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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icon[국사학] 조선후기 서울의 변화발전과 그 역사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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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사학] 조선후기 서울의 변화발전과 그 역사적 의의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목 차>

Ⅰ. 서 론 Ⅴ. 상업도시로의 성장
Ⅱ. 조선후기 서울의 인구증가 Ⅵ. 서울 주변의 도시화와 새로운 상품유통체계의 성립
Ⅲ. 공간적 확대 Ⅶ. 결 론
Ⅳ. 도시정비사업의 추진

본문내용

Ⅱ. 조선후기 서울의 인구증가

조선시대 인구변동 추이를 종합하여 보면, 15세기 이후 16세기 말까지는 꾸준히 증가하다가, 17세기 중엽까지는 급격히 감소하였고, 다시 1650년부터 1680년까지는 급격히 증가하다가, 그 뒤 19세기까지는 완만하게 증가하고 있다. 서울의 인구도 이와 같은 전국의 인구변동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선시대의 서울 인구는 17세기 중엽을 전후하여 커다란 변동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5, 16세기의 인구증가는 농업생산력이 발전한 데 따른 것이었다. 반면 17세기 중엽의 인구증가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실제 거주인구가 증가했다기보다는 양란이후 인구파악 능력이 높아진 데 따른 결과로 이해하고 있다. 한성부의 인구증가도 호구파악을 철저하게 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17세기 후반 한성부 인구가 증가한 요인은 이처럼 일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호구파악이 그 전 시기에 비해 철저해졌다는 점은 인정되지만, 효종조(1650~1659)에 서울의 행정구역이 개편된 것으로 추정되는 등, 통계상에서의 인구증가만이 아니라 실제 인구의 증가를 가져온 요인이 많았다. 요컨대 이 시기 한성부의 인구증가는 호구파악 능력의 제고만이 아니라 실제 거주인구의 증가를 반영한 것이다.
17세기 후반에 집중된 시전제도의 정비와 신설 시전의 증가현상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미전 ․ 어물전이다. 미곡과 어물은 도성민의 일용 소비품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증가는 소비인구의 증가를 상정하지 않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이러한 점은 이 시기의 상업변동은 인구증가와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이고, 17세기 후반의 통계에 나타나는 서울의 인구증가 현상은 실제로 인구가 늘어난 수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미전이나 어물전의 설치지역이 도성 밖과 경강변인 서강 ․ 마포 등지였다는 점은 인구가 도성 안이 아니라 성 밖, 특히 경강변을 중심으로 증가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때 서울 인구를 늘인 장본인들은 바로 외방에서 몰려든 유민들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서울로 몰려든 유민들이 흉년의 여파로 일시적으로 서울로 몰려들었다가 풍년이 들면 다시 본토로 귀환하는 인구들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때의 유민들은 서울에 정착을 목적으로 몰려드는 실민이었던 것이다. 즉 도시화된 서울에 정주를 목적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이들이 서울로 몰려드는 까닭은 서울에는 살아갈 방도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국가사업에 노동력을 제공하여 그 대가를 받았고, 숙종대에는 서울로 몰려든 유민들에 대한 대책으로 생계를 마련해 주는 대책까지도 논의 되었다. 또한 현종대 이후에는 계속 도성 수축, 북한산성 축성, 궁궐 영건, 산릉 조성 등 대규모 토목공사가 이어졌고, 이에 필요한 노동력을 대부분 한성부민에 대한 역징발이나 급가모립 방식으로 충원했다고 볼 때, 이것은 서울의 실거주인의 증가를 상정하지 않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17세기 후반에 서울이 상업도시로 급격히 성장하면서 인구가 유입되었던 요인으로는 농업 ․ 수공업에서 상품생산이 성장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도시 근교를 중심으로 상업적 농업이 발달하면서 종래 자급했던 채소나 각종 부식류 등이 상품으로 유통되었으며, 면포도 화폐나 조세 납부수단만이 아니라 점차 상품적 성격을 띠게 되면서 면작이나 면포생산이 눈에 띄게 발전하였다. 이렇게 되면서 수공업도 점점 발전하게 된다. 이와 같은 농업 ․ 수공업의 변화와 발전을 더욱 촉진시킨 것은 유통경제의 발달이었다. 17세기 후반 이후 서울의 유통경제가 발달한 것은 국제무역의 성행과 더불어, 이때부터 전국적으로 유통된 상평통보의 영향이었다.
이와 같은 금속화폐의 유통과 대동법의 시행을 계기로 전국적 시장권이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결과 전국적 시장권의 중심도시인 서울은 급속히 상업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7세기 이후 서울에는 다양한 인구들이 집주하기 시작하였다. 임란 이후에는 전란동안 흩어진 상인들을 서울로 끌어들이는 정책을 시행했으며, 효종조에는 위급시에 각종 정부물자를 운송하는 데 필요한 마부 100여명을 지방민 가운데서 뽑아 도성 밖에 집단거주시켜, 이들에게 각종 역을 면제해주는 등 지방민을 서울로 유입하는 정책을 취하기도 하였다.
서울 인구증가의 또 다른 원인은 전국의 유민이 서울로 집중된다는 점이었다. 양란을 경험한 17세기 조선사회는 전지구적으로 나타났던 소빙기 기후로 인하여 흉년과 전염병이 계속 돌았고, 그 여파로 농민들의 유리가 심화되었다. 이러한 기근과 전염병의 발생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까지 십수년을 주기로 반복되었는데 유민들은 진휼이 행해지는 곳을 찾아 계속 이동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1670년을 전후하여 신설 시전이 늘어나는 것과, 1740년대를 전후하여 난전활동이 활발해지고 나아가 신설 시전이 증가하는 사정은 이와 같은 유민들의 서울 집주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유민들의 서울 집중현상은 19세기에도 계속되었다. 서울에 몰려든 유민들은 앞서 언급했듯이 각종 대규모 토목공사나 부역제의 해체에 따라 모립제로 운영된 장빙역등에 고립되어 생계를 유지하거나, 또는 양반가의 노비가 되어 살아가기도 했다. 이밖에도 유민들은 거지가 되어 움막을 치고 생활을 하거나, 하천변에 집을 짓고 살았다. 이와 같이 서울에 인구가 집중되자 가옥 수요도 당연히 증가하였다. 그러므로 17세기 후반부터 사대부들이 평민가옥을 빼앗는 사례가 급증하여, 사대부가 여가를 탈입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왕명이 계속되기도 했다. 여가탈입사건은 서울의 주택부족현상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었고, 이들 모두는 도시화에 따른 주택문제의 한 단면이었다.

Ⅲ. 공간적 확대

서울의 지역적 공간은 세종대에 도성 안과 도성에서 10리 까지를 경계로 삼고 있었다. 이른바 성저십리를 한성부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이 성저십리는 조선후기 사산금표지역과 일치한다. 세종대 서울의 경계는 강이나 하천, 그리고 산을 기준으로 설정된 것이었다. 이와 같은 경계범위는 18세기의 인구증가로 확대되고 있었다. 성저십리를 포괄했던 서울의 지역적 공간은 크게 셋으로 구분되었다. 17세기 중엽에는 도성 안 ․ 연강 ․ 산저 지역으로 구분하였는데, 18세기 후반에는 도성안의 5부지역, 도성 밖의 사교, 경강주변의 연강지역으로 구분되었다. 지역적 공간이 3분되었으므로, 17세기 중엽 유형원은 한성부 행정조직을 3부체제로 하여, 1부는 도성 안을 관할하고, 2부는 도성 밖을 둘로 나누어 관할하자는 안이 당시 5부체제보다 낫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유형원의 3부체제 개편안도 결국 서울의 공간 확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조선후기 서울상업발달사 연구』고동환, 지식산업사, 1998
『조선상업사』홍희유,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89
『조선시대 도시사회연구』손정목, 일지사, 1977
『조선후기 상인연구』오 성, 일조각, 1989
『조선시대 한성부연구』원유한, 한국연구원, 1975
『조선후기 사학사연구』한영우, 일지사, 1989

태그 조선후기, 조선후기사회, 조선후기서울, 조선후기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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