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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icon[동양사] 한 고조 유방의 삶과 그의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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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양사] 한 고조 유방의 삶과 그의 업적에 대한 자료입니다.

하고 싶은 말

한 고조 유방의 삶과 그의 업적에 관해 자세하고 세밀하게 정리한 레포트 입니다.
지난학기 동양사 시간 과제물로 20점 만점에 20점 받은 자료입니다.
유방,항우 관련 레포트를 작성하시는데 많은 도움 되실겁니다.

목차

< 한 고조 유방의 삶과 그의 업적 >

1. 서 론

2. 본 론
1) 제왕으로의 발걸음
2) 한 고조의 승리 원인

3. 결 론

- 참 고 문 헌 -

본문내용

1) 제왕으로의 발걸음
유방은 패현(沛縣)지방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태공太公이었으며 그의 어머니는 유오였다. 태공은 농부였다. 태공의 성이 분명치 않아서 유방은 그의 어머니 유오의 성(姓)을 따라 유씨 성에 아명을 계(季)라 지었다. 유오가 유방을 잉태할 때였다. 그녀가 호숫가에 앉아 쉬고 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었는데 용꿈을 꾸었다. 호수주변은 천둥번개가 치고 짙은 어둠에 쌓였다. 그것을 본 태공이 달려가 보니 자기 부인이 있는 근처에 하늘에서 교룡이 꿈틀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 사건 이후에 잉태된 아이가 바로 유방이다. 유방은 태어날 때부터 코가 우뚝 솟았고 용을 닮은 얼굴이었으며 왼쪽 넓적다리에는 점이 72개나 있었다고 한다. 중국의 천자가 자신의 얼굴을 용안이라고 칭한 것은 유방 때가 아니었나 생각되기도 한다. 또한 그는 친구를 좋아하고 마음이 넓었다. 사람을 아끼고 주기를 좋아하여 언제나 활발하였으며 큰 도량을 지니고 있어 조그마한 집안 살림은 돌보지 않았다 한다. 또한 그는 서른 살 때 정장이라는 관리로 채용되어 일을 하기도 하였는데, 관청의 일은 안중에도 없고 상사를 우습게 여기고 술과 여자 앞에선 정신을 못 차렸다고 하기도 한다. 진나라는 사회적으로 유민이 증가하여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건달의 수 또한 많았는데, 유방 또한 이 부류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맡았던 관직인 사수정장(泗水亭長)이라고 하는데 하급 관직이었다. 정(亭)이란 10리마다 설치된 숙소(宿所)이고, 정장은 정졸(亭卒)을 거느리고 이 정을 관리함과 동시에 그 치안을 담당한 경찰기관이기도 한 현의 하급 속리이다. 그는 정장이었을 때 패 지방에 온 여공이라는 사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정장이라는 하급 관리가 되긴 했어도 그는 여공의 딸과 함께 농경에 종사하였다. 그런 연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반란군이 되어 천하를 도모하게 된 건 어떤 이유였을까? 진나라가 여산릉을 만들기 위해 대규모 공사에 착수하자 유방은 죄수들을 여산까지 인솔하는 책임을 맡았다. 죄수들은 가는 중에 기회만 있으면 도망쳤다. 이렇게 풍서지방의 늪지대까지 이르렀을 때 유방은 자리에 주저앉아 술을 마시며 날이 어두워지자 죄수전원을 풀어주며 도망치고 싶은 사람은 모두 가라고 하고, 자신도 이내 도망치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혈기왕성한 청년 10여명이 그 자리에 남아 유방과 행동을 같이 하겠다 하여 같이 나섰다. 그 소식을 들은 패현의 젊은이들이 유방을 따르겠다고 모였는데 그 수가 몇 백은 되었다.
진나라 2대 황제 호해胡亥 황제 원년 가을, 진시황이 죽고 난 뒤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을 우두머리로 한 무리가 반란을 일으켜 진나라 군대를 격파한 뒤 다음 왕을 자칭하고 국호를 ‘장초長礎’라 하였다. (같은 해 9월에 항량과 항우도 회계군수 은통(殷通)을 죽이고 오중(吳中)의 병사들을 모아 반진(反秦)의 기치를 들었다. 항량은 스스로 회계군수에 올라 항우를 부장으로 삼고 정예병 8천명을 거느렸다. 그 후에 항량을 따르는 무리는 6~7만이 되었고 범증과 염포를 휘하에 두게 되었다.) 패현의 현령 또한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봉기를 하려 하였으나 수하였던 소하와 조삼이 여론을 걱정하며 여산으로 가던 중 도망쳐 버린 유방의 무리를 앞세우자 하였다. 현령은 이 의견을 듣고 부하인 번쾌를 시켜 유방을 불러들이려 하였지만, 번쾌 또한 유방의 인물됨에 반해 그의 수하가 되어 운명을 함께 하자 하고 유방과 함께 패현에 돌아왔다. 현령은 위기를 느껴 성문을 닫고 이 방법을 건의한 소하와 조참을 죽이고 유방을 내치려 하지만 유방은 성내의 군중을 설득해 현령을 죽이고 자신이 지도자가 되어 소하 조참 번쾌를 중심으로 패沛의 군중 3천명을 거느린 세력이 되었다.

참고문헌

- 유재주 / 영웅 / 돋을새김 / 2007
- 이언호 / 한권으로 보는 초한지 / 큰방 / 2001
- 시바 료타로, 양억관역 / 항우와 유방 / 달궁 / 2002
- 천춘천,이성림역 / 소설 십팔사략 / 자음과 모음 / 2004
- 신성곤 /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 서해문집 / 2004

태그 유방, 유방과항우, 유방의삶, 유방의생애, 유방의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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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s*** (2012.11.27 20: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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