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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후감]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을 읽고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포 김만중
2. 작품 구운몽에 관한 고찰
3. 내용 요약 및 감상평

본문내용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은 자가 중숙(重叔)이요, 호가 서포(西浦)다. 그의 호 서포는 그가 평안북도 선천(宣川)에 귀양 갔을 때 그곳의 지명을 따서 스스로 지은 것이다. 그의 집안은 광산(光山)은 김씨 명문거족이었으니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이 그의 증조할아버지다. 김장생은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제자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스승이었으니 실로 조선조 예학파(禮學派) 유학(儒學)의 거두였다. 그의 할아버지 반(槃, 1580-1640)은 호를 허주(虛舟)라 하는 이로 벼슬이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그의 아버지 익겸(益兼, 1614-1636)은 성균관 생원으로서 병자호란 때 순절했는데, 그때 만중은 어머니 뱃속에 있었고 그의 형 만기(萬基)는 바야흐로 다섯 살이다. 후에 만기의 딸이 肅宗(숙종)의 비 인경왕후(仁敬王后)가 되었으니 만중은 인경왕후의 숙부다.
그는 1637년(仁祖 15, 丁五) 2월 10일 한낮 병자호란의 와중에 피란 가던 배 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김익겸은 강화도가 함락될 때 선원(仙源) 김상용(金尙容)과 함께 화약에 불을 질러 스스로 산화(散華)했기 때문에 그는 유복자(遺腹子)였다. 청(淸)나라 태종(太宗)이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수도 심양(瀋陽)을 떠난 것이 인조 14년 병자년, 즉 1636년 12월 2일이었는데, 그로부터 두 달도 채 못된 1637년 1월 22일에 강화도가 함락되고, 뒤이어 30일에는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내려와 항복했으니, 김만중이 태어난 것은 병자호란이 끝난 지 열흘 뒤가 된다.
김만중이 살고 간 시대는 한마디로 말해서 전란과 당쟁으로 거의 영일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나 그 형과 함께 오로지 모친 윤씨의 힘에 의하여 성장하였다. 일찍이 所天을 잃은 모부인은 두 유아를 데리고 친가에 돌아와 밖으로는 참판 부친을 섬기고 안으로는 모친 홍씨를 섬기었는데 그 효성이 지극하였다. 참판공이 돌아가신 후로는 친정의 생활도 어려워져 베 짜고 수놓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나갔으나 학업에 방해가 될까 걱정하여 어린 자식들에게는 결코 보이지 아니하였고, 『小學』『史略』『唐詩』등은 윤씨 자신이 직접 가르쳤는데, 자애는 깊었지만 과업에는 매우 엄하였다. 『孟子』『中庸』등은 곡식을 주고 사서 읽혔으며, 「左氏傳」一秩이 있으되, 그 값이 너무 많아 아들이 감히 말을 못하고 있자 부인이 베틀에 감겨 있던 베를 끊어주었다고 한다. 또 이웃의 玉堂胥吏를 인연하여 홍문관의 『四書』와 『詩經諺解』를 빌려내어 손수 이를 베껴서 자식들에게 주었다 하니 자식들의 학업성취에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나를 추찰할 수 있다. 이는 후일 김만중이 학자로 성공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드디어 29세에 庭試甲科에 장원급제하여 첫 出仕가 성균관 典籍이었다. 이후 正言 ? 司書 ? 持平 ? 修撰을 거쳐 35세 때는 京畿 ? 三南地方의 암행어사로 重任을 맡기까지 그에게는 得意의 시기였다. 그러나 끝없는 色目의 갈등 속에서 김만중은 자연 서인에 가담하게 되었

태그 김만중, 구운몽, 독후감, 독서감상문,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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