 ,북경 ,개원 등의 노(路)에서도 요양과 심양처럼 고려인을 반환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원의 지방정부는 협력을 거부했다. “군대에 종군했다든가 유량농민이라 하면서 귀환시켜 주지 않았다.” “가령 억지로 납치해서 데려가려 한다면 길을 가로막고 보내지 않았다.” 따라서 고려로 돌아간 사람은 아주 적었다. 고려로 송환되어 가는 사람들 중에 또다시 국경을 넘어 돌아오는 고려인들도 있었다.

참고문헌

- 이이화 / 몽골의 침략과 30년 항쟁 / 한길사 / 1999
- 최용범 / 하룻밤에 읽는 고려사 / 중앙M&B출판 / 2003
- 장페이페이 외 / 한중관계사 / 범우사 / 2005

태그 원의간섭, 원의간섭기, 원의간섭이고려에미친, 고려에미친영향, 고려사

도움말

이 문서는 한글워디안, 한글2002 이상의 버전에서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구매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img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 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 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