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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구려사의 역사적 의의에 대한 자료입니다.

하고 싶은 말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2. 고구려사의 역사적 의미
1) 역사성
2) 영토성
3) 남북통일로 가는 길목에 고구려사가 있다.

3. 한국사의 현실
1) 한국인의 역사인식 문제
2) 외국인이 보는 한국의 역사인식 문제
3) 현실 극복을 위한 대안

4. 나가는 말(대응방안)

본문내용

우리가 오늘 세계속의 한국으로 사용하는 국명 코리아(Korea, Corea)는 ‘고구려’에서 기원했음을 다 알고 있다. 오늘날 중국에서 고구려를 중국역사의 일부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과거 한, 위진, 남북조, 수, 당, 송, 원, 명, 청, 중화민국 어느 시기에도 하지 않았던 21세기 역사 사기극을 연출하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중국사를 기술하는 옛 사가들은 자국을 높이고 이웃국가를 비하해서 기록하는 소위 ‘춘추필법’ 악습이 있어 왔으나, 그래도 이웃국가의 역사는 분별 할 줄은 알았다.

예컨대 동북쪽의 이웃민족과 국가의 역사는 <동이전>, <북사>등으로 분류하여 중국역사가 아닌 외국역사, 외국과의 관계사임을 명백히 하여 고구려사는 <동이전>에 포함시켜 놓았었다. 그리고 중국정사에서는 고구려를 고려라고 호칭한 사서가 더 많이 있다. <남제서>, <주서>, <수서>, <구당서>, <신당서> 등은 고구려를 공식적으로 고려로 기술하고 있다. 구당서는 ‘고려(고구려)는 본래 부여의 별종이다.’라고 했고, 당나라의 창업주인 고조가 622년 고구려 영류왕에게 보낸 공문편지에 이제 두 나라가 화평을 통하게 되었으니, 수나라의 고구려 침공 때 잡힌 군인 포로들을 돌려보내 달라고 요청한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때 고려(고구려)는 수나라 군인포로 1만 명을 당에 반환해 주었다고 구당서에 기록하고 있다. 이때만 해도 당 고조는 고구려를 당의 일개 지방정권이라고는 꿈에도 망상하지 않았다.

나당이 연합하여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수도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했다. 고구려 유민들은 피란민이 되어 대거 남하해서 송악(개성)이 고구려 유민의 중심지가 되었다. 신라가 쇠약해지자 601년 궁예가 고구려 유민을 기반으로 후고구려인 고려를 송악에 세웠다. 그러나 포악한 궁예가 도읍을 철원으로 옮기고 국명도 마진, 태봉으로 고치자 송악의 고구려유민 후손 세력은 궁예를 버리고 왕건을 추대하게 된다. 왕건은 918년 국호를 고려로 회복하여 고려왕조를 개창하고 송악을 수도로 정하고 페허가 된 평양에 황해도 고려유민을 이주시켜 평양을 서경이라 이름하고 양경체제를 만들었다. 고려태조 왕건은 자손에게 남긴 훈요 10조의 제5조에서 ‘서경은 아국(고려)의 지맥의 근본이다.‘라고 하여 고려의 근본은 고구려(평양)의 계승임을 자손에게 명백히 하였다. 고려(고구려)는 중국 및 동남아 국가들뿐만 아니라 아랍 국가들과도 무역과 교류를 했으므로 세계에 한국이 ’고구려-고려-코리아’로 알려지게 되어 그 이름이 된 것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외국인의 출입을 통제한 채 비밀리에 집안의 고구려 유적 발굴과 도시정비 공사를 시행했고, 국내성 천도 2천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작년 10월에 했으며, 고구려 문화유산을 유네스코에 등록했고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것을 모든 관광안내문에 기록하고 방문객들에게 교육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는 기원전 37년, 졸본에서 건국한 고구려가 국내성이라는 새로운 수도로 천도한지 2001년이 되는 해다. 우리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지고 동아시아의 맹주 역할을 했던 고구려, 700여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동북아시아의 맹주로 군림했던 대제국 고구려는 현실적으로는 중국 영토 내에서 이렇게 이미 왜곡되고 고구려가 지배했던 광활한 만주땅 역시 우리의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1400년이 지난 지금, 그 후예들인 우리가 잘못해서 고구려사와 광활한 영토를 통째로 잃어버리고 말 것인가? 우리가 고구려의 역사를 지키는 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지키는 것이요, 고구려사의 역사성은 한민족의 운명과 함께 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런 의미에서 고구려사의 역사성은 우리에게 실로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태그 고구려, 고구려사, 동북공정, 국사,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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